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2002.09.19

서울시 교육위, 교육계 ‘태풍의 눈’

30~50대 대거 진입 세대교체 성공 … “거수기 노릇 사절” 활발한 개혁 노력에 교육부도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09-24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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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교육위, 교육계 ‘태풍의 눈’
    지난 7월 치러진 제4기 교육위원(임기 4년) 선거 결과 무풍지대로 알려졌던 시·도교육청 교육위원회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교육위는 60대 후반 위원들로 구성돼 퇴직 관료들의 사랑방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4기 교육위에 30~50대 초반 위원들이 대거 진입해 한층 젊어진데다 절반 이상이 초선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초특급 태풍 수준의 ‘교육자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전교조 출신이거나 전교조의 지지로 당선된 25명의 교육위원들. 이번 선거에서 뽑힌 146명의 교육위원 가운데 전교조 지지 후보는 25명(17.1%)이었으며, 특히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15명 중 절반 가까운 7명이 당선됐다. 자연히 한 해 3조7000억원의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활동에 교육계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9월2일 제4대 교육위 의장을 선출하는 개원 당일부터 파란이 일었다. 바로 전날 전교조 출신 위원 7명이 불참한 가운데 나머지 8명의 위원들이 이순세 위원(56)을 의장으로 선출하는 데 합의해 밀실 담합이라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다음날 7명의 의원들이 성명서를 내고 “전교조 출신에게 의장 자리를 내 줄 수 없다는 논리로 밀실 담합을 하는 것은 민의를 왜곡하고 교육자치를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앞으로 교육감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은 교육위원회의 의장으로 나서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의 임기가 2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감을 염두에 둔 일부 교육위원들이 교육위원회를 사전 선거운동기구로 변질시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개원 당일부터 감지된 팽팽한 긴장감은 이튿날 본회의장에서 열린 서울시 교육청 주요 업무보고 자리로 이어졌다. 유인종 교육감의 인사와 이기호 기획관리실장의 보고로 시작된 회의는 3시간을 넘겼다. 긴 보고가 끝나자마자 교육위원들은 “서울시 교육청은 잘한 일만 있느냐”며 업무보고가 정확하지 않다고 질타했고, “교육청의 일반직은 왜 업무보고를 하지 않느냐”고 추궁하는 등 교육위가 ‘교육감의 거수기’ 노릇이나 한다는 비판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서울시 교육위, 교육계 ‘태풍의 눈’
    일신한 서울시 교육위에 대해 학부모들의 기대도 각별하다. 서울 삼성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인 이빈파씨는 “이번 교육위는 현직 교사 출신의 개혁성향의 분들이 많아 기대가 크다. 조례제정이나 국민청원권 등 교육위가 가진 권한을 충분히 행사해주기 바란다. 특히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나타났듯 선거인단인 학교운영위원회가 제 기능을 해야 책임 있는 교육위원도 선출할 수 있다. 각 학교의 학운위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교육위는 제도적인 지원을 해야 하다”고 했다. 강서·양천교육시민연대 김유자 상임대표는 “서울시 교육위원이 해야 할 일에 비해 위원수 15명은 너무 적다. 한두 개의 소위원회를 운영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겠느냐”며 향후 교육위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교육위원회가 학부모, 교사, 주민의 교육 참여를 위한 통로가 돼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에 위원들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국 최연소 위원으로 재선에 성공한 김홍렬 위원(39·공인회계사)은 3기 활동을 평가하면서 “교육위 구성이 교육 경력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학부모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교육관료 출신이 15명 중 10명으로 교육부의 일방 행정에 너무 익숙해서 부당성을 주장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3기 부의장을 지낸 박명기 위원(44·서울대 교수·재선)은 2001년 교육청 행정사무감사를 마친 뒤 “절반의 보람, 절반의 한계”라는 말을 남겼다. 박위원이 지적한 한계란, 현재 위임형 의결기구로 되어 있는 교육위의 ‘엉거주춤한’ 법적 지위로는 교육청 감사를 통해 교육을 변화시키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제들을 떠안은 4기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지난 9월2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정식 출범했다. 위원들 상당수가 어느 때보다 개혁 성향이고 전문성과 추진력을 골고루 갖췄다는 점에서 기대가 큰 반면, 서울시 교육위가 공교롭게도 전교조와 비전교조 출신이 7 대 8(의장 1명)로 구성돼 있어 자칫 교육이념의 대결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이순세 의장은 “밖에서의 걱정과 달리 15명이 혼연일체가 돼 일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육위, 교육계 ‘태풍의 눈’
    4기의 활동이 시작되자 그동안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교육위원 연구실도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평교사 출신 위원들은 학교에 출근하듯 매일 교육청으로 나오거나 직접 현장감사를 다녀 교육청 직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교육청의 빈 공간을 활용해 3인 1실로 되어 있는 위원 연구실도 1인 1실로 바꿀 계획. 그만큼 무보수 명예직으로 유명무실했던 교육위원의 기능이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신림초등학교 교사였던 이건 위원(57)은 “교육위원이 되기 위해 천직인 교직까지 포기했다. 각오가 된 만큼 교육위 활동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방교육자치법의 겸직금지 조항에 따라 현직 교사가 교육위원으로 당선되면 임기 개시 전 사표를 내야 한다. 현직 교사 출신으로 4기 교육위에 진출한 위원들은 “교육위원이 됐다는 이유로 4년 후 교단 복귀 가능성을 막는 것은 현직 교사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4기 교육위의 정식출범을 앞둔 8월21일 ‘서울시 4기 교육위원회의 과제와 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서울 교육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안승문 위원은 학교운영위원회의 민주적 운영과 활성화를 위한 노력, 아이들에게 최고의 학교 급식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 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교사들의 노력 적극 지원, 교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 교육행정 개혁과 학교운영 혁신 프로젝트 추진,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 확대 및 부패 사학에 대한 강력 대응 등을 4기 교육위가 추진해야 할 특별 과제로 내걸었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 교육행정가들의 요구까지 골고루 반영한 과제다. 안위원은 앞으로 교육위가 교육계 내 각 집단-교사, 교장, 장학사, 일반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 아니라 난마처럼 얽힌 서울의 교육문제를 풀어갈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교육위원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중앙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도 긴장시키고 있다. 당장 김홍렬 의원은, 1999년 교원 정년 단축으로 명퇴수당 등 막대한 예산수요가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별도 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지방교육채를 발행해 충당하는 바람에 각 교육청이 빚더미에 앉은 사실을 질타했다. 당시 김덕중 교육부 장관이 국가예산에서 전액 보전할 것을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어 4기 교육위가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을 때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안승문 위원은 “교육부가 사업을 지정하고 예산 책정을 강요하는 관행이 예산 낭비의 요인이 되고 있다”며 “예산 편성에 대한 교육부의 간섭과 통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시 교육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 146명의 교육위원이 참여하는 ‘전국교육위원협의회’ 구성을 추진중이다. 시·도교육위원들끼리 의정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나눔으로써, 중앙에서 만든 획일적인 교육정책들이 기계적으로 시·도교육청에 하달되는 현 관행을 뿌리뽑고 예산과 인사에서도 교육부와 중앙인사위원회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교육자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1991년 교육자치가 시작된 이래 종이호랑이로만 인식되던 교육위원회는 이제 비장한 각오로 출사표를 던졌다. 김홍렬 위원은 교육자치의 정착을 위해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지방자치 단체장에게는 상당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교육위원회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지난 4년 동안 교육위원회 회의를 방청하는 교원단체나 시민단체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교육위를 지켜보는 시민들만이 교육자치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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