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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미국 시트콤’이 좋아!

케이블TV서 시청률 급증… 솔직하고 적나라한 ‘젊은 감각’으로 인기몰이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우린 ‘미국 시트콤’이 좋아!

우린 ‘미국 시트콤’이 좋아!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하는 건 벼락맞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야.”

“오르가슴은 지어낼 수 있어. 하지만 애정이나 친밀감은 지어낼 수 없지.”

이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각기 미국 시트콤인 ‘앨리 맥빌’(한국 제목 ‘앨리의 사랑 만들기’)과 ‘섹스 앤드 더 시티’(한국 제목 ‘섹스 & 시티’)에 나온 대사다.

성(性)마저도 터부시하지 않는 솔직함 탓일까.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미국 시트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시트콤이 방송되는 케이블 TV가 공중파 방송에 필적하는 메이저 매체로 발돋움하고 있을 정도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85%였던 케이블 TV의 프라임 타임(밤 8시~11시) 평균 시청률은 올해 7월에 5.06%로 성장했다. 하루 평균 시청률도 5.37%로 지난해에 비해 200% 이상 늘어났다.

특히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프렌즈’ ‘앨리 맥빌’ ‘섹스 앤드 더 시티’ 세 작품이다. 95년부터 동아TV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렌즈’의 경우, 시즌이 거듭될수록 인기가 치솟아 이제는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와 엇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앨리 맥빌’은 17, 18% 내외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방송이 시작된 ‘섹스 앤드 더 시티’도 최고 시청률이 25%에 달하는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시트콤의 어떤 점이 한국의 젊은 세대들을 매료시킨 것일까. 세 드라마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먼저 대도시가 배경이라는 점. ‘앨리 맥빌’은 보스턴을, 나머지 두 작품은 뉴욕을 무대로 삼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30대 초반의 젊은이들. 변호사, 홍보이사, 패션회사 머천다이저 등 세련된 직업을 가지고 도시에 살며 여러 이성 친구들과 자유분방하면서도 독립적인 생활을 즐기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하는 동경의 마음이 들게 한다. 이들 드라마의 동호회 게시판에서는 “‘프렌즈’는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이상향”이라거나 “재판을 끝낸 후 바에 가서 음악을 즐기는 등 성공한 변호사들의 여유 있는 생활이 부럽다”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중파 드라마와 시청률 경쟁


하지만 대다수 애호가들은 ‘세련되고 근사한 여피들의 생활’은 이들 드라마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화려한 생활과 뉴욕 등 대도시의 모습보다는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

“일상적인 것부터 은밀한 부분까지 터부시하는 부분이 없이 모두 다룬다. 특히 동성애 같은 주제는 우리 드라마에서는 상스럽거나 어색하게 그려지는 게 보통인데 ‘프렌즈’에서는 그런 주제도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프렌즈’ 시청자 이정현씨)

“식상한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주제도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강한 척하지만 실은 히스테릭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공감을 느끼게 한다.”(‘앨리 맥빌’ 시청자 김효은씨)

“한국의 성인 시트콤처럼 억지로 웃기지도 않고, 어설프게 야하지도 않다. 정말 여성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재미있게, 때로는 진지하게 풀어 나간다.”(‘섹스 앤드 더 시티’ 시청자 차정미씨)

이들 시트콤에서 성(性)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성공률 97%를 자랑한다던 콘돔을 사용하다 피임에 실패했다며 콘돔회사에 항의하는 남자주인공이나 레스비언인 두 ‘엄마’ 간의 결혼(프렌즈),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를 하고 그 남자와의 관계를 결혼식 하객에게 공개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앨리 맥빌) 등은 우리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 같은 묘사에 대해 ‘괜찮다’거나 ‘드라마니까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적어도 성에 대한 묘사가 이들 드라마를 선호하거나 거부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 성에 대해 다루면서도 성행위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대부분 여성인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이유다.

성에 대한 담론이 주제인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도 노골적인 장면은 찾기 힘들다. ‘섹스 앤드 더 시티’의 국내 방송채널인 OCN의 최인희씨는 “‘섹스 앤드 더 시티’는 말하자면 미국판 ‘처녀들의 저녁식사’다. 때문에 여성 시청자들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고, 또 남성들은 여성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재미에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성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는 마치 축구 이야기를 하듯 성을 이야기한다. 성에 대해 솔직한 젊은 세대가 성을 자연스럽게 소재화하는 미국 시트콤에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 같은 반응을 설명했다.

미국 시트콤의 인기는 영어학원, 패션 등 젊은이들의 생활에 또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익훈 어학원에서 ‘프렌즈’로 영어 듣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영어강사 셰인 피터슨씨는 “한국에서 10년간 AFKN 수업을 진행해왔지만 ‘프렌즈’를 교재로 삼았을 때가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시트콤은 어려운 단어가 별로 없는데다 미국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을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프렌즈’에 등장하는 6명의 주인공 중에 조이(매트 르블랑) 같은 경우는 진짜 뉴욕 사투리를 쓰고 있고 나머지 주인공들은 표준적인 미국 발음을 구사해요. 학생들에게 이런 차이점을 이야기해주면 굉장히 재미있어합니다. 자연히 학습효과도 높아지고요.”

‘프렌즈’로 영어 공부를 했다는 유학생 김계영씨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프렌즈’를 화제 삼아 미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프렌즈’는 제게 미국 사람들이 사는 방식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대해 친근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데, 실제로 저는 뉴욕에 처음 갔을 때 별로 낯설지가 않았어요.”

패션계도 미국 시트콤을 주목하고 있다. ‘김희선 머리핀’이나 ‘김남주 목걸이’처럼 인기 있는 TV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들의 패션이 덩달아 인기를 끄는데, 요즘은 미국 시트콤 속 패션이 젊은 세대의 유행 코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 보보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인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의 의상은 ‘캐리 룩’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패션가를 강타하고 있다. 팬디의 바게트 백, 에르메스의 목걸이, 끈 달린 샌들 등 캐리가 유행시킨 패션 아이템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로 올 여름 서울에서는 드라마 속 캐리처럼 탱크 톱에 카디건을 입고 작은 핸드백을 어깨에 멘, 선탠을 한 화장기 없는 얼굴의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차장은 “‘캐리 룩’은 기존의 뉴욕 여성들에 비해 훨씬 과감하고 캐주얼하며, 약간은 복고적인 경향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캐리의 모습은 섹시하면서도 로맨틱해 보이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구를 대변하죠. 또 프리랜서라는 극중의 설정에 맞게 개성이 강한 것도 캐리 룩의 특징입니다.”

동덕여대 간호섭 교수(의상디자인)는 이 같은 첨단 의상이 바로 미국 시트콤의 인기 비결이라고 말한다.“‘섹스 앤드 더 시티’는 드라마의 설정뿐만이 아니라 의상에서도 현대의 여성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 시트콤의 성공을 이끄는 주된 요인이라고 봅니다.”

결국 미국 시트콤의 매력은 21세기 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삶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게 이미 국경과 문화의 차이는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젊은이들의 감각과 욕구를 정확하게 짚어낸 미국 시트콤의 인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352호 (p70~72)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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