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1

2001.09.13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

흰 머리 성성한 이학자씨 친구 정명숙씨 찾아… 5년 무소식 궁금증 한 통화로 해결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17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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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
    이학자씨(57)는 시집간 딸 셋에 아들 한 명을 둔 행복한 할머니지만 자다가도 일어날 만큼 답답한 일이 있었다. 3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과 결혼한 친구 정명숙씨가 5년 전부터 돌연 연락을 끊은 것이다. 여고 동창인 두 사람은 가난한 시절 동고동락했다. 차비를 아낀다고 장충단 공원에서부터 청계천변을 걸어 귀가하기도 했고, 냉방에서 뒹굴어도 명숙씨를 포함한 5총사는 마냥 행복했다. 5명 중에서도 단짝이던 이씨와 정씨는 결혼 후에도 때마다 편지와 선물을 잊지 않고 주고받았다. 정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을 때는 이씨의 집에 머물렀고, 이씨 또한 친구를 만나러 두 번이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오죽하면 이씨의 남편이 “무슨 우정이 그렇게 대단하냐”며 질투 아닌 질투를 했을 정도.

    하지만 친구의 이혼소식과 함께 연락이 끊겼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어김없이 오던 카드도 그해부터 오지 않았다. 이씨는 친구 명숙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단다. 이번에는 이씨가 이사하면서 혹시라도 옛 주소, 옛 전화번호로 친구의 연락이 올까 노심초사했다. ‘주간동아’에서 한국-미국간 헤어진 사람을 찾아준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이씨는 “이런 일까지 찾아주겠느냐”며 반신반의하면서 사연을 보냈다.

    사실 이 사연이 접수되었을 때 ‘주간동아’와 시카고의 강효흔 탐정은 망설임을 거듭했다. 연락이 끊긴 지 5년밖에 안 되어 본인들이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굳이 이 캠페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긴 이별은 이처럼 별것 아닌 단절에서 비롯한다. 다음에 연락하면 되지 하고 미뤘다가 영영 생이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점에서 5년도 이미 너무 늦은 것일 수 있었다.

    강탐정은 신청자가 알려준 옛 주소에서 시작해 수차례 이사한 흔적을 추적해 쉽게 정명숙씨의 현주소를 찾아냈다. 집 전화번호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여서 확인하지 못했으나 사업자등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씨가 경영하는 몇 개의 사업체와 연락처를 알아냈다. 소요시간은 불과 1시간.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
    “사는 게 바빠 친구에게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 사이 친구가 이사까지 했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연락이야 아무 때나 하면 되겠지 한 것이 어느새 5년이 지나버렸고요.” 정명숙씨는 한국의 친구가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비로소 단짝 친구와 생이별할 뻔했음을 실감했다. 정씨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부근에서 주류판매업을 하고 있다. 이학자씨는 미국과 시차를 맞추기 취해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전화 걸 시간만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통화 성공. 갈래머리 소녀에서 흰 머리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어도 두 사람의 우정과 수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꿈 많은 여고시절 우정은 변치 않아요”
    모든 만남이 이처럼 설레고 축복 속에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야. 그러나 ‘주간동아’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상봉 거부라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쳤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전라북도 군산에 사는 아흔 넷의 노모가 43년 전 미국 유학을 떠난 아들을 찾는 사연이었다. 4남2녀 중 차남인 박○○씨는 서울대 공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58년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2년까지는 편지가 오갔으나 그 후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현재 노모는 치매에 걸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둘째아들의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 사연을 보낸 막내 박염업씨는 “어머니께서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사연을 접수하자마자 강효흔 탐정은 곧바로 추적을 시작했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경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뜻밖에도 쉽게 박○○씨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예상 외의 성과에 기뻐한 것도 잠시, 박○○씨에게 아무리 전화 메시지를 남기고 노모가 찾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박○○씨의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에 대한 대답도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한국의 가족은 간곡한 편지와 함께 40년 전 박○○씨가 보내온 편지와 가족 사진 등을 동봉해 미국으로 부쳤다. 혹시라도 사진과 편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끝내 박○○씨에게서 소식은 오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연은 1974년 가난 때문에 입양 보낸 딸을 찾는 친모와 양모 사이의 갈등으로 전화 상봉이 지연된 경우다. 1남6녀 딸부잣집 넷째딸 박○○씨(33)는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양모는 미국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 미국에서 성장한 박○○씨는 직업군인으로 결혼도 했으나 한국의 가족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마침 한국의 가족이 ‘주간동아’에 사연을 접수했고 강효흔 탐정은 박○○씨를 추적했다. 한국말을 완전히 잊어버린 박○○씨는 한국의 가족이 찾는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가 양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 가족과 전화상봉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뒤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양모와 박○○씨의 갈등, 양모와 친모의 갈등이 겹치면서 박씨는 모든 일이 정리된 후 상봉하겠다며 4월 말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그밖에 30여 년 전 자식을 두고 홀로 미국으로 간 어머니를 찾는 딸의 사연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강탐정이 어머니의 연락처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었으나 한국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린 후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 수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 30년이라는 세월도 자식을 버린 죄책감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었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간동아’와 강효흔 탐정이 공동으로 벌이는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무료캠페인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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