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월간 ‘향장’ 지령 400호로 본 메이크업 변천사 … 유행은 변했어도 아름다움 욕구는 영원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01 13: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정숙함과 단아함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옛 여인네들도 자신을 꾸미는 데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조선조 사대부가에서 화장은 중요한 예절 중 하나였고, ‘장렴’이라 불리는 화장그릇이 혼수품 목록 1호였다는 사실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말해준다.

    “한국 여자들은 화장을 진하게 해서 다들 배우 같아요.” 가끔 이렇게 말하는 외국인들을 본다. 사실 한국 여성만큼 화장과 자기 가꾸기에 많은 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없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화장품 회사인 ㈜태평양의 사외보 ‘향장’이 얼마 전 지령 400호를 맞았다. 1958년 ‘화장계’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명칭이 바뀐 ‘향장’은 이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을 내세워 당시의 유행 화장법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화장사의 산 증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최초의 화장품 모델은 김보애씨. 1956년 명동의 한 사진관에서 ‘ABC구리무’라는 제품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60년대까지는 김지미, 엄앵란 등 인기 절정의 여배우들은 물론 최무룡 등 남자배우들도 ‘향장’ 모델로 등장했다. 70년대 이후부터는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만든다는 광고전략에 따라 (당시엔 풋풋한 신인이었지만) 후에 톱스타가 된 김영애 금보라 황신혜 이승연 이영애 김지호 등 스타들의 얼굴이 자주 등장한다.

    1950년대 | 원피스, 미스코리아대회, PX, 추잉검, 초콜릿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인 50년대는 미국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초콜릿, 추잉검 등 서양 먹을거리와 외제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다. 전쟁과 유엔군 주둔으로 직업여성이 늘어나면서 유행의 변화가 한결 빨라졌고, 195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처음 열리면서 패션과 미용에 눈 뜨기 시작했다.

    전쟁과 사회 불안으로 화장품 산업은 침체기를 맞았지만 직업여성들을 중심으로 서양식 화장법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헤어스타일은 영화 속 여배우들의 모습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유행했다. 청순한 이미지의 오드리 헵번과 관능적 이미지의 마릴린 먼로가 모든 여성들이 닮고 싶어한 모델이었고 이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갔다.

    당시에는 인위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과장된 화장법이 인기였다. 눈썹은 숯검댕이처럼 두껍고 진하게, 여기다 인조 속눈썹을 강하게 붙였다. 아이라이너는 길게 그리고 얼굴의 윤곽을 매우 강조한 것이 특징. 입술은 새빨간 색을 즐겨 발랐고, 마릴린 먼로처럼 얼굴에 애교점을 찍기도 했다.

    50년대 초반에는 가루분과 미용수를 이용한 민간요법, 구리무 제품이 성행하는 등 기초적인 피부손질만 가능할 정도로 화장품 산업은 초기 단계였다. 흰 피부를 선호해 백분이 유행하면서 초기 메이크업 제품이 개발되었다.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1960년대는 4·19와 5·16을 겪으면서 긴장된 사회 분위기에 맞춰 ‘재건복’이 등장하는 한편, 미국에서 귀국한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유행 패션에 맞춰 메이크업은 약간 핑크색이 들어 있는 피부색에 눈썹을 두껍게 그리거나 아예 눈썹을 밀어버렸고, 눈에 속눈썹을 아래위로 진하게 붙이고 마스카라를 많이 발라 눈을 강조했다. 볼 터치는 핑크빛이 도는 색으로 얼굴 앞쪽을 중심으로 그려 전체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인상으로 표현했다. 입술은 입술 선을 강조하고 핑크색 펄 립스틱과 진한 빨간색의 립스틱이 크게 유행했다. 윤정희, 문희, 남정임 등 여배우 트로이카가 패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이들의 스타일이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태평양 등 화장품 회사들이 ‘방문판매’ 방식을 도입하면서 일반인을 위한 미용 상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스킨케어 개념이 도입되었다.

    1970년대 | 장발, 통기타, 청바지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통기타 문화’ ‘청바지 문화’로 일컬어지는 70년대엔 장발의 대학생들이 트렌드 리더였다. 여전히 미니스커트가 인기였고, 긴 생머리의 여대생이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스킨케어 분야에서는 계절별로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단순한 보습제품이 아닌 노화방지 등 기능성 제품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립스틱의 색깔은 붉은색에서 자주색 계열로 점점 어두워졌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성미를 추구했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눈썹을 뽑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고, 눈두덩이에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를 발랐다. 광대뼈를 강조하기 위해 얼굴 윤곽을 인위적으로 그렸고, 립라이너와 립글로스로 입술의 볼륨감을 살렸다.

    1980년대 컬러 | TV, 프로야구, 88올림픽, 핀컬 퍼머

    경기 호황을 맞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문화가 정착되고 여성들의 미용에 대한 관심도 계속 높아졌다. 교복 자율화 세대는 다양한 유행을 누리는 자유를 처음 만끽했다. 어깨에 패드를 빵빵하게 넣어 둥글고 입체적으로 강조한 패션이 주류를 이루었고, 입기 편한 캐주얼 패션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화장품 회사들의 광고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화장품 모델이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는 핀컬 퍼머와 컬러풀한 톤의 메이크업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핑크와 오렌지, 블루와 그린 같은 색조가 유행했다. 컬러 텔레비전이 보편화되면서 색조화장과 얼굴 윤곽을 살리는 입체 화장도 전성기를 이뤘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개성이 뚜렷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중성적인 느낌의 메이크업이 유행하기도 했다.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해외 유학생을 주축으로 한 오렌지족, 락카페, PC통신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는 단연 ‘자유’다. 90년대 들어 화장품이나 패션의 유행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해갔고, 유행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90년대 화장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능성 제품을 선호하게 됐다는 것. 이때부터 개인별 맞춤화장품 개념이 도입되었고 피부관리실이 성행하게 됐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곧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해 노화방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등장하고 레티놀 제품, 자연주의 화장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메이크업은 투명한 피부를 강조하고 입술이나 눈화장 한 곳만 강조하는 포인트 메이크업이 대세를 이뤘다.

    2000년대 |테크노, 킥보드, 디지털, 모바일

    짙게… 옅게…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첨단의 테크노와 퓨전, 디지털시대에 어울리는 사이버틱한 메이크업이 유행을 예고했지만, 갈수록 삭막한 기계문명으로부터 탈피해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내추럴 메이크업이 강세를 이루고 있다. 화장품 시장에서는 요가, 명상과 같은 정신적 활동과 브랜드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마인트 테라피’ 개념이 도입되어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복고풍의 유행과 맞물려 우리 것이나 옛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방 성분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있고, 화학성분을 배제하고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 용기를 사용하는 등 친환경을 내세운 제품들이 빠르게 시장을 침투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