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2002.09.19

이회창 선영 옆길 막아 兵風 차단?

일부 풍수지리가들 주장… 길 막은 김모씨 “이후보와 관련 없다” 주장

  • < 예산=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12-23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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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선영 옆길 막아 兵風 차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영을 둘러싸고 일부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 ‘풍수논쟁’이 일고 있다. 최근 발행된 한 풍수 관련 책이 ‘이후보 선영 주변에 모종의 인공적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이후보가 정연씨 불법 병역면제 의혹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한 것이 그 발단이다.

    정연씨 병무비리 의혹 사건은 대선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소재로 삼은 영화 ‘보스상륙작전’의 여권 관련설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검찰 수사중인 이 사건의 본질적 진실규명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정연씨 병무비리 의혹의 ‘변종’들이 양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9월10일 발행된 ‘권력과 풍수’(도서출판 장락)라는 책은 노무현 정몽준 이회창 이한동 등 대통령 후보들의 자택, 선영 등을 풍수지리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중 “이회창 후보의 선영 주변의 풍수적 상황이 최근 변모했다”면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후보 선영은 충남 예산읍 시가지 내 낮은 언덕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이 선영엔 이후보의 조부, 사촌형 등 이후보 일가 친인척과 조상의 묘 10여 기(基)가 들어서 있다. 언덕 위엔 아파트 수개 동이 건설돼 있었다.

    좌청룡 자리는 ‘이후보 아들의 기운’



    이회창 선영 옆길 막아 兵風 차단?
    언덕 아래에서 이후보 선영을 정면으로 보면 오른쪽 옆으로 ‘아마리 고갯길’로 불리는 비포장 길이 나 있다. 일제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90년대 중·후반엔 언덕 위 아파트 공사 등의 이유로 이 길로 소형 차량들과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간 9월14일에는 입구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 이 길은 사실상 폐쇄된 상태였다.

    ‘권력과 풍수’는 사람과 차량이 전혀 통행하지 못하도록 최근 누군가 이 길을 인공적으로 막아놓은 것이 풍수적으로 이후보에게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아마리 고갯길이 나 있는 자리는 이후보 선영이 좌청룡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해당된다. 좌청룡 자리는 ‘이후보 아들의 기운’이나 ‘이후보의 관운’과 연관이 되는 자리라고 한다.

    이회창 선영 옆길 막아 兵風 차단?
    이 책에서 저자인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 길로 사람과 차량이 자주 지나다니면 그로 인해 지맥이 손상받게 되고 따라서 좌청룡의 기세, 즉 이후보의 관운과 이후보 아들의 운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이 길에 차량과 사람 통행이 잦았던 97년 대선 때 이후보는 정연·수연씨 병역문제로 큰 낭패를 봤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조선시대 헌릉 논쟁을 비슷한 사례로 제시했다. 헌릉 논쟁은 ‘조선 태종의 능인 헌릉 주변 길에 사람과 우마의 통행을 허용하면 그로 인해 맥이 잘려 왕실에 재앙이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길의 폐쇄 여부를 놓고 30년 동안이나 조선 조정에서 논쟁을 벌였다는 일화다.

    김교수는 “최근 아마리 고갯길이 폐쇄됨으로써 기맥 손상의 우려가 없어졌다. 또한 좌청룡으로 지기가 흐를 때 잠깐 세게 눌러줘 기 흐름을 강화시키는 ‘고갯길 효과’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게 됨으로써 이후보 아들과 이후보의 운을 강하게 하는 효과가 나게 됐다”고 말했다. 즉, 인위적인 길의 폐쇄라는 풍수적 환경 변화가 현재의 ‘병풍정국’에서 이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권력과 풍수’는 “길이 폐쇄된 이유나 내력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길의 폐쇄에 따른 ‘공익’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 일대 통행에 일정 부분 불편을 초래했다는 점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보는 근거다. 책은 또한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길을 포장하는 사업까지 계획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갑작스러운 길 폐쇄에 대한 의문에 무게를 실었다.

    이 길은 김모씨(70대 후반)가 길에 자신의 땅 수평이 물려 있는 점을 근거로 2001년 6월쯤 폐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책은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고갯길을, 한 개인이 자기 땅 몇 평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폐쇄시킨 것은 시골 인정상 있을 수 없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실었다. 또한 “하필이면 폐쇄된 길 부근에 이회창 후보의 선영이 있고, 또 금년 말 대통령선거가 있다는 점이 사람들이 그 내막을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라면서 그 때문에 “아마리 고개를 폐쇄한 것이 정연씨의 병역문제로 인한 구설수를 막기 위한 풍수적 장치가 아니냐는 말도 번져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풍수 조치 관심 없다”

    길을 폐쇄한 당사자인 김씨측은 길을 다시 열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김씨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감옥에 가두려면 가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측은 또한 “이회창 후보 쪽과 길 폐쇄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의 아들은 기자에게 “윤모씨라는 사람이 난데없이 길에 포함돼 있는 아버지의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제3자와 땅 거래 계약을 맺는 바람에 아버지가 길을 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회창 후보 가문의 누구와도 면식이 없으며 그들로부터 길을 막아달라는 제의도 받은 적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측 설명에 따르면 이후보가 ‘어부지리’로 혜택을 입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보 선영 주변의 길은 소유권 분쟁의 와중에 있던 개인이 순전히 자구책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끊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은 97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부친의 묘를 명당 자리로 알려진 경기도 용인 모 처로 이장해 풍수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지만, 이회창 후보는 풍수적 조치를 취하는 문제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풍수지리학자 사이에서 이후보 선영은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이후보 선영을 직접 찾은 풍수가들도 수십여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번 아마리 고갯길 논란은 풍수연구가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예산의 향토사학자인 강희진씨는 “아마리 고갯길 폐쇄가 풍수적으론 이후보 아들 병역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풍수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그러나 고갯길 통행이 풍수적으로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다른 의견을 펴는 풍수학자도 있다”고 전했다.

    김두규 교수에 따르면 정몽준 의원 부친 정주영씨의 묘는 경기 하남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씨 일가측이 공개를 사실상 불허하고 있어 풍수가나 일반인들이 답사하기 어렵다고 한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풍수학자들이 이런저런 논리로 대선주자 조상의 무덤과 대선 결과의 관련성에 대해 해석을 내리는 것은 흥밋거리로 봐줄 수 있지만, 만약 대선후보가 풍수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다면 웃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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