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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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유출 쉬쉬, 죽어가는 여수

한국 남동발전 송유관 통해 2700ℓ 유출 … 토양·지하수 오염에 바다 유입 가능성도

  • < 여수=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04-09-24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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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 유출 쉬쉬, 죽어가는 여수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한국남동발전㈜의 기름 유출 및 은폐 사건이 1년이 지난 최근에야 알려져 씨프린스호 바다오염 사건 등을 겪은 이 지역 시민과 노동·환경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오염 규모가 지난 8월28일 1차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11월13일 오전 9시30분경 여수산업단지 내 LG칼텍스정유㈜ 근처 도로변에서 남동발전 여수화력처 소유의 송유관(직경 318mm)에 생긴 작은 구멍을 통해 상당량의 벙커시유가 유출됐다. 이 사고로 주변 토양이 오염됐으나 당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지하수까지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 토양의 경우도 아직까지 1350t의 토양이 오염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발생 지점에서 공공수역인 광양만까지는 불과 3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유출된 기름이 바다로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사고 지역 인근의 수로 뒤편 삼남석유화학 부지로 기름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기름이 유출됐느냐는 것. 남동발전측은 사고 뒤 기름 유출량을 숨겨오다 ‘주간동아’의 요청으로 사고 당일 수유내역 자료를 공개했다.

    기름 유출 쉬쉬, 죽어가는 여수
    남동발전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기름 유출량은 2700ℓ에 이른다. 이는 드럼통으로 13.5개나 되는 많은 양이다. 이 수치는 LG에서 보낸 송유량과 남동발전의 수유량 차이를 오차 범위를 감안해 파악한 것. 당시 LG측이 보낸 총량은 1만4217㎘이며 남동발전이 받은 총량은 1만4214㎘로 2793ℓ의 차이가 난다.

    남동발전 여수화력발전처 관계자는 “송유량과 수유량의 차이를 바로 유출량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저장탱크의 측정오차(1000분의 1)와 온도 측정오차 등을 감안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LG측에서 보낸 양보다 우리가 받은 양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남동발전은 “사고 뒤 신고를 받고 뚫린 구멍을 보수한 뒤 유출된 기름을 흡착포 등으로 수거하고 오염된 토양 100ha를 걷어낸 뒤 폐기물 처리업체에 의뢰해 처리했다”면서 “나머지 1350t의 토양오염에 대해서는 9월중으로 모두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처리가 너무 늦었다. 남동발전은 1차 오염된 토양을 처리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은 12월18일에야 전체적인 토양오염 복원 계획을 세우고 올해 2월에야 토양오염 복원을 위해 용역을 의뢰했다. 조사 결과는 5월에 나왔으며 복원 계획은 9월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1년여 가까이 묻혀 있던 이 사고는 최근 제보를 받고 현장을 직접 조사한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조금씩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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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발전측은 “송유관 안전관리법에는 길이 15km 이상의 송유관 사고에만 신고 의무를 지우고 있어 2.9km밖에 안 되는 사고 송유관은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오염된 토양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수질오염이 확인될 경우 수질환경보전법을 어긴 셈이 된다. 남동발전이 의뢰한 보고서에는 ‘사고 발생 지점의 경우 기름이 지하수와 함께 이동하면서 수위 변화에 따라 오염을 상하로 확산시키고 있으므로 오염 지하수를 퍼올려 유수를 분리한 다음 폐유는 소각 등의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보고서에는 또 ‘사고 지역이 산업단지 내에 있고 지하수 수위가 평균 3m 깊이지만 바다가 인접해 있어 오염의 확산 속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토양이 매립토사인데다 지하수가 있는 층의 토양이 모래 또는 침적토여서 오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남동발전측은 이번 사고가 결코 큰 사고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해결돼야 할 문제는 아직도 많다. 여수환경연합은 “오염된 토양 100t을 처리한 것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었는지 확인해주지 않고 있으며, 지하에 묻혀 있는 1300여t의 오염된 토양과 사고로 인해 사용하지 않는 폐송유관 역시 처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오염 지역의 토양을 사고 이전 상황으로 복원하려면 폐기물이 수천, 수만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직접 가서 확인한 사고 발생 지점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사고 지점 바로 옆의 우수로에는 지금도 기름이 떠 있고, 기름을 모으기 위한 오일펜스가 쳐져 있었다. 남동발전 관계자가 “그 기름은 이전의 LG정유 사고로 유출된 것이다”고 주장하자 LG측 관계자는 “남의 땅에 기름을 유출하고 뒤집어씌우기까지 한다”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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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환경연합 조환익 사무국장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레인보우(기름띠)가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지속적으로 기름이 수질을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수시청 관계자는 “우수로의 기름이 광양만으로 빠져나가기 전 LG측의 유수분리관이나 하수처리장을 통해 정화된 다음 배출되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여수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와 발전노조 여수화력지부 소속의 20여명은 9월6일 기름 유출 은폐 규탄집회를 갖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또한 자사 관련 환경사고에 눈감기 십상인 다른 노조들과 달리 발전노조 여수화력지부(비대위 의장 이준상)는 사건 발생과 사고 처리 과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성명을 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름 유출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토양에 흡수돼 인근 생태계의 각종 생물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의 주요 독성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는 토양에 침투됐다가 서서히 용출돼 지하수 등에 잔존하게 된다. 생물체가 PAHs에 노출되면 체내에 100~1만배 농축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생식능력 저하, 성장 또는 면역체계의 감소, 내분비 기능 저하, 기형아 탄생, 종양 발생 등의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름 유출 쉬쉬, 죽어가는 여수
    남동발전이 입주해 있는 여수산업단지는 동양 최대의 화학공단이지만 공장입주 30여 년이 지나면서 시설 노후화에 따른 환경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조환익 사무국장은 “이곳은 매달 한 건 이상의 환경사고가 일어나고 있지만 기업들이 이윤추구에만 매달리다 보니 대부분 은폐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류중구 여수환경연합 공동의장은 “남동발전이 지난 1년간 은폐했던 기름 유출 사고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환경 사고를 은폐 혹은 축소시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환경재앙을 야기시키는 범죄행위인지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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