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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의 정체성

  • < 윤평중 / 한신대 교수·철학 >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의 정체성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의 정체성
9·11 미국 테러참사 이후 아프간 공격에 이르기까지의 사태 전개에 대해 한국 언론은 줄곧 뜨거운 관심을 기울여 왔다.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을 크게 보도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보도와 논평이 연일 쏟아놓는 정보의 홍수 속에 우리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다.

피해를 본 민간인들은 동정받아야 마땅하며, 대상과 범위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격은 의당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다루면서 다수 미국 언론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자국중심주의의 덫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세계 정세(특히 비서구)에 대해 무지하고, 미국을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듯한 미국인들도 스스로의 자문화중심주의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은 끔찍한 반인륜적 행위다. 그러나 초현대적 대량살상 무기를 동원한 미국의 아프간 공격도 탈레반 정권과 관계없는 수백만 아프간 국민을 생사의 기로에 몰아넣고 있다. 풍요를 구가하는 미국인이든, 황량한 먼지만 휘날리는 적빈(赤貧)의 아프간인이든, 사람의 목숨은 너나할것없이 존귀하다는 사실을 미국이 외면하고 있는데도 우리 언론은 미국의 시각에 일방적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과거 대(對)이라크 전쟁이나 팔레스타인 문제, 또는 다른 세계적 현안을 다루는 데서도 한국 언론은 미국이 이끄는 서방 세계의 시각을 답습하는 데 바빴다. 또 한국인들은 비서구 지역 문제들을 재단하는 데 있어 서방의 입장과 우리의 관점을 거의 동일시해 왔다.

뉴욕 참사에 대해 한국 정부 차원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스러져 간 인명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슬퍼한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외교적 제스처나 일반의 공감대가 비서방 세계 인민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까지 확장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 한국의 실상이기도 하다.



왜 한국인들은 미국이 상징하는 서양과 한국의 처지를 동일시하고 싶어할까? 그렇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한국을 자신들의 동류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는 서양의 세계 경략(經略)이라는 거대한 씨줄과 ‘서양 따라 배우기와 베끼기’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날줄이 서로 겹친다.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가 먼저 군사적 차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러나 물리적 강압에 의한 침탈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강대국의 헤게모니는, 예속된 나라 사람들이 강국의 가치관과 문화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할 때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강대국의 관점과 자신들의 시각을 약소국 주민들이 동일시할 때 강국의 지배는 한층 견고해진다. 약자들이 이런 동일시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상화할 때 지배하는 자들의 헤게모니는 완결되는 것이다.

강대국 헤게모니 부러워하는 역사 되풀이

동양에 대한 특정한 해석들의 집합체를 뜻하는 오리엔탈리즘이 근·현대 들어 서양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 경우 오리엔탈리즘은 대부분 부정적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결국 동양에 대한 서양의 헤게모니는 특정한(대부분 부정적인) 동양관과 특정한(대부분 긍정적인) 서양관을 동양인들 자신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은 서방국가를 가리키는 미(美)·영(英) 등의 한자 명칭이나,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음습한 이미지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철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표출되는 역사의 공식이 서양-중동, 서양-동양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수천년에 이르는 중국문명의 대(對)한반도 헤게모니는, 우리 선조들이 ‘조선의 것’을 부끄러워하고 급기야 스스로 소(小)중화를 자처했을 때 완결 단계에 이른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는 조선인들이 자신을 ‘엽전’으로 비하하고 ‘내선일체’를 외칠 때 뿌리내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완강해 보이는 역사도, 이런 공식 안에 은폐되어 있는 진실을 우리가 꿰뚫어볼 때 조금씩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1.11.15 309호 (p100~100)

< 윤평중 / 한신대 교수·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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