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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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밴쿠버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10여년간 세계 최고의 도시로 꼽혀… 최근 ‘거리의 여인’ 연쇄살인 등으로 명성 흠집

  • < 황용복/ 밴쿠버 통신원 > ken1757@hotmail.com

    입력2004-10-18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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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밴쿠버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캐나다 서해안의 대도시 밴쿠버는 살기 좋은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밴쿠버는 광역권 기준으로 인구가 200만명쯤 되는데, 권위 있는 도시평가 기관들이 환경, 교통사정, 경제활동 여건, 범죄율 등을 감안해 매기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지난 10여년간 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런 밴쿠버도 대도시가 겪는 갖가지 사회병리 현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로 시끄럽다. 스탠리공원에서 일어난 각종 강력사건과 ‘거리의 여인’들을 대상으로 한 엽기적 연쇄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스탠리공원은 밴쿠버의 상징이며, 관광이나 어학연수 등의 명목으로 밴쿠버를 찾는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공원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면적이 넓을 뿐 아니라 울창한 숲과 바다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게다가 스탠리공원은 캐나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고, 그 터에 얽힌 애잔한 사연들이 많아 평화와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상자기사 참조).

    한국인 여학생도 습격받아 중태

    “뭐라~ 밴쿠버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밀애장소로 알려진 이 공원 숲 한쪽에서 지난해 11월, 30대 남자가 증오범죄(hate crime)로 보이는 집단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6개월 뒤인 5월27일에는 어학연수중인 한국인 여학생(22)이 공원에서 조깅하던 중 백인남자의 습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이 여학생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목이 졸리는 과정에서 뇌에 상당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경찰은 이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것 같지는 않으며 범인과도 면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서는 성폭행을 하려다 이 여학생이 저항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범인은 현장에서 다른 공원 이용객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뭐라~ 밴쿠버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현지 언론은 스탠리공원에서 일어난 두 건의 폭력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특히 두 번째 사건은 보기에 따라 평범한 폭행사건으로 취급할 수도 있는데,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2개 일간신문(밴쿠버 선, 프로빈스)은 모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지역 여성단체들도 이 공원의 치안이 어지러워진 데 대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이 이 공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스탠리공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지구는 이 고장의 매춘여성과 마약중독자 그리고 걸인들의 집결지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이곳 거리의 여인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더니 최근 6년 사이에 30여명이 잇따라 실종됐다. 경찰은 이 사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지난해 가을 일간지 ‘밴쿠버 선’이 이 사건을 끈질기게 보도하자 비로소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뭐라~ 밴쿠버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얼마 안 돼 경찰은 실종 여인들이 모두 연쇄살해됐을 가능성을 처음 발표했고, 이어 올 2월에는 용의자 1명을 체포해 1급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경찰은 피고인 로버트 픽턴(52)이 경영하는 밴쿠버 근교 한 양돈장을 수색해 실종 여인 중 7명의 시체 일부분을 찾아냈다. 수색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 다른 실종자들의 신체 부위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실종 여인들의 직계가족으로부터 얻은 DNA 샘플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중이다. 수색작업에는 인체유골 발굴 경험이 있는 고고학자와 치과 분야 법의학자 등의 도움도 받고 있다.

    수사 중간발표와 미디어 보도를 종합하면, 픽턴은 실종 여인들을 자신의 양돈장으로 끌어들여 살해한 뒤 돼지도살 장비를 이용해 증거를 없애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픽턴과 무관한 제2, 제3의 범인이 더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건만으로 살기 좋은 도시 밴쿠버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밴쿠버 역시 ‘조용한 캐나다의 도시’이기 이전에 ‘현대의 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갱들의 총질이 골칫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캐나다인들은 자국이 이웃나라 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캐나다가 점점 미국을 닮아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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