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

명지초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귀윤 교장 돌연 사의 표명… “교육철학, 현실의 벽에 막혀”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13 10: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명지초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7월9일 서울 명지초등학교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1학기를 마무리하는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은 후 학교장 강좌에서 이귀윤 교장(69)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현실이 내 교육철학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그만두겠다”며 총총히 사라지는 교장의 뒷모습을 교사와 학부모들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곧장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에 감화된 바 크다. 학교에 계속 남아달라”는 뜻을 모아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서명 결과를 가지고 명지학원 이사장실을 찾아가 이교장의 사퇴를 번복케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고, 재단측도 뜻을 같이했다. 30학급, 전교생 1000명이 안 되는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교장의 사퇴를 놓고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일까.

    이귀윤 교장은 98년 이화여대(교육학)를 정년 퇴직하고, 동시에 10년간 겸직했던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난 후 명지로 자리를 옮겼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하겠다.” 이교장은 무슨 무슨 분야에서 최고의 학교로 만들겠다는 각오도, 유행처럼 ‘열린 교육’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이교장의 교육에세이 ‘거꾸로 타고 싶은 지하철’을 보면 “교육에서는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없앴다. 그것이 촌지, 체벌, 왕따였다.

    학부모들 서명운동 통해 사퇴 만류



    특히 촌지에 관한 한 이교장은 ‘결벽증’이라 할 만큼 철저했다. 아이가 학교에 놓고 온 물건을 찾으러 온 어머니가 고구마 한 바구니를 삶아 담임선생님께 드렸는데 그조차도 돌려보낼 정도였다. 촌지를 주고받게 되면 교육은 끝장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리고 그 흔한 경시대회나 학력평가를 없앴다. 1등 2등 3등 하는 등수도 자연히 사라졌다. 대신 교사들에게 백지통지표를 나눠주었다. 어느 1학년 학생의 통지표를 보니 A4용지로 4장이다. 교과학습발달 상황 및 재량 활동에 대해 교사는 국어, 수학,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컴퓨터 등 각 과목별로 학생의 수준을 최소 두 문장 이상으로 상세히 기술했다. 종합기술평가 부문에서는 학생이 잘하는 것과 지도가 더 필요한 부분을 적시했다. 교사가 학생의 발달상황을 두루 꿰고 있지 않으면 작성할 수 없는 통지표였다. 이를 위해 이교장은 꾸준히 학급당 인원을 줄여왔다. 부임하던 해는 평균 38명이었으나 지금은 31명이다. 처음부터 줄여 뽑은 1학년의 경우 학급당 24명밖에 안 된다. 학급운영에 최상의 인원이다.

    그러나 이교장의 교육철학이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사소한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수시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왜 이렇게 했느냐, 왜 이렇게 안 해주느냐. 한번은 저학년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준비물을 프린트해주면 정확할 텐데 왜 아이들에게 불러주고 적게 하느냐고 묻더군요.

    아이가 어리니까 듣고 제대로 받아적지 못할 수도 있죠. 그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일부에서 “인성교육도 좋지만 공부를 너무 안 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명지 출신은 중학교 가면 고생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교장도 퍽이나 마음고생을 한 듯하다. 나이를 핑계로 여러 차례 사의 표명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공식석상에서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번 일로 교육의 정도만 걸어온 노(老)교장의 소신이 꺾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