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2002.08.01

국내 주방용 세제 믿고 쓸 게 없다

‘환경호르몬 검출’ 발표 후 3개월간 무대책 … 유해성 입증 전이라도 실질 대책 마련해야

  •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04-10-13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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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주방용 세제 믿고 쓸 게 없다
    한 달 평균 300g의 주방용 합성세제를 사용하는 주부 정모씨(33·경기 부천시)는 지난 5월9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주방용 세제에 환경호르몬 추정 성분이 들어 있다고 발표한 뒤부터 찜찜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뉴스를 접한 당시 그는 2세들을 위해서라도 무공해비누를 만들거나 천연세제를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 소비자단체로부터 천연세제도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다시 가까운 슈퍼에서 합성세제를 사다 쓰고 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제품들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왔는지 알아야 가려 살 것 아니냐”면서 “발표만 해놓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으니 몰랐던 때보다 더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소비자들 대부분의 공통된 반응이다. 소비자들은 우선 환경호르몬에 대해 불안 심리를 내보이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렵고 관련 지식도 적어 소비 행위까지 바꾸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정부가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제공하지 않고, 유해물질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 탓이다.

    발표할 때만 충격, 금새 잊어



    국내 주방용 세제 믿고 쓸 게 없다
    지난 5월 식의약청은 ‘2001년도 내분비계 장애물질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한국화학시험연구원(안전성연구센터 이하형 연구팀)이 시중에 유통중인 주방세제 9품목, 자동식기세척기용 세제 2품목 등 11개 제품의 알킬페놀류 잔류량을 검사한 결과, 9개 제품에서 알킬페놀류의 하나인 펜틸페놀이 최고 352.8ppm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1940년대 영국에서 개발된 알킬페놀류는 합성수지류의 산화방지제나 주방용 세제류의 계면활성제(물 등 용액의 표면에 붙어 그 표면장력을 감소시키는 물질로 세척력 분산력 등을 지니고 있음)로 사용돼 오다 이 물질이 포함된 물을 실험 쥐에 먹였을 때 정자 수 감소와 성기 왜소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연구보고가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물질이다.

    알킬페놀류는 세계야생보호기금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추정해 분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해관찰물질로 분류해 수입량과 유통량을 관리하고 있다.

    화학시험연구원 연구팀 이하형 박사는 “검출된 알킬페놀류는 극미량으로 세제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인체 영향과 잔류 허용치 등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조사된 자료가 없어 좀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조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것은 실제 알킬페놀류가 원료로 들어갔다기보다는 용기 등의 영향이나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로 섞였을 가능성을 말한다.

    국내 주방용 세제 믿고 쓸 게 없다
    식의약청은 당시 조사 결과 환경호르몬 추정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난 제품명이 무엇인지 일절 밝히지 않았다. 식의약청 관계자는 “정책적인 이유로 제품명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정책적인 이유라는 것은 당장 인체 유해성 정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 활동에 타격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최준호 간사는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주방용 세제의 제조업체를 밝히고 해당 제품에 대해서는 판매금지조치를 취하는 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의대 임종한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극미량으로도 인간 및 동물의 생체 내에 작용하여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특히 생필품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할지 기준치를 만드는 작업이 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식의약청 등 관계 당국은 발표 뒤 3개월이 가까워오고 있지만 환경호르몬의 허용 기준치 등을 마련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

    식의약청 관계자는 “환경호르몬의 배출허용 기준치 등은 환경부 쪽 관할”이라면서 “식의약청에서는 외국의 기준치 등에 관한 현황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필품 허용 기준치 속히 제정을

    내분비계 장애물질 관련 연구보고는 98년 이후 해마다 환경부와 식의약청이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모유에 포함된 다이옥신의 함량이 몇 배가 높아졌다거나, 남성의 정자 수가 얼마나 감소했다는 등의 발표는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지만 대부분 금세 잊혀지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엄청난 일들이 가정에서 매일 사용하는 세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조차 애써 외면한다.

    국민의 식품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식의약청이 매년 이런 사업을 통해서 각 사안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예컨대 주방용 세제에 환경호르몬 알킬페놀류가 포함됐다는 것은 과거에 시민단체들이 계속 지적해 왔던 내용이다. 또한 국립환경연구원이 1999년 펴낸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이해와 대응’에서도 알킬페놀류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식의약청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뒤로 미루었다.

    알킬페놀류뿐만 아니다. 정부의 유해물관리 체계는 부처간 협조 부족이나 법규 미비 등으로 인해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과 PCB 등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다. 이 물질들은 유독물질로 분류돼 소각장 등에서의 배출기준은 있지만 대기 및 수질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시민들은 이런 유독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우리도 지난 1998년 내분비장애물질 대책협의회를 설치했고, 중·장기연구계획(1999~2008년)도 수립됐다. 그러나 그 일정을 보면 2001년 목록작성, 2004년 권고 기준치 마련, 2008년 총량 규제안 확정 등으로 규제 일정이 지나치게 늦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96년 8월 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 선정 및 시험 자문위원회(EDSTAC)를 구성해 2003년까지 위해성을 조사키로 했으며, 일본은 98년 5월 일본 환경청에서 ‘환경호르몬 전략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8년 3월 내분비장애물질에 대한 작업반을 구성해 시험방법 등을 논의했다.

    물론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검출 및 시험방법이 없어 연구기관간에 시험 데이터의 비교 평가가 곤란한 실정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검출방법이나 내분비계장애 여부를 판별하는 시험방법 개발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나타나기 전에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 실질적인 조치와 규제법률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물질을 제외하면 해당 물질의 작용 메커니즘과 역학조사 등에 따른 유해성 판명에는 고도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장기과제이지요. 그러나 유해성이 분명한 일부 물질에 대해서는 판매금지 조치를 내리고, 시민들의 노출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임종한 교수)

    아주대 의대 장재연 교수는 “알킬페놀류 등 환경호르몬 관련 물질들은 그 인체 유해성을 명확히 입증하기 전이라도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상품에 성분표시제 등을 도입해 기업측에 자율적으로 유해물질을 쓰지 않도록 유도하고, 국민들 스스로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 “몸 속으로 스며들 가능성”

    환경정의시민연대 김소연 부장은 주방용 세제의 경우, 특히 여성들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신속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장시간 설거지 혹은 과일 세척 등을 할 때 계면활성제가 피부의 지방성분을 분리하게 되면 유해성분이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것은 역학조사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편 LG 제일제당 애경 등 주방용 세제를 만드는 대표적인 회사들은 자사 제품이 이번 발표와 관련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은 식의약청에 자사 관련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식의약청은 이를 거부했다. 이들 회사 관계자들은 “자체 연구소를 통해 시험을 거쳤으나 알킬페놀류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생활용품 등에 사용되는 일반화학물질의 경우 그 유해성 규명을 정부가 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 이는 농약 의약품 등의 경우 기업측에 유해성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 형평에 어긋난다. 따라서 일반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오염자 부담원칙이 적용되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

    국립환경연구원은 전국 각 지역 하천의 수질을 검사한 ‘내분비 장애물질 환경 잔류 실태 조사’ 결과를 7월 말경 발표한다. 그러나 이제는 실태 조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환경호르몬에 대해 더욱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척력이 강한 세제는 환경호르몬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식의 일차원적 대처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

    가정하수는 하천 및 강 오염의 주범이다. 가정하수가 환경호르몬에 오염돼 있다면, 이 환경호르몬은 하천 및 강의 상수도원을 통해 다시 가정의 수도꼭지로 들어오는 악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냥 무심하게 사용하는 가정용 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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