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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주년

美 일방 패권주의 언제까지…

“미국편 아니면 적” 부시독트린 위험천만… ‘악의 축’ 이라크 전면공격은 시간문제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美 일방 패권주의 언제까지…

美 일방 패권주의 언제까지…
9·11 테러사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지구촌 사람들이 배운 것은 무엇일까.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전 세계인들이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90년대 초 구소련의 해체로 양극체제가 사라진 이후 10년 넘게 미국은 이른바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의 정상으로 군림해왔다. 경제적으론 세계경제를 달러 중심 체제로 자리잡게 했고, 군사적으론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미국의 이익이 걸린 전 세계 분쟁지역들을 무력으로 평정해왔다. 그런대로 합리적 다원주의에 관심을 기울였던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태생적으로 강성 매파 정권이다. 9·11 사건은 부시 행정부에게 색깔을 분명히 드러낼 훌륭한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다름 아닌 일방주의에 바탕을 둔 패권주의다.

“조종사가 심장마비에 걸린 게 틀림없어.” 9·11 당일 아침 플로리다주(州)의 한 초등학교 행사에 참석했던 부시 미 대통령이 처음 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의 판단은 ‘테러가 아닌 단순사고’였다. 백악관 비서실장 앤드류 카드가 부시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두 번째 사고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달았다. 외교와 국제감각에는 약하지만, 판단력은 빠르다는 평가를 받아온 부시다. 그 순간부터 부시는 미군 통수권자로서 ‘테러와의 전쟁’ 지휘봉을 잡았다. 전 세계에 주둔해 있는 미군은 가장 높은 등급의 위험 경고인 ‘델타’ 상태에서 비상경계에 들어갔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군의 비상근무 태세를 데프콘 3급(DefCon 3)으로 올렸다. 지난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가장 높은 단계였다.



‘테러와의 전쟁’ 확대 국제사회 비난 고조




“이 싸움의 경과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명백하다. 우리는 참을성 있는 정의로 폭력에 맞설 것이며 우리가 정당하다는 신념 아래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미국 경제의 심장부 세계무역센터와 군부의 심장부 펜타곤(국방성 건물)이 동시 테러 공격을 받은 지 8일 뒤인 지난해 9월19일 부시 미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의회 한 연설의 일부이다. 부시의 세계관은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이고, 따라서 그의 테러와의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라는 것이다. 이런 미국적 세계관에 비판적인 논자들은 “부시는 모든 것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석하고 반미적 행동은 사악한 것으로 평가절하한다”고 반박한다.

부시의 9·19 연설대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1차전인 아프간전쟁에서 두 달 만에 승리했다. 그러나 부시가 연설문에서 천명한 ‘참을성 있는 정의’는 아니었다는 것이 부시 비평자들의 견해다. 아프간전쟁 초기 반(反)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이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하자, 미 군부는 어마어마한 공습전술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세계적 비난 여론이 일자, 미 국방성 고위관리들은 ‘민간인 오폭피해’는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많은 부시 비평자들은 아프간전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용어로 ‘패권(hegemony)’을 꼽는다. 공산권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9·11이 일어나기 전 미국은 이슬람권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이슬람권은 미국의 석유 이해가 걸린 주요 지역이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란,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탈레반 체제 하의 아프간, 무샤라프 군정이 버티는 파키스탄 등은 9·11 이전만 해도 미국의 영향력이 형편없던 지역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9·11을 빌미로 ‘테러와의 전쟁’을 이데올로기로 한 부시독트린 기치 아래 우선 비교적 손쉬운 상대인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려 서남아시아에 미국의 교두보를 확보한 모습이다.

9·11 테러 공격으로 숨진 3천명 미국인의 ‘피의 대가’를 바라는 미 국민들의 애국주의 열풍은 부시의 패권전략에 아프간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라는 명분을 더해주었다. ‘문명충돌론’으로 알려진 새무얼 헌팅턴을 포함한 미국의 보수적인 지식인 60명이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두둔하며 지지를 선언한 것은 부시의 패권전략을 그럴듯하게 색칠하여 패권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데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부시독트린을 내세워 테러전쟁 전선을 이라크로까지 넓히고 있는 것도 미국의 패권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미 아프간전쟁이 큰 고비를 넘긴 올해 초 2002년은 ‘전쟁의 해’라고 공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 창 끝은 이라크를 겨누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란, 이라크나 북한 등은 9·11 전부터 미국의 잣대로는 ‘불량국가(rogue country)’였다. 부시 행정부는 올 들어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 이들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저항집단을 포함한 전 세계 ‘테러집단’들에게 대량파괴무기(WMD)를 공급하는 ‘잠재적 공급원이자 후원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큰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현재 워싱턴의 분위기를 보면, 이라크 전면공격이 ‘테러와의 전쟁’을 뼈대로 한 부시독트린의 다음 주요 목표다. 미국과 영국은 9월5일 이라크 서부 방공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벌였다. 그러나 이라크의 실권자 사담 후세인이 오사마 빈 라덴의 반미 조직 알 카에다(우리말로는 근거지)와 연결돼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후세인의 집권 기반인 집권 바트당(黨)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는 알 카에다와는 달리 세속적인 무슬림들이다. 그러나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같은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언젠가 미국에 위협이 될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선제공격론은 그래서 힘을 얻고 있다. 걸프전 이후 10년을 경제제재에 시달려온 이라크는

“미국이 반인륜적 범죄의 열매를 (이라크 공격으로) 따내려 한다”고 맞서는 양상이다.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예외주의, 우월주의, 일방주의는 미 외교정책의 3대 특징으로 꼽혀왔다. 제3세계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악의 축’ 국가들이 보유한 WMD를 부시 행정부가 문제 삼는 것도 일방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지구촌 평화를 위해선 WMD를 폐기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세계 최대의 WMD 보유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이 부분에 관한 한 언급을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9·11 이후의 미국 시민들의 정치 성향을 거스르려 했다간 구독률, 시청률이 떨어질 게 뻔하고 상업광고마저 떨어져 나갈 판이기 때문이다. 올해 7월 국제형사재판소(ICC) 출범 과정에 미국만이 유독 “해외 파병 미군 범죄를 미국 관할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나, 지구촌 환경문제가 걸린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사례들도 미 외교정책의 3대 특징들에 비춰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9월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WSSD) 폐막회의 연설 도중 야유와 비난을 받은 것은 지구촌 지식인들의 반미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미국의 일방주의 태도가 9·11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유일 초강대국에 오른 미국은 ‘힘에 바탕을 둔 대외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미국이 주도하는 한 언제라도 제2의 9·11을 낳을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힘에 바탕을 둔 미국의 평화(팍스 아메리카나)’를 맹신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그의 매파 참모들이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주간동아 352호 (p64~65)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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