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2002.02.28

심도 깊은 ‘북·미관계’ 리포트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1-01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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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도 깊은 ‘북·미관계’ 리포트
    북한은 ‘악의 축’인가 아닌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발표된 후 연일 논쟁이 계속되지만 혼란스러울 뿐이다. 미 행정부의 최근 입장을 정리해 보면, 2월14일 기자회견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3대 국가로 지목한 나라 중 북한과 이란에 대해 일절 거론하지 않고 이라크만 공격 대상으로 지목한 점을 들어 북미관계의 수위 조절이 시작되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온건파에서 매파로 변신하는 듯한 파월 국무장관도 “북한과 전쟁을 시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혀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동시에 강경파의 대표주자인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이 왜 ‘악의 축’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결코 늦추지 않겠다고 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발언의 진위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북미관계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미래를 미국의 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9·11테러이후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은 북미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우리에게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리처드 하스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등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 9명의 최신 리포트들을 엮은 것이다. 1년 전 출간된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리포트’가 이 책의 전편 격으로, 여기서 이미 “부시 행정부의 가장 특징적인 외교정책적 철학은 군사력의 우위를 기반으로 한 국익의 추구”(라이스 ‘국익의 증진’에서)이며 “부시 행정부가 엄격한 상호주의를 천명하며 통상무기 감축 등 북한에 다양한 요구를 함으로써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후편은 9·11 테러를 기점으로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 순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을 입안하는 핵심인물 리처드 하스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다자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는 말로써 9·11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을 요약했다. 이런 입장을 토대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시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발비나 황의 보고서다. 황은 “북한과 같이 현재 미국의 캠페인(반테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등)을 명목상 지지하는 대가로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되길 원하는 국가들의 요구를 무시하라”고 했다. 즉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라는 것인데, 나아가 황은 “북한이 국제 반테러협약에 가입하고, 테러리즘을 비난하며, 적군파 하이재커들을 추방하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후에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일을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에 발비나 황 같은 매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는 일관성이 부족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지난해 11월 제네바에서 볼튼 국무부 차관이 생물무기금지조약을 위반한 5개국 가운데 북한을 두 번째로 지목하며 강력히 비난한 것이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같은 날 워싱턴에서 켈리 차관보가 북미대화 재개를 희망하며 북한에 대해 온건하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을 일관성 부족의 한 예로 들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이미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북미대화는 이르면 이를수록 미국에도 이익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전문가인 에이단 포스터-카터 교수의 글은 9·11 테러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끈다. 결론은 9·11 테러사태가 남북대화를 침몰시키고 김대중 정부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평양이 정계개편을 포함한 서울의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2003년 이전에 움직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미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인 라파엘 펄의 ‘테러리즘, 미래, 그리고 미국의 외교정책’은 테러리즘의 정의부터 이에 대응하는 정책수단(외교, 경제제재, 비밀작전 등)까지 두루 짚어낸 일종의 테러교과서라 할 수 있고, 역시 조사국 선임연구원인 래리 닉시의 ‘북한 핵프로그램’은 제네바 핵합의 이행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측면을 검토한 보고서다. 이 책에는 ‘탈-탈냉전’(post -post cold war)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랄프 코사의 보고서와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전문이 수록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보고서와 연설문 등을 모은 것이어서 체계적인 논문집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집이 될 것이다.

    특히 책임편집을 맡은 장성민 전 의원이 직접 쓴 ‘2002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서문은 1994년과 2002년 위기구조를 비교분석해 되풀이되는 역사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시사해 준다.

    9·11테러이후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 리처드 하스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외 지음/ 장성민, 김성배, 임수호, 김현욱 공동편역/ 김영사 펴냄/ 263쪽/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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