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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연예인과 스캔들

‘스캔들 마케팅’이 뜬다

  • <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

‘스캔들 마케팅’이 뜬다

‘스캔들 마케팅’이 뜬다
말도 많았던 비디오 사건의 주인공 오현경씨가 지난달 17일 파문이 터진 지 2년여 만에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였다. 이날 회견장에는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에서도 100여명이 넘는 보도진이 몰렸다.

연기자로서 해외 진출이나 결혼 발표 같은 내용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몬 사건과 관련된 회견이니 당사자로서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껄끄럽고 힘든 자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의 분위기는 참 뜻밖이었다. 차분하고 간간이 밝은 분위기까지 보였던 그녀는 예상보다 훨씬 당당했다. 질문을 하는 기자들도 일방적으로 추궁하거나 단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비디오의 부도덕성을 묻기보다는 2년 만에 모습을 나타낸 그녀의 진로에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넌즈시 활동 재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이후 그녀는 영화잡지와 여성지의 표지와 화보를 찍었다. 2년 전 인기스타 자리에 있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보였다. 한때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문의 주인공이었지만, 다시 전문직업인 연예인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스캔들 마케팅’이 뜬다
연예인들에게 추문, 즉 ‘스캔들’(Scandal)은 활동하는 동안 계속 신경써야 하는 발 밑의 지뢰 같은 존재다. 대중의 관심과 호감이 직업의 성과를 결정짓는 연예계에서 호불호(好不好)를 순식간에 뒤바꾸는 스캔들이 생긴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하고, 사생활의 ‘화려함’이 스타의 조건으로 꼽히는 곳에서는 오히려 스캔들이 스타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갖기도 한다(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공인’이라는 표현으로 연예인에게 다양한 기준의 도덕성을 기대하는 우리 풍토에서 그동안 스캔들은 활동 중단 내지 은퇴를 선택하게 하는 결정적인 잣대였다. 70년대 은막의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ㅈ씨는 간통 사건에 휘말린 이후 연예계를 떠났다. 그 후 몇 번의 복귀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활동을 재개하지 않았다. 가정을 이루고 화목하게 사는 상황에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굳이 사람들이 잊고 있던 과거의 아픈 상처를 되새기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중견 연기자로 활동하는 ㅇ씨나 ㄱ씨도 마찬가지. ㅈ씨와 비슷한 스캔들에 휘말렸던 그들은 은퇴는 안 했지만, 연기자로서 한창 황금기인 20대 시절에 활동을 접고 오랜 기간 은둔해야 했다.

‘스캔들 마케팅’이 뜬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가수 백지영의 경우 비디오 사건이 터졌을 때 그녀는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톱스타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다. 시원스러운 성격과 열정적인 무대 매너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에게 비디오 사건은 최악의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절대 이대로 주저앉지 않고 재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찬반 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그녀는 라이브 공연을 가졌다. 70, 80년대의 상식으로 본다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녀의 결정에 많은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지지를 보냈다.

스캔들은 스타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부와 명예, 선망의 눈길을 누리는 그들의 감춰진 이면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미디어를 통해 ‘조작’된 화려한 이미지와는 다른 실생활의 모습이 만날 때 발생한다. 성 문제, 마약, 음주운전, 불법운전면허 취득 등 경우는 달라도 한 번 터지면 연예인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대가는 엄청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캔들이 스타들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히 약해졌다. 대마초 사건에 휘말린 뒤 오랜 세월 활동 금지에 묶여 있던 70년대 가수들과 활동 중단 1년 만에 복귀한 개그맨 ㅅ씨를 비교하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요즘 대중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그의 직업적 성과를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그의 연기, 외모, 노래, 춤이지 그의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기성세대가 어떤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아닌 땐 굴뚝에 연기나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반해, 신세대들은 노래가 좋으면, 연기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남성중심의 우리 문화에서 남자들보다 훨씬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스캔들을 다시 보는 경우도 많다. 오현경씨나 백지영씨의 경우 그녀들 역시 피해자이고, 비디오를 찍고 유포시키고 보면서 즐긴 남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스캔들에 대처하는 스타들의 태도 변화도 크다. 전에는 연예계를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자면 연기로, 가수면 노래로 대중에게 속죄하겠다’ ‘방송을 통해 심판받겠다’라며 피하지 않고 스캔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다. 열애설이 터져도 ‘결혼은 생각하지 않지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일단 인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얼마 전 남편과 결별하는 아픔을 겪었던 이미연은 방송에서 이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을 보인 이후 더 인기가 올라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젠 스캔들이 연예활동의 인기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스타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기 위해서 오히려 적당한 강도의 스캔들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여자 연예인이 인기 댄스 그룹의 멤버와 열애설에 휩싸일 때 팬클럽 회원들이 제기하는 의혹이 대개 이런 것이다. 가끔 뮤직비디오나 영화 촬영 도중 뜬금 없는 열애설이 등장할 때 연예계에서는 ‘관심을 끌려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현재도 스캔들이 연예인에게 무거운 족쇄인 것은 분명하지만 분명 그 무게는 과거보다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한 단면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세간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해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책임의 무게만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78~79)

<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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