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4

2002.07.25

‘100시간 계구 징벌’ 30대 수감자의 죽음

유가족들 “출감 8개월 前 자살 이해 못해”… ‘교도소내 마약거래’ 진정 뒤늦게 확인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10-14 14: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시간 계구 징벌’ 30대 수감자의 죽음
    지난 5월23일 부산교도소 ‘징벌방’에 수감중이던 한 수형자가 목숨을 잃었다.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중이던 배모씨(34)가 찢은 옷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된 것. 사망 당시 배씨는 수갑과 쇠사슬 등 계구로 100시간 넘게 묶여 있던 상태였다. 계구를 착용한 상태라도 손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 자살이 가능했다.

    유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교도소측의 보복성 징벌로 인해 발생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배씨가 지난 4월 말 검찰에 “교도소 내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 이에 따라 배씨 죽음의 진짜 이유와, 그가 제기한 교도소 내 마약유통 주장의 신빙성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이 사건은 유가족들이 “교도소측의 과도한 징벌로 인한 심리적·육체적 압박과 모멸 속에서 울분을 참지 못해 발생한 죽음”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배씨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사인은 질식사.

    그러나 유가족들은 배씨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출감을 불과 8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자살했다는 게 석연치 않다는 것. 유서도 남기지 않은 데다 배씨가 중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씨는 죽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적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수형중 교도관 행태 많은 불만



    유가족들은 특히 배씨가 검찰에 마약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교도관들과의 관계가 나빠졌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배씨가 받은 징벌은 교도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바른말을 해서 교도관들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씨는 수형생활을 하면서 교도관들의 행태에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행형법, 교도수칙과 관련된 책자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고 자료를 받은 뒤로는 이를 꼼꼼히 공부했다는 것. 가족들에 따르면 배씨는 교도행정이 규정과 다르다고 여겨질 때마다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고 한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법률구조공단, 법원 등에 보낸 진정서만 10여 통에 이를 정도.

    교도소측은 배씨에 대한 각각의 징벌은 모두 적합한 사유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배씨는 지난해 11월14일부터 3월13일까지 입방 거부 등의 이유로 징벌방에서 생활했고, 4월2일 ‘교도소 직원이 연루된 수용자들의 마약투여’와 관련된 메모를 갖고 있다 적발돼 2개월간의 징벌을 다시 받았다. 교도소측에 따르면 배씨는 5월 초 교도관을 폭행하고 사동을 청소하는 다른 수형자를 구타해 4개월의 징벌이 추가돼 10월까지 징벌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산인권센터 이광영 소장은 배씨의 죽음을 ‘타살적 자살’이라고 단언한다. “100시간이면 4일이 넘는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묶여 있을 때 오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대단하다. 100시간이 넘는 금치는 살인이나 다름없다. 10월까지 징벌이 예정돼 있는 상태에서 언제 쇠사슬을 풀어줄지도 모르니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을 것이다.”

    ‘100시간 계구 징벌’ 30대 수감자의 죽음
    유가족들도 “징벌방에 수감된 것만으로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데, 자유로운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계구까지 착용케 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다. 자살을 했다면 과도한 계구 사용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고 주장한다. 징벌방에 수감되면 서신 접견 등 외부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차단됨은 물론 독서, 운동, 작업 등의 일상생활이 모두 금지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쇠사슬로까지 묶어둔 것은 교도소측의 과잉행동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교도소 관계자는 “교도소 안의 일은 교도소가 알아서 한다. 법규를 위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살을 하거나, 문을 열 때 교도관을 폭행할 것을 우려해 수갑과 쇠사슬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부산교도소측은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연속적인 징벌과 100시간 넘는 계구 착용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 재소자 징벌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징벌을 목적으로 수갑을 채우거나 포승을 묶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계구의 사용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100시간이 넘는 계구 사용이 최소한의 범위인지 징벌목적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부산교도소 관계자는 “연속 징벌은 아무 문제가 없다. 계구 사용도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배씨의 죽음에 대해 도의상의 책임은 모르겠으나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으니 외부에서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과도한 징벌과 계구 사용이 수형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은 인권위 조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행형법은 계구의 징벌수단 이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예외적으로 자살방지, 질서유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교정 당국이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재량권을 남용할 소지가 있는 것.

    부산교도소 “절대 그런 일 없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뇌관은 재소자들의 마약투여 여부. 검찰은 배씨의 진정 내용에 대해 배씨가 지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발 검사를 하는 등 조사를 벌였지만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부산교도소 최규대 보안계장은 “교도소 내에서 마약이 유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절대 없었다고 확신한다. 담배가 몰래 들어오는 것처럼 대마초나 히로뽕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다”고 말했다.

    부산교도소는 지난 2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고의 감염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무기징역을 받은 수형자가 조기 출소를 목적으로 에이즈 환자인 다른 수형자의 피를 주사기로 수혈받은 사건으로 교도행정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사용된 주사기는 히로뽕 투약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법무부 교정당국은 1회용 주사기가 교도소 내에서 전달된 것이라는 진술을 고의 감염자로부터 받았지만, 피의자가 지목한 직원이 이를 강력히 부인해 정확한 출처는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내로 마약을 반입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한 경험이 있는 A씨의 말이다. “부산교도소 내에 있는 친구에게 담배를 보내준 적이 있다. 필터를 떼어내고 가루만 랩에 싸서 옷 같은데 꿰매 넣어 보내면 된다. 주사기는 바셀린으로 성기확대 수술을 할 때 많이 쓰는데 내가 복역할 때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용하고 재래식 변기에 버리면 절대 걸리지 않는다. 마약 반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배씨의 가족들은 현재 인권위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배씨의 동생은 “형이 주장한 사실이 모두 거짓이고, 형의 죽음이 제보, 징벌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계구까지 사용하면서도 자살을 막지 못한 교도소측의 처사는 명백한 직무유기 아니냐”면서 눈물을 떨궜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교도소측의 과도한 징벌 여부와 함께 징벌방 당직 직원이 제때 구명조치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으며 서신 내용에 얽힌 부분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