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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재보선 ‘3김’이 사라졌다

아무도 영향력 행사 못해 … 새로운 인물에 의한 정치지형 생성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8·8 재보선 ‘3김’이 사라졌다

8·8 재보선 ‘3김’이 사라졌다
지난 7월16일, 8·8 재보선 공천을 낙관하던 김상현 전 의원측에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 공천 특위에서 그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레이더에 잡힌 것. 이상기류를 읽은 김 전 의원측은 “당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만큼은 후농(김 전 의원의 아호)이 그냥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김 전 의원이 이번 선거를 통해 재기해 노무현 후보와 손잡고 당권을 잡을 가능성을 우려한 권력 핵심부가 공천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 음모론의 요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DJ)의 ‘보이지 않는 손’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당직자 K씨는 “DJ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이번만큼 영향력을 봉쇄당하고, 출마 후보들이 그를 무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두 아들(홍업 홍걸)의 구속, 분신으로 활동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구속 등으로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는 것.

현철씨 탈락 ‘상도동 무시’ 충격

8·8 재보선 ‘3김’이 사라졌다
‘뒷방 노인’으로 치부되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JP)도 마찬가지였다. YS는 아들의 공천을 챙기는 데 실패했고, JP는 한 명의 공천자도 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미니총선인 8·8 재보선이 연말 대선의 분수령일 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서 3김의 흔적을 몰아내는 첫번째 선거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선거 공천 시즌이 되면 부산과 경남권 정치 지망생들은 상도동을 찾는 게 관례다. 이런 흐름은 YS 퇴임 이후에도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출마자들이 상도동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나라당 후보로 종로에 출마하는 박진 후보가 상도동의 협력을 구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측근들은 펄쩍 뛴다. 한나라당 한 인사는 “아들 공천도 책임 못 지는데, 누가 찾아가겠나”라며 상도동의 몰락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실상 현철씨의 공천 탈락은 YS의 정치 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상도동 인사들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이회창 후보가 ‘상도동’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본다. 낙천 과정에서 YS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일방통보에 그쳤다는 것. 더구나 지난 지방선거 당시 “현철씨 정치활동을 돕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직·간접 메시지까지 갖고 있던 상도동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YS 부자는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방선거 때만 해도 볼 수 있던 ‘상도동식 엄포’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YS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떠밀려가는 듯했다.

한나라당의 마산 공천은 당 지도부와 김호일 전 의원의 힘겨루기로 진행된 흔적이 많다. 그 결과 김 전 의원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지난 2000년 총선 공천 당시 씨름선수 출신인 이만기 경남대 교수를 공천했다가 김 전 의원의 강력한 반발로 막판 뒤집힌 것에 이어 두 번째. 현지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두 번이나 이긴 김 전 의원이 강력한 제3의 대선후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 때문에 마산은 지금도 공천 후유증이 심각하다.

지역 분위기가 뒤숭숭하자 현철씨도 아쉬움을 곱씹고 있다. 한 측근은 지난 7월19일 현철씨를 만나 지역신문 보도내용 및 지지자들 분위기 등을 보고하며 “(출마를) 준비할까요”라고 의사를 물었다. 이에 현철씨는 “아쉬움은 많지만…”이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8·8 재보선 ‘3김’이 사라졌다
경기도 광명시에 도전장을 던진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동교동 가신이 무슨 죄인이냐”며 격앙된 감정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한때 공천과 당선의 보증수표였던 동교동 가신이라는 출신 성분이 이제는 거꾸로 회피 대상이 된 수모를 견디다 못한 남궁 전 장관은 권력 핵심부에 SOS를 타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싸늘한 답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는 수모를 견디다 못해 출마를 포기했다.

전북 군산은 저무는 3김 정치에 위기를 느낀 기득권층의 조직적인 담합 기류가 흘렀다.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우세를 보이던 함운경 전 삼민투 위원장이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에게 공천장을 뺏긴 것이 의혹의 출발점. 함씨가 공천될 경우 2004년 선거에서 젊고 개혁적인 신진 인사들이 대거 출마, 물갈이 기류가 심화할 것으로 판단한 현역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함씨는 안 된다”며 공천심사위원들을 압박했다는 것. 함씨는 7월18일 “모종의 거래 의혹에 강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반발했다.

DJ와 YS 이상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사람이 JP다. 자민련은 7월22일 현재 한 명의 공천자도 내지 못했다. 이미 자민련은 6·13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에 밀려 제4당(전국 득표율 자민련 6.5%, 민노당 8.1%)으로 전락한 상태.

당 지도부 한 인사는 JP를 찾아 “선거 대책을 세우라”고 다그치자 “선거가 끝나면 길이 열린다”며 딴소리를 했다고 한다. 지도부가 지명도와 경륜을 갖춘 몇몇 인사들에게 출마를 권유했으나 “자민련 후보보다 무소속 출마가 승산이 높지 않겠느냐”는 비참한 답변만 되돌아 오기도 했다. 조직과 자금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JP의 의지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한 당직자는 “이게 무슨 정당이냐”고 탄식했다.

JP, 한 명도 공천 없이 불구경만

3김이 비운 정치공간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새 정치지형을 만들고 있다. 서울 종로에 출마하는 박진 후보는 이회창 사단의 대표적 뉴페이스. 박후보는 자녀가 이중국적을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잘못하면 이회창 후보 손녀의 이중국적 문제까지 이슈로 부각시킬 수 있는 악재 중의 악재다. 그럼에도 이회창 후보는 그를 선택했다.

박후보는 이후보 특보 출신으로 이회창 사단의 성골로 분류된다. 당초 이후보는 박후보를 집권 후 청와대 공보수석에 임명하려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보직을 불쑥 사퇴하고 출마를 선언한 그를 심하게 질책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영등포을의 권영세 후보 역시 이회창 사단의 뉴페이스. 이후보의 사위(최명석 변호사)와 검사 시절 같이 근무했고 이것이 공천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남궁진 전 장관의 저격수로 선발된 전재희 의원도 비슷한 입장. 당내에서는 “당선되면 본전, 떨어지면 장관”이라며, 전국구 현역의원의 옷을 벗겨 지역구에 내보낸 처사를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대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

반면 서울 금천구의 이목희, 종로의 유인태 후보 등은 노무현 사단의 일원으로 평가되는 인물들이다. 새로운 질서의 형성에는 위협요인도 많다. 금천에서 이목희 후보에게 일격을 당한 김중권 전 대표는 반노(反盧)로 돌아섰다. 특히 김 전 대표는 천정배 후보 비서실장에게 들은 민주당의 기밀사항(2대 11이라는 선거 예상치)을 공개해 노후보를 궁지로 몰았다.

전북 군산에 도전했으나 탈락한 엄대우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외에 정흥진 전 종로구청장(종로), 김기영 전 서울시의회 의장(금천) 등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던 박계동 이신범 전 의원도 처지는 마찬가지.

공천에 대한 이 같은 반발은 3김이 당을 장악하던 2000년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3김이 비운 그 자리를 또 다른 3김이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측근과 금권, 학력, 계파에 따른 갈라먹기 등 3김식 정치행태가 여전히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비난이다. 이신범 전 의원은 “다 3김식 정치야”라고 변하지 않는 정치현실을 개탄했다.

이들은 3김이 출마하지 않은 첫번째 선거인 연말 대선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진단한다. 3김은 떠났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아직도 우리 정치를 휘감고 있다.



주간동아 345호 (p14~15)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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