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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주년

“폐허 딛고 희망의 싹이…”

아프간 수도 카불 곳곳에 활기… 외국 지원 없이 재건사업 꿈도 못 꿔

  • < 카불=김성규/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kimsk@donga.com

“폐허 딛고 희망의 싹이…”

미국이 9·11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테러와의 전쟁’ 그 첫 대상지로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선택한 지 1년 남짓.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뜻밖에 활기에 차 있었다.

만데이 시장은 사람들로 넘쳤다. 길 양옆으로 1평 남짓한 크기의 가게들이 족히 1km는 넘게 이어져 있었다. 가이드 겸 통역인 아하마드 아사자이(25)는 “요즘 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1년 전보다 열 배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전 아버지로부터 곡물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압둘 라자크(24)는 “탈레반 시절에는 많은 세금 때문에 힘들었지만 요즘은 물건도 잘 팔리고, 적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 살맛이 난다”고 했다.

거리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로 북적댔다. 노란색의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며 달렸다. 차 안에서는 비트가 강한 음악이 울려 나왔다. 텔레비전 시청과 음악 감상이 금지됐었던 탈레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적어도 카불 주민들에게는 자유를 억압했던 탈레반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이 전쟁으로 인한 고통보다 더 큰 듯했다. 그러나 모처럼 맞은 카불의 활기가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간은 1979년 구소련군의 침략을 시작으로 23년 동안이나 숱한 전쟁을 겪어왔다. 미군의 오폭으로 테러와는 아무 상관 없는 민간인 4000여명이 희생됐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으로 15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고 한다.

오랜 전쟁은 카불 시내 곳곳에 고스란히 그 상흔을 남겼다. 특히 서쪽은 구소련군이 89년에 물러난 뒤 무자헤딘(이슬람 게릴라)끼리의 내전으로 피해가 심했던 곳. 총탄 자국이 무수하게 난 집들이 끝이 없다. 당장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 아래서 태연히 좌판을 벌여놓고 담배를 팔거나 자전거를 고치고 있는 사람들이 아슬아슬하다. 카불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도로와 전기, 통신시설이 대부분 파괴됐고 외국의 도움 없이는 언제 복구될지도 요원하다.

카불을 벗어나면 더욱 비참하다. 카불 북쪽으로 100여km 떨어진 바그람까지 차를 타고 갔다. 진흙으로 지은 집들이 마치 고대 유적처럼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 길 곳곳에 부서진 탱크가 눈에 띈다. 몇 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나라 전체가 바싹 말라 있다. 아프간 어디를 가나 물동이를 들고 물을 나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몇 년째 가뭄까지 겹쳐 전 국토 고통 설상가상


미국은 탈레반을 몰아내고 자유를 가져온 해방군이기도 하고,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내전을 막는 치안유지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군에 대한 아프간인들의 정서는 단순하지 않았다. ‘ISAF(국제치안유지군)’ 마크가 찍힌 지프가 지나가면 카불 거리의 아이들은 “와∼” 하고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사람은 카메라를 허리에 찬 기자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ISAF냐”며 친근하게 물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카불의 시로호 오마르 동물원장(48)은 “빈 라덴이 미국의 심장부에 대규모 테러를 가할 능력이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만데이 시장의 한 시민은 “결국 (미국이)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의 장기 주둔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프간인들에게 미국은 결국 역사상 수없이 자신들의 삶을 간섭하고 고통을 주었던 여러 외세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카불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탈레반과 같은 종족인 파슈툰족이 살고 있는 남부 칸다하르에서는 빈 라덴의 모습과 뉴욕 쌍둥이 빌딩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이 그려진 쿠션 등이 팔리고 있다.



주간동아 352호 (p68~)

< 카불=김성규/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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