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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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 중 하나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시장’

‘13억 매력’ 중국 진출 국내기업 환상 금물 … 제조업 → 고부가가치로 투자 전략 바꿔야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01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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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개 중 하나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시장’
    ”중국에 공장 세워서 생산을 시작해 놓고도 제대로 계약을 한 건지 바가지를 쓴 건지 알려면 1년이나 걸립니다. 그때 가봐야 땅값이나 임대 계약 조건 등에서 불필요한 손해를 본 건 없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지난 96년 말 중국에 생산공장을 세워 ‘중국 진출 6년차’를 맞는 전자부품용 코일 생산업체 ㈜프리텍의 이명환 사장은 중국 진출에 나서는 대부분 한국 기업들이 막연히 ‘한국보다 훨씬 싸니까 일단 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익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 수교 10년을 맞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이사장의 지적처럼 공장 부지 계약 단계서부터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뜻밖의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 역사가 10년을 넘어섰지만 기초적인 분야에서조차 ‘게임의 법칙’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최근 KOTR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출 실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우리나라 무역업체 3만1137개 중 무려 1만142개가 중국 수출업체로 나타났다. 수출업체 3개 중 하나는 중국 무역업체라는 이야기다. 우리 수출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對) 중국 수출 의존도도 수교 당시인 92년엔 3%에 불과했으나 이제 일본을 제치고 12%를 기록해 미국에 이어 제2위의 시장으로 떠올랐다.

    10년간 돈 쏟아부었지만 손해본 장사?



    열 개 중 하나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시장’
    미국 시장이나 일본 시장의 비중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중국 시장의 비중만 꾸준히 늘어온 것. 그러나 이처럼 빠르게 증가하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의 전략은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은 많이 쏟아부었지만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건진 것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일단 공장만 세워놓으면 당장이라도 13억 인구를 상대로 물건을 팔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면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10개 중 한 개’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지난 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가 중국에 투자한 나라들의 수익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독일이 9.4%, 미국이 8%, 싱가포르 6.2% 등인 데 비해 한국은 -`0.6%를 기록해 오히려 손해나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통계상의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중국 정부의 법인세 혜택을 받기 위해 가능하면 이익을 줄여 신고하는 관행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기업들의 대 중국 투자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투자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도 사양산업을 중국에 이전해 생산기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브랜드 인지도가 강한 제품으로 과감하게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국의 대 중국 투자 10년의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낸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주영 부장은 “1000만 달러 이상의 해외투자만을 놓고 볼 때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은 유럽이나 중남미에서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중국에서는 플러스를 기록했다”며 시장 잠재력이 큰 제품 위주로 승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수출은 전통적으로 광둥(廣東) 푸젠(福建) 광시(廣西) 자치구 등 남부 지역의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해 왔다. 이런 상황은 아직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 등 동부 지역의 비중은 다소 늘고 있다. 또 상하이(上海)에 금융이나 IT분야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러나 산시(山西)성이나 안휘(安徽)성, 허난(河南)성 등 중부권의 비중은 아직도 미미한 형편이다.

    지역적으로만 편중된 것이 아니라 품목에 있어서도 제조업 의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 현실이다. 5월 말 현재 대 중국 투자액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무려 84%나 된다. 우리나라의 전체 해외투자액 중 제조업 비중이 54%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업 비중은 중국 투자에서 월등히 높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시장의 저임금 노동력만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현실적 여건 이외에 중국이 아직 서비스 시장의 문을 잘 열지 않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그러나 이미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외국인 편의 시설 등 서비스 분야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비스 시장 선점 경쟁에 하루빨리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대 중국 제조업 투자 비중은 97년까지 줄어들었다가 경제위기 이후 다시 늘어나는 양상을 보여 서비스 시장 선점 경쟁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대 중국 건당 투자규모는 87만 달러로 전세계 해외투자에서 나타나는 건당 224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저임금을 의식한 ‘생산기지 이전형’ 투자만 진행될 뿐 대기업 투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것. 대 중국 투자가 중소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조선족 동포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사양산업 생산기지 No! … 브랜드 제품으로 승부해야

    조선족 출신의 광운대 한홍석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중국에만 나가면 다른 나라보다 인건비 등 투자 환경이 좋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시장 진출은 곧 중국 소비자들을 놓고 세계적인 기업들과 같은 경쟁 대열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중 수교 직후에 비하면 중소기업들의 중국 투자 동기는 조금씩 달라지는 기미가 보이고 있다. 수교 직후인 지난 94년 한국무역협회가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서 중국에 투자한’ 기업은 40%였다.

    광운대 한홍석 교수는 “중국이 원부자재들의 자체 조달 비율을 높이고, 우리 소비자들도 중국 제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대 중국 무역흑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의 대 중국 무역의 패턴이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첨단 제품으로 방향 전환에 실패한다면 현재 대 중국 흑자는 ‘거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여태까지 지불한 수업료가 큰 만큼 앞으로 더 많이 거둬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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