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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금업 시장’ 진출 초읽기

‘엄격한 조건 충족 땐 허용’으로 가닥 … 연 이자만 20조원 틈새시장 쟁탈전 치열

  • < 허원순 /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

은행 ‘대금업 시장’ 진출 초읽기

은행 ‘대금업 시장’ 진출 초읽기
지난 7월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11층 회의실. 한국 금융감독 정책의 주요 방침을 논의하는 금감위의 정례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하는 유지창 부위원장을 비롯, 9명의 금감위·증권선물위원회의 상임 비상임 위원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가끔씩 격한 목소리도 회의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팽팽히 맞선 설전은 한동안 계속됐으나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는 격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금감위 정례회의에 상정될 ‘은행의 대금업 진출’ 인가를 앞두고 위원들끼리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다. 찬반 의견이 비슷하게 엇갈려 결론이 나지 않자 유 부위원장은 “좀더 시간을 두고 다시 최선책을 모색하자”며 수습에 나섰다. 위원들은 다음 간담회 때 다시 논의키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이로부터 2주 후인 지난 7월19일. 합동 간담회는 다시 열렸고 재차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 사이 이 사안은 금융감독 당국과 금융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며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도 2주 전처럼 오후 내내 위원들 의견은 엇갈렸다. 난상토론 끝에 결론은 또 유보됐다.

그러나 은행의 대금업 진출 허용문제가 난상토론만 거듭한 채 표류할 것 같지는 않다.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은 은행의 대금업 진출 허용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간담회 이전에도 이 같은 방침은 이미 실무자들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왔다. ‘허용은 하되 엄격한 전제조건을 설정하고 이를 충족시킬 은행에 한해 풀어준다’는 쪽으로 일단 가닥이 잡힌 것이다.

신용 불량자 숨통 틔워줄 수 있나



은행 ‘대금업 시장’ 진출 초읽기
그렇다면 할부금융사 설립을 통해 은행이 대금업에 진출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반대론자들은 우선 “말이 좋아 대금업이요 소비자금융업이지, 실제로는 ‘고리대금업’일 뿐”이라며 용어 사용에서부터 문제 삼고 있다. 반면 “금융업계에 ‘유니버셜 뱅킹’(금융 업종이나 업무영역을 구별하지 않고 개별 금융회사가 모든 금융업무를 제한없이 하는 것)을 준비하라고 거듭 유도해 온 감독 당국이 왜 은행의 신규 사업을 제한하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찬성론자들도 많다.

이처럼 은행의 대금업 진출은 △현행 법규의 한계 △관치금융에 길들여져 온 금융업계와 소비자의 일반적 정서 △세계 최고의 금융 영업력을 가진 미국계 은행의 대금업 진출 △돈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일본계 대금업자들의 국내 급전시장 점거와 같은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된 미묘한 사안이다. 금감위 간담회에서 난상토론만 거듭되는 등 정부가 오랫동안 명확한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못했던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은행이 고리의 돈장사를 직접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별도 자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과연 문제인가. 신용이 나빠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은행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없는 신용불량자나 신용취약자에게 이자는 조금 더 받더라도, 어떻게든 돈은 빌려주겠다는데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은행 ‘대금업 시장’ 진출 초읽기
허용 반대론자들은 이에 대해 미래의 잠재위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은행이 과거 재벌들의 확장 경영을 흉내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다수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경영으로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손댔지만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한 기업만 살아남았다. 외형 부풀리기 경쟁에 나섰던 대기업들이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 어디로 갔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침체기 후 경기가 조금 살아나는 국면이어서 자금수요가 있으면서도 부실 요인이 적지만 경기 추이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만의 하나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지 않아 ’경기 급냉→금융 취약계층 양산→기업부도, 개인파산 증가→대금업계 충격파→모기업인 은행 타격→공적자금 재투입 필요’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경우에 대비해 은행의 부실요인은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금융산업의 중추인 은행에 잠재 부실요인이 생기면 금융업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은행마다 앞다투어 대금업에 뛰어든다면 가뜩이나 취약한 기업대출, 신용대출은 한층 위축될 수도 있다.

예금보험요율 문제와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등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지금처럼 은행의 예금보험요율이 똑같은 상황에서 은행이 고위험 신용대출에 나서면 먼저 은행의 건전성이 낮아지고, 여기서 불붙은 경쟁이 힘든 구조조정으로 어렵사리 홀로서기에 나선 상호저축은행과 신협 자산까지 부실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다분히 비관적인 측면에서 내다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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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찬성론자들은 이 같은 성격의 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명확한 근거 없이 사사건건 규제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전근대적인 금융 규제이자 관치금융이라는 주장이다. 스스로 자금을 조달, 상대방을 가려가면서 대출하고 각자 능력껏 대출금을 회수하는 ‘돈장사’를 은행들이 더 잘 알아서 할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말은 조심하고 있지만 재경부와 금감위, 금감원 등 감독당국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진작부터 은행들의 새로운 사업 진출을 막기 어렵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행 은행법에는 은행이 대금업에 직접 진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대금업을 할 자회사로 할부금융사 설립이라는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법적인 문제는 없어진다. 다만 금감위가 무슨 꼬투리를 잡고 인가를 유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당 은행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

현재 검토되고 있는 허용 전제조건은 몇 가지로 나뉜다. 먼저 할부금융 자회사의 대금업 매출이 회사 전체 매출의 50% 이하로 묶일 가능성이 크다. 서민 상대의 대금업 비중은 줄이고 실제 할부금융업을 하라는 요구다. 다만 이 조건은 정부 내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위원회가 반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부실에 대비해 자회사 내부에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 기준도 은행보다 훨씬 강화된다. 과도한 손실이 발생해도 자력갱생해야지 모회사인 은행에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도 모기업은 일정한도(신용공여 한도설정) 내에서 자회사에 자금을 지원, 자금상 연결고리가 명확히 끊겨 있어야 한다. 동반부실을 막기 위한 조치다. 대출금리를 연 30% 수준으로 묶는다든지, 상호를 은행과 다르게 쓰게 한다든지 하는 세부 시행 세칙도 검토되고 있다.

여하튼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은행들의 고금리 돈장사는 앞으로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1000만원 안팎의 대출금으로 연 20∼30%대의 금리가 적용될 소액대출시장 규모가 연간 100조원 가량 된다는 분석도 있다. 단순 계산해도 이자만 20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틈새 금융시장이 새로 탄생한다는 말이다.





주간동아 345호 (p30~31)

< 허원순 /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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