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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패밀리와 한화갑 찍어내기?

‘신광옥 사건’ 사전기획설 모락모락 … ‘당 개혁’ 여론 멈칫 동교동 구파 희색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로열 패밀리와 한화갑 찍어내기?

로열 패밀리와 한화갑 찍어내기?
신광옥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8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2월22일 구속 수감됐다. 사정을 총괄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권력형 비리사건의 용의자에게 돈을 받았다는 혐의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런 당위론과는 별개로 신광옥씨의 추락 배경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현직’(법무차관)에 있는 검찰 핵심인사를 같은 정권의 검찰이 구속한 것 자체가 검찰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신광옥씨 구속 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여권 내 특정세력의 또 다른 특정세력 무력화 전략에서 비롯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주간동아’와 접촉한 검찰 사정라인 한 간부는 “정황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수사개시방법

신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는 ‘중앙일보’가 검찰로부터 신광옥 1억 수수 수사상황을 확인받아 보도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점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중대한 사건의 무르익지 않은 수사정보를 언론에 확인시켜 준 것은 실수나 우연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신씨가 받은 1800만원은 통상적 뇌물죄 적용기준 3000만원에 미달한다. 정상적 수사절차로는 관련자 소환 등 수사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여론을 등에 업는 방법까지 동원해야겠다는 ‘사전 기획’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의문이다. 신씨 사건은 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주는 일이다. 이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여권의 누군가가 이를 강행했다면 그에겐 좀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왜 신광옥인가

한나라당은 신광옥(전 민정수석), 신건(현 국정원장), 신승남(현 검찰총장)을 ‘3신’으로 부르며 사정라인의 대표적 호남인맥으로 꼽는다. 그러나 이들 세 명은 서로 그다지 친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신광옥씨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2000년 초 김대중 대통령이 특정고 권력독점 배제 발언을 한 다음날 신광옥 민정수석의 광주일고 후배가 민정수석실에서 청와대 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한광옥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힘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청와대에서 나왔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 A씨는 “신광옥씨가 어느 계파에 분류되는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지만 확실한 것은 동교동 구파는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친인척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대통령 친인척들로선 기왕이면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가 민정수석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신씨가 민정수석에 기용될 때는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사직동팀의 옷로비 수사보고서를 보여준 일로 청와대가 검찰에 종속돼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 직후였다. 즉 대통령이 청와대 사정권력을 대폭 강화하는 시점에서 신광옥씨가 발탁된 것이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신씨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친인척들이 확실히 믿는, 말하자면 검찰 내 로열 패밀리 인맥으로도 알려졌다.

진승현씨는 지난 11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형량이 너무 무거워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집행유예를 놓고 검찰과 협상을 벌일 여지가 거의 없어졌으므로 진씨가 형량만 추가될 뇌물제공 사안을 진술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신광옥씨와 관련된 진승현씨 진술은 지난 11월 이전에 이미 나왔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신광옥 뇌물수수 사건이 왜 지금 터져나온 것인지 그 시점이 중요해진다.

물거품이 된 신광옥의 꿈

신승남 검찰총장의 탄핵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잠재적 사안이다. 야당이 신총장을 탄핵할 경우 후임 검찰총장 1순위는 호남 출신 신광옥씨라는 게 검찰 내의 지배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검찰총장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직후 이번 뇌물수수 사건이 터지면서 그가 검찰총장이 될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여권으로선 후임 검찰총장의 가장 확실한 대안을 잃었고 신승남 총장을 지켜내야 할 이유는 더 커졌다.

권력 핵심의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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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로열 패밀리와 한화갑 고문 그룹(동교동 신파)의 연대 가능성이다. 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은 최근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민주당의 연청(聯靑)이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 한화갑 의원을 전폭 지원해 한의원이 최다 득표했다고 밝혔다. 연청은 민주당 대의원의 10%를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는 대통령이 야당시절 타고 다니던 방탄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한화갑 의원에게 제공했다. 상징적인 일이었다.

특히 김홍일 의원은 지난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의 독주 문제에 대해 “아버지께 비판적 이야기도 전한다. 그럼 아버지께서는 ‘넌 또 박지원 얘기냐’고 못마땅해한다”고 답한 바 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박지원-동교동 구파와 원만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 주목할 만한 발언이었다.

누가 타격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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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관계자는 “(신씨 구속이)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할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대선주자 중 누군가가 ‘사정권력’을 잡는다면 매우 유리할 것이다. 신광옥씨의 추락으로 로열 패밀리+한화갑 세력이 향후 대선정국에서 사정권을 장악하게 될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신광옥 문제가 불거지면서 로열 패밀리를 공격하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시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홍업씨의 아태재단 전 간부의 뇌물죄 구속, 홍일씨 이름의 돈봉투 유포설, 최택곤씨의 홍업씨 방문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김홍일 의원이 상당 기간 외유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열 패밀리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다. 물론 이런 일들은 우연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 수 있다.

그러나 김홍업씨는 최택곤씨와의 접촉설이 제기되자 “수세에 몰린 특정집단의 물귀신 작전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하는 특정집단은 전 국가정보원 차장 김은성씨 개인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김씨 뒤의 더 큰 어떤 세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로열 패밀리의 입지 축소는 당권·대권 경선 국면에서 한화갑 고문을 위시한 신파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많다.

이와 관련, 동교동 구파 한 의원은 “동교동 구파 중심으로 진승현 로비대상 의원 이름이 거명된 ‘지뢰매설 현황’ 괴문건이 튀어나온 것은 한화갑 세력의 반격”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화갑 의원 측근은 “말도 안 된다”며 펄펄 뛰었다. 그러나 그 문건 공개의 파장은 미미했다.

유리해진 동교동 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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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진승현의 총선 자금 리스트 중 유독 허인회 동대문을 지구당 위원장 이름만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깨끗한 척하면서 쇄신운동을 이끌고 있는 민주당 386의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라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쇄신연대는 (민주당 개혁을 지지하는) 여론의 힘을 얻어 당내 입지를 구축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당내 대선후보 선출 방식을 최종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여론의 비중이 민주당 쇄신운동에서 신광옥씨 수뢰 문제로 급격히 옮겨갔다. 당내 개혁을 도모하는 쇄신연대측엔 매우 불리한 일이었다.

반대로 동교동 신파-쇄신그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동교동 구파는 전기를 맞았다. 10·25 재·보선 직후 박지원-권노갑씨 퇴진요구, 동교동 해체론에 크게 흔들리며 최대 위기를 겪던 동교동 구파는 신광옥 사태가 터진 이후 여론의 화살에서 비켜서는 극적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또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방식 결정에서도 주도권을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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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현 리스트의 실체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몸통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파장은 정확히 누구에게는 유리하고 누구에게는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일이 누군가에 의해 사전 기획된 것일까.

“의심하고 음모론으로 몰아가려면 끝이 없다”면서도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광옥 사건 이후 대통령의 아들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런데 신광옥 사건이 터진 것은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떠나 국내에 없던 시점이었다.”



주간동아 316호 (p20~22)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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