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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헤드윅’

동성애 영화 ‘한계’ 넘은 ‘록 오디세이’

  • < 전찬일/ 영화평론가 > jci1961@hanmail.net

동성애 영화 ‘한계’ 넘은 ‘록 오디세이’

동성애 영화 ‘한계’ 넘은 ‘록 오디세이’
”2001년은 록 뮤지컬 오디세이의 해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물랑 루즈’가 특이한 화음을 들려주었다면, 이제 ‘헤드윅’은 록 뮤지컬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린다.”

영화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2001)에 대한 USA투데이의 평가다. 결코 과찬이 아니다.

이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 동독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 한셀이 어떤 과정을 거쳐 헤드윅이라는 드래그퀸(여장남자) 로커가 되었으며, 왜 톱가수 토미 노시스가 가는 곳마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공연(그림자 투어)을 펼치는지를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작진은 이 영화에 ‘포스트-펑크 네오-글램 록’이라고 이름붙였는데, 이는 펑크 이후 나타난 묘한 분위기의 글램 록을 다룬 뮤지컬 영화라는 뜻이다.

동성애 영화 ‘한계’ 넘은 ‘록 오디세이’
‘헤드윅’은 1994년 미국 뉴욕의 한 드래그퀸 클럽의 초라한 공연에서 시작됐는데, 오프 브로드웨이의 인기 뮤지컬을 거치며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감독상 등 숱한 상들을 거머쥐었다.



그 긴 여정의 주역은 존 카메론 미첼과 스티븐 트래스크. 헤드윅 역을 맡아 환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미첼은 연출과 시나리오 등을 맡았다. 트래스크는 흡인력 넘치는 멋진 곡들과 철학적 노랫말을 창작했고, 헤드윅의 밴드 ‘앵그리 인치’의 한 멤버로 연기까지 펼쳤다. ‘헤드윅’은 두 아티스트의 완벽한 협동이 빚어낸 멋진 산물인 것이다.

두 사람은 영화의 테마곡 ‘사랑의 기원’을 탄생시키기 위해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양성인간 이야기도 참고했다. 이는 애초 남녀 두 성을 갖춘 양성인간이 오만불손함 때문에 신에 의해 양성으로 갈라져 결국 ‘잃어버린 반쪽’을 그리워하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사랑의 기원’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 곡은 영화의 주제와 지향점을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

‘헤드윅’은 루 리드, 이기 팝, 데이비드 보위 등 세상의 모든 위대한 글램 록 뮤지션들과, 주인공 헤드윅처럼 성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고통받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다. 영화 음악에는 세 스타에 대한 미첼 자신의 무한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렇듯 ‘헤드윅’의 으뜸 미덕은 음악이다. 세련됨이나 기술적 완성도에서는 ‘트레인스포팅’(96)이나 ‘벨벳 골드마인’(98)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만, 전체 효과에서는 단연 앞선다. 빼어난 음악을 구현했던 빔 벤더스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99)이나 ‘판타스틱 소녀백서’(2001)를 능가할 정도다.

동성애 영화 ‘한계’ 넘은 ‘록 오디세이’
그래서 이 영화는 전설적 컬트 영화이자 역사적 록 뮤지컬인 ‘록키 호러 픽쳐 쇼’(75)처럼 열혈 팬들-‘헤드헤즈’(HedHeads)라고 불린다-에 의해 열광적으로 숭배되고 있다.

‘사랑의 기원’은 물론, 헤드윅의 과거사를 제시하는 도입부 ‘테어 미 타운’도 우리를 압도한다. 95분짜리 록 오디세이 출항을 알리는 곡으로 전혀 손색없다. 밴드 명의 유래를 상세히 들려주는 ‘앵그리 인치’의 빠른 템포와 강렬한 비트엔 몸이 절로 흔들리고 통렬한 세태풍자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첫 남편인 미국 흑인 GI 미스터 로빈슨과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는 ‘슈거 대디’의 유머엔 웃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패티 페이지, 티나 터너, 오노 요코, 아레사 프랭클린, 니코 그리고 헤드윅 자신 등에게 바치는 헌사인 ‘미드나이트 라디오’에 이르면 감동은 절정에 이른다.

주목할 사실은 영화 속 노래들이 그저 립싱크한 것이 아니라 미첼이 직접 불렀으며 록 뮤지컬답게 일단 한 곡이 나오면 끝까지 노래·연주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느 음악 영화에서 맛볼 수 없는 긴 호흡이 유지되며 그로 인해 짙은 진정성이 배어나온다.

‘헤드윅’이 아주 잘 만들어진 음악 영화를 넘어 인간 조건과 성정체성에 관한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 비상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그 진정성 덕분이다.

‘헤드윅’은 80년대 초반 커밍아웃한 한 게이 감독의 동성애 영화라는 ‘한계’ 또한 훌쩍 뛰어넘는다.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 덕분이다.

단언컨대 헤드윅은 영화에서건 실생활에서건 필자가 본 가장 성숙한 트랜스섹슈얼로 기억될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에서 만난 가장 매혹적이고 복합적이며 인간적인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될 듯싶다.

심지어 영화는 비단 성적으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숱한 소수자에 대한 필자의 시각마저 성숙시켰다. 록 오디세이에 대한 나의 찬사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걸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주간동아 348호 (p74~75)

< 전찬일/ 영화평론가 > jci19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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