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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우리 민족’에서 ‘그들의 사회’로

  • < 장경섭 서울대 교수·사회학 >

‘우리 민족’에서 ‘그들의 사회’로

‘우리 민족’에서 ‘그들의 사회’로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일 년이 지났다. 평양에서 전송된 남·북한 정상의 조우장면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감동적 충격을 주었다. 20세기 세계사는 동·서 냉전질서의 해체로 막을 내렸지만 한반도만은 예외지역으로 남은 채 세기를 넘겼다.

그러나 21세기 첫해에 이루어진 남북정상의 전격적 회동과 전향적 화해·협력 선언은 한민족도 드디어 20세기의 질곡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을 갖도록 했다. 특히 남·북한 문제를 민족의 자주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풀어나가자는 공동 결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내세우지 못했던 수십 년의 한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듯했다.

그로부터 일 년, 어쩐 일인지 남에서도 북에서도 남·북한 통일, 한민족 화합 등의 역사적 명제들에 대한 열의가 식어버렸다. 극우로 치닫는 미국의 부시 정권이 남한의 대북포용 노력을 폄하하고 북한에 대해 극단적 불신감을 표출하는 등 국제정치적 악재가 있었고, 이를 기화로 남한의 일부 보수세력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노선을 집요하게 흔들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언론인의 강변처럼 국민 여론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지는 않다.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대북 화해·협력은 어떤 분야보다 더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같은 국민의 지지가 막상 북한에 대한, 그리고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먼저 남한 자체의 경제 침체로 국민 대다수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경제적 나락에 떨어졌기에 북한 주민의 곤궁과 북한 경제의 침체를 덜기 위한 민족적 차원의 협력·지원에 큰 관심을 쏟지 못한다. 이보다 더 근본적 차원의 문제가 민족이라는 관념 또는 개념에 대한 현실적 검증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 전쟁까지 치르며 대립하던 상황 속에서 민족은 오히려 더 강렬한 공동체로 국민의 의식 속에 자리잡아 왔다. 분단은 극복해야 하며 민족은 당연히 하나의 운명체였다. 그런데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 자주적으로 민족의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한 이후 오히려 민족은 현재 하나가 아니며, 하나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음이 확연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은 비용의 문제, 정책적 우선순위의 문제가 되었고, 북한은 똑같은 ‘우리 민족’에서 우리와 너무 다른 ‘그들의 사회’가 되었다. 여러 사회·경제 정책의 실패로 신뢰를 잃은 김대중 정부는 대북 화해·협력이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도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강력히 설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통일은 이제 실천의무… 국민 동참 방법 개발해야



그동안 민족과 통일은 남한의 진보주의자에게나 보수주의자에게 모두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진보주의자 관점에서는, 민족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었고 남·북 분단은 민족적 예속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남·북이 함께 노력해 통일을 이루는 것이 민족의 과업이자 권리였다. 보수주의자 관점에서는, 북한이 소련 제국주의의 주구로서 만들어졌고, 또 그런 차원에서 남한을 괴롭혔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 및 남한 주도의 통일이 민족 정의의 실현으로 여겨졌다. 이는 북한 노동당 정권의 관점에서, 남한이 미 제국주의의 주구 노릇을 해왔기에 극복되어져야 하는 것에 상응한다.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앞으로는 자주적으로 민족적 과제를 해결해 가자고 약속한 후부터 분단 극복과 민족 화합은 제국주의자가 금해서 뜻이 있어도 못하는 일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인 국민이 구체적인 희생과 노력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민족주의와 통일 염원은 외세의 억압 아래서는 도덕적 권리였지만, 남·북한의 자주노선 선언에 의해 실천의무로 바뀌었다. 상당수 국민은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나 그에 따르는 자신의 실천의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의무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 같지 않다. 이제는 국민 모두를 통일 준비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작업과 방법을 개발해야 할 때다.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104~104)

< 장경섭 서울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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