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6

2001.03.22

혀끝 사로잡는 고단백 감칠맛

  • 시인 송수권

    입력2005-02-18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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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끝 사로잡는 고단백 감칠맛
    이 집 저 집 다 둘러도/ 민애포 따로 없고 ~// 이 칠 저 칠 다 둘러도/ 개칠먹칠 따로 없고 ~//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풀 따로 없네 ~.

    어렸을 때 강강술래를 듣다보면 이따금씩 섞여 나오던 매김소리다. 노래 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민어(民魚)는 민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물고기다. 제사상이나 혼례상 등 잔칫상을 한바퀴 꾸미고 나서 민중의 입맛을 걸지게 키운 고기다. 비린내가 없는 담백한 맛 때문에도 그랬고, 비늘 없는 고기가 잔칫상이나 젯상에 못 오른 반면, 민어는 비늘이 두껍고 큰 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듯하다.

    민어는 탕과 구이로도 좋지만 포로도 사랑을 받았고, 특히 송어알 조기알 숭어알과 함께 알포 또는 알젓으로도 오랫동안 명성을 드높였다. 지금도 백화점에 가면 민어알포가 영암어란처럼 짝을 이루고 있는데 잘못 속을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회어( 魚)라 했고 노약자와 어린애의 보양음식으로 나와 있어 대구와 함께 ‘올게심니’로 널리 애용되기도 했다. 남도에서는 민어의 특대를 개우치(芥羽叱)라고 부르며 법성포에서는 30cm 내외를 홍치, 완도에서는 작은 것을 불등거리, 서울과 인천 상인들은 네 뼘 이상인 놈을 민어, 세 뼘 내외인 것을 어스래기, 두 뼘 반인 놈을 가리, 그 미만인 것을 보굴치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평남 한천(漢川)에서는 아예 ‘민초’라 부르고 경기지방에서는 소금에 절인 것을 암치(岩峙)라 부른다.

    혀끝 사로잡는 고단백 감칠맛
    민어의 집산지로는 아직도 목포가 유명한데 목포의 영란횟집(061-243-7311) 주인 박영란씨(49)에 의하면 서너 물때가 물발이 간드러져 민어나 조기 물때고, 일고여덟 물때는 물발이 운다고 표현한다. 미끼는 산새우를 쓰는데 이 놈의 성깔이 급해 수족관에서는 살릴 수 없어 꼬리 피를 빼내고 얼음에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양식에 성공해서 민어 값도 폭락했다. 영란횟집 민어회는 3인분에 3만원이다.



    민어 살은 동해북부 연안에서 먹는 참망치의 흑색 살점과 대비되는 백색으로 탄력이 있다. 횟감으로는 단맛이 있어 좋고, 찜으로는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오히려 도미찜보다 한 수 위로 친다. 특히 대가리의 붉은 껍질과 흐벅진 살 때문에 어두봉미(魚頭鳳尾)라 하며 부레는 쫄깃한 맛 때문에 날것으로는 최상이며 섬유질 섭취에도 그만이다. 껍질은 데쳐 밥을 쌈 싸 먹고 부레는 그냥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다.

    또 민어의 특식으로는 ‘가보’와 ‘감화보금’이 있다. 가보란 부레 속에 오이, 두부, 쇠고기 따위의 소를 박아 삶은 다음 둥글게 나박나박 썰어 낸 순대와 같은 음식이다. 쫄깃한 맛이 여간 아니다. 감화보금은 민어 껍질이나 농어 껍질에 소를 박아서 말아낸 초밥과 같은 쌈요리다.

    이런 전통조리법은 그 맥이 끊겼지만 영란횟집에 앉아서 한 젓가락씩 별식으로 든다면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또 두루치기는 어떤가. 두루치기란 조갯살이나 낙지, 주꾸미 등을 데쳐서 양념한 음식이다. 미나리 강회에다 고명을 얹은 소라무침도 괜찮겠다. ‘가보’와 ‘감화보금’, 이는 앞으로 영란횟집 박여사에게서 나올 음식 노하우다. 이런 손맛을 다시 살리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다.

    또 서울에서는 귀한 음식이라 복(伏)날에 서민들은 황구보신탕을 든 반면 반가에서는 민어탕을 든 것으로 보건대 복달임에 즐겼던 것이 민어탕이다. 따라서 상하계층 구별 없이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올게심니 등 온 가족의 한솥밥 잔치로 즐겼다. 고단백 음식으로 대구 수놈 뱃속에서 빼낸 것을 ‘고니’라 해서 날것으로 소금에 찍어먹기도 했는데, 민어 부레풀(民魚膠) 또한 그렇게 먹는 고단백이다. 또 ‘옻칠 간 데 민어 부레 간다’는 말처럼 페인트며 라카며 카슈가 판을 치는 오늘날에도 어둡고 맑고 투명하면서도 천년을 가도 썩지 않는 옻칠과 궁합이 잘 맞아 접착제로도 그 효능이 뛰어나다. 이처럼 해주소반과 더불어 통영반, 나주반을 비롯한 목물(木物) 문화가 발전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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