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2002.02.28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 입력2004-11-01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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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제주 말고기집의 말피나 마사시는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필자의 금기식이지만 생고기, 우네(뱃살), 오배기(꼬리), 내장 등으로 이뤄진 장생포 고래고기 ‘부위별 모듬’은 자꾸 생각나 첫 취재한 지 일주일 뒤 다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태화강변 반구대 암각화를 못 보고 온 게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가 변종하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고래고기가 먹고 싶어 울산에 내려온 일이 있었고, 시인 박목월은 서울에서 고래고기 맛을 알고 교통이 불편한 시절인데도 버스편에 운송해 즐겼다고 한다. 이는 장생포 고래고기와 관련해 한 시대의 미각을 풍미한 선인들의 일화로 남을 만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고래인 대왕고래는 몸길이 33m, 무게 150~170톤, 심장이 자동차만하고 동맥은 강아지가 뛰놀 정도며 코끼리 30마리 또는 성인 남자 2430명의 몸무게와 같다고 보고돼 있다.

    장생포 고래는 1910년 이전엔 미국과 러시아가 대량학살로 쓸어갔고, 그 후 1950년까지는 일본이 쓸어갔다. 1950년 이후에야 수염고래 중 가장 작은 밍크고래 정도만 잡았다는 게 포경사의 약술이다. 장생포 김해진옹(75)은 평생 1000여 마리의 고래를 잡았으나 포경의 주요 대상이던 귀신고래(鬼鯨)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회고한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수면에 파도가 있는 날은 구분이 좀 어렵지. 고요한 바다에서 물살이 약간 갈라지며 흰 파도가 살짝 생기면 틀림없이 고래지. 한평생 고래만 찾아다녔는데 그것도 모를 리 있나?”



    지난 5월 국립수산진흥원의 부탁으로 고래자원 조사를 나갔을 때 그는 물살의 움직임만 보고도 고래를 찾아 답사팀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고요한 물살이 폭풍으로 뒤집어지며 밍크고래 떼가 치솟는 광경은 선진국이 지향하는‘고래 구경 산업’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동해는 밍크고래가 넘쳐 솎아내야 할 정도다.

    김옹은 포경이 재개되면 다시 고래배를 타고 나가 포를 쏘아보고 싶다고 한다. 장생포에서 14대째 살아온 심수향씨(울산시인학교)의 증언에 따르면, 포경선이 들어오면 시발택시(스리쿼터)를 불러 타고 내해마을까지 가곤 했다고 한다. 포경선의 뱃고동 소리도 30자, 40자 등 고래 크기에 따라 달리 울렸고 깃발도 따로 걸렸다고 술회한다. 뼈는 과수원 거름으로 썼고 기름은 ‘새마을비누’를 만들어 쓴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동행한 제자 박상건(‘OKIVO’ 발행인) 시인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쓰레기 청소차만 보아도 멋모르던 어린 시절이 아름다웠을 거라고 대창(큰창자) 삶은 고기를 들며 상상력을 발동한다.

    지난 주 실패한 경험이 있어 이번엔 할매집(나미자ㆍ052-265-9558)에서 ‘부위별 모듬’(5만원)의 맛을 즐기고 반구대 원시산책로를 걷는다. 전설로만 남은 동해 고래는 경상일보 정명숙 부장의 말대로 반구대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암각화는 너비 6.5m, 높이 3m 가량의 큰 바위면에 인간상 8점과 고래ㆍ물고기ㆍ사슴ㆍ호랑이ㆍ멧돼지ㆍ곰ㆍ토끼ㆍ여우 등 120여점, 고래잡이 배와 어부, 사냥하는 광경 등 5점, 미식별 동물 30여점이 그려져 있는데 1984년도 조사 보고에 따르면 형상을 구분할 수 있는 191개의 조각 중 ‘원시수렵, 어로생활’이 164개나 된다. 이중 육지동물이 88마리, 바다동물이 75마리이고 고래가 가장 많다. 장생포 사람들의 말처럼 고래(포돌이, 곱새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여름날 고래고기 삶는 냄새로 항구가 떠나갈 듯 질퍽해질 것이다. 눈 내리는 강구항의 대게(竹蟹) 삶는 게장국 냄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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