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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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직전 베를린, 聯政도 쉽지 않네

사민-민사당 재정 감축 험난한 ‘동거협상’ … 서베를린 시민 80%도 회의적 반응

  • < 최재한/ 베를린 통신원 > redrot@hanmail.net

    입력2004-11-02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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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산 직전 베를린, 聯政도 쉽지 않네
    지난해 6월 베를린의 기민당(CDU)과 사민당(SPD) 간 거대연정은 비자금 스캔들과 시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 등으로 붕괴되었다. 시 정부의 부채는 무려 96억 마르크(약 5조6000억원)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연정 붕괴는 사실상 예고된 상태였다. 연정 붕괴에 이어 시의회 역시 해산되었다.

    이후 4개월 만인 10월21일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재선거에서는 사민당이 29.7%의 지지를 얻어 제1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사민당은 과반수 득표에는 실패했다. 이는 곧 새로운 연정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편 정치부패 사건에 연루된 기민당의 득표율은 전후 최저인 23.7%에 불과했다. 자민당(FDP)은 9.9%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녹색당은 9.1%로 지난 선거 결과(9.9%)보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10월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민사당(PDS)의 약진이었다. 민사당은 거의 기민당 수준에 육박한 득표율 22.6%로 99년 선거(17.7%)보다 4.9%나 지지도가 상승했다.

    파산 직전 베를린, 聯政도 쉽지 않네
    이번 선거에서 민사당은 동베를린(47.6%)과 서베를린(6.9%) 양쪽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민사당 지지율이 서베를린에서 1990년 이래 꾸준히 상승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서베를린의 민사당 지지율은 90년 1.2%, 99년 4.2%에 불과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5%를 상회하는 지지를 획득했다. 공영방송 아르데(ARD)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은 오히려 사민당(25.0%)보다 민사당(32.8%)을 선호했다.

    이 같은 결과를 단지 옛동독 공산당원들의 지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자금 스캔들로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베를린의 정치인들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갖게 되었다. 동베를린 시민들에게 민사당은 가장 부패하지 않은 정당으로, 나아가 사회적 변화를 통해 ‘2등 시민’의 굴레를 벗겨줄 정당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연설과 토크쇼의 귀재인 시장후보 그레고르 기지는 다양한 선거층을 공략해 시민들로 하여금 민사당에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민사당은 ‘정의와 평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독일의 파병을 반대했다. 상당수 젊은 유권자들은 반전을 기치로 내건 민사당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베를린 시의회 전체 의석수 141석 중 44석을 차지한 사민당은 시장 당선자인 클라우스 보베라이트와 연방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긴급 회동하여 연정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동에서 슈뢰더는 적-황-녹의 소위 ‘신호등 연정’을 지지했다. 당초 심정적으로 민사당과의 ‘적-적 연정’을 염두에 두었던 보베라이트는 슈뢰더의 제안에 따라 우선 자유주의 성향의 황색 정당인 자민당, 생태주의 성향의 녹색 정당인 녹색당과 신호등 연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신호등 연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은 3당은 특히 서베를린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색깔이 최대한 빛나 보이도록 불을 밝혔다. 그 결과, 시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 해소방안을 둘러싸고 각 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자민당은 긴축재정과 사유화 정책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사민당은 토지세와 주세 인상을 원했다. 녹색당은 모터보트세를 포함한 세수증대를 주장했다. 한편 민사당은 최대의 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에서 경찰노조(GdP)까지 포괄한 통합적 사무노련의 연합체를 조직, 사민당이 긴축재정 정책 합의에 이르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조세인상이나 적자보전 문제는 표면적 이유였을 뿐, 이미 각 당의 이념적 성향은 이 협상의 한계를 예고하고 있었다. 결국 신호등 연정은 세 가지 색이 동시에 불을 밝힌 ‘고장난 신호등’이 되어 결렬되었다.

    파산 직전 베를린, 聯政도 쉽지 않네
    신호등 연정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사민당은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인 민사당과 ‘적-적 연정’의 새로운 협상에 돌입했다. 적-적 연정이 실질적 사회통합이란 시각에서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이 협상을 바라보는 서베를린 시민들의 시선은 우려로 가득 차 있다. 공영방송인 아르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베를린 시민의 80%가 적-적 연정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사당의 약진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보수파들은 우선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보수적 시각에서 볼 때 민사당은 적개심과 불평불만이 일상화된 정당으로 단지 동베를린과 일부 좌익세력에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사민당 일부에서조차 민사당을 옛동독 공산당의 후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적 연정이 베를린의 현안을 해결할 비상조치인 것은 틀림없다.

    연정의 주된 목적은 베를린의 막대한 재정적자 해소다. 독일 수도 베를린은 사실상 파산 직전 상황이다. 연정 파트너들은 2006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약 20억 마르크(1조2000억원)의 인건비 절감과 행정개혁을 통해 약 10억 마르크의 비용 절감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환경 개선과 학생 수 감축을 통한 교사충원 등 교육부문에서도 양당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 민사당은 수십억 마르크의 재정이 들어가는 쇠네펠트 국제공항의 확충에 찬성했고, 사민당은 2012년 올림픽 유치 철회에 동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합의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그중 시립유치원을 복지기관 등에 이양해 사설유치원으로 만들려는 문제는 민사당의 사유화 불가론과 반대되는 쟁점이다. 교사노조(GEW)와 학부모 대표들은 사민당의 시립유치원 사유화론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시사하듯, 적-적 연정은 정치적으로 분리된 동서 베를린의 상징적 통합에 지나지 않는다. 통독 후 베를린에서 최대 득표율을 기록한 민사당에 주어진 과제는 이념적 근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실천적 정치의 장에서 유연한 개혁정치를 해낼 수 있는지다. 과연 베를린 시청인 ‘붉은 시청사’(Rotes Rathaus)에 그 이름에 걸맞은 적-적 연정이 들어서게 될까. ‘붉은 유령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한 언론 보도는 최근 베를린의 정치 상황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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