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2002.01.10

日 황실의 뿌리, 그리고 돌고 도는 역사

  • 조용준 기자

    입력2004-11-04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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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황실의 뿌리, 그리고 돌고 도는 역사
    일본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몇 개의 전투가 등장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파를 꺾고 천하의 지배자가 된 ‘미노(美濃)의 세키가하라(關が原) 전투’(1600년), 고대 천황제 국가에서 중세 봉건국가로 탈바꿈하던 시기 지방 무가(武家)를 대표하던 겐(源)씨와 헤이(平)씨가 격돌한 ‘단노우라(壇の浦) 해전’(1185년) 등이 그것이다. 특히 ‘겐페이(源平)의 전란’은 당구장에서 편을 가를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인 “겐페이 하자”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한때 정권을 잡을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자랑한 헤이(平)씨나 겐(源)씨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겐페이의 전란’은 백제계 후손들과 신라계 후손들이 일본 땅에서 패권을 놓고 벌인 한바탕 싸움이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는 도래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퇴색되어 있을 때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중세 이전의 일본사는 고대 한반도와의 연관성, 다시 말해 도래인을 빼놓고는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숱하게 마주치는 진자(神社)에서 모시는 신도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신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교토 야사카(八坂) 신사는 일본 3대 축제의 하나인 기온제(祗園祭)로 유명한데, 사실은 이 축제 자체가 이곳에 호칸사(法觀寺) 등을 세운 고마(高麗)씨족이 조상을 모셨던 제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인들이 토착신이라고 생각하고 새해 첫날 신사에 찾아가 손바닥을 부딪치며 소원을 비는 신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도래인 출신 귀족이거나, 한반도에서 전래한 각종 선진 문물을 관장하는 신들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또한 오늘날 일본에서 흔히 발견되는 아라이(新井), 간다(神田), 와다(和田), 요시카와(吉川), 오노(大野), 가토(加藤), 가네코(金子), 나카야마(中山)씨 등은 고마씨에서 성을 달리하여 나간 지족(支族)들이다.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68세 생일을 앞둔 지난해 12월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밝혀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물론 일본 황실의 뿌리가 한반도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이미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돼 있다. 다만, 천황이 처음으로 본인의 입을 통해 ‘설로만 떠돌던 얘기를 직접 확인해 준 것’이기에 그 의미는 각별하다. 더구나 일본인들이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를 꺼리는 이야기를 천황이 먼저 꺼냈다는 사실부터 이채롭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는 듯하다. 일본 천황이 황실의 뿌리를 인정했다 해서 실없이 우쭐해하거나 “거봐, 그렇다잖아” 하면서 잘난 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일본 황실이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는 것은, ‘원래 한 형제인 민족으로서 어려움에 빠진 조선을 도와 다스리는 것이 도리’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키히토 천황의 일본 황실 뿌리에 대한 언급은 21세기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하나의 중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문명의 충돌’이 아닌 ‘화합과 교류’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노력이다. ‘너희 황실의 뿌리이므로 우리가 월등하다’는 우월감은 다분히 ‘충돌’의 관점이다. 그것은 ‘일본 가라오케가 한국을 다 점령했다’고 하는 인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일본에 끌려간 도공의 대표적인 예로 흔히 거론되는 ‘사스마야키’의 종가 400년을 이은 심수관씨는 경북 청송이 고향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사실 심씨의 원래 뿌리는 중국인 것으로 심씨 가문에 전해 내려온다.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한 아들이 심씨 성(姓)을 받고, 고려 시대에 왕자를 가르치는 국자감(國子監)으로 불려와 고려 왕조를 섬기고 조선 심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 예에서도 보듯 한·중·일의 역사는 어차피 돌고 돈다. 이제는 충돌이 아니라 화합의, 동북아 새 비전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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