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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유기농산물’ 만병통치 약 아니다

“더 맛있고 건강에 훨씬 좋다” 회의적 … 환경보호, 안전한 먹거리 확보엔 ‘최선의 방법’

  • < 이식/ 이학박사·과학 칼럼니스트 honeysik@yahoo.com>

‘유기농산물’ 만병통치 약 아니다

‘유기농산물’ 만병통치 약 아니다
납이 든 꽃게, 미친 소, 유전자조작 콩, 농약으로 키운 콩나물, 탄저병 고춧가루…. 언제부터인지 먹거리에 대한 ‘장난’이 빈번해지고 그 정도도 심해지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광우병 공포까지 국내에 상륙해서 쇠고기는 물론, 버터나 화장품의 사용마저 꺼리게 되었다. ‘우리 쇠고기는 절대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그 발표를 신뢰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 슈퍼마켓에 가면 채소와 과일 코너의 한 구석에 있는 ‘유기농산물’에 자주 눈이 간다. 잘은 모르지만 왠지 깨끗하고 몸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문제는 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몸에 좋다는데’라는 막연한 생각과 ‘1500원에 다섯 알 살 수 있는 감자와 2000원에 세 알인 유기농 감자 중 어느 쪽을 사야 할까?’하는 구체적인 계산 앞에서 소비자는 갈등하게 된다. 더구나 유기농법으로 키웠다는 감자나 사과는 왠지 못생기고(?) 크기도 작아 보인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유기농작물은 과연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이로운 것인가. 둘째, 유기농산물은 왜 비싸야만 하는가.

‘유기농산물’ 만병통치 약 아니다
농림부의 정의에 따르면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 유기합성농약(농약 생장조절제 제초제), 가축사료첨가제 등 일체의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물과 자연광석,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자재만을 사용하는 농법이다. 그런데 이 정의를 차근차근 읽어보자. 유기농법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퇴비 뿌리고 김매는 농사’가 곧 유기농법이다. 여기에 최근의 연구성과들이 더해져 농법이 약간 더 풍부해졌을 뿐, 유기농법은 건강증진을 위해 새로이 등장한 농법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질문의 정답은 ‘건강에 이롭다기보다는 해롭지 않다’가 된다. 유기농법으로 키운 농산물은 우리가 수천년간 먹어온 정상적인 먹거리들이다. 갑자기 이들에게서 항암효과나 기타 의학적인 효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영양학적으로는 유기농산물이나 기존의 농법으로 재배한 작물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유기농법에 대해 일반대중이 가지고 있는 생각 중 상당수가 미신에 가깝다’라는 지적도 있다. 이제는 유기농법에 대해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 하원의 농업위원회는 유기농법의 효능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유기농법의 장점을 생물학적 다양성 보존, 고용증대, 환경친화성, 음식의 질 향상 등으로 꼽고 있다. 하원 농업위원회장인 마이클 잭은 ‘뉴 사이언티스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기농법의 현재에 대해 “믿음에서 과학으로 나아갈 때”라는 말로 표현했다. 유기농법이 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농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위원들은 ‘유기농산물이 더 맛이 좋고 건강에 훨씬 좋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두번째 질문, 유기농산물은 과연 비경제적인 선택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감자 한 봉지, 사과 한 상자의 가격으로만 따지면 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다. 그러나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기농산물이 꼭 비경제적인 선택만은 아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기존 농법은 환경을 망가뜨린다. 광복 이후로 우리 나라의 농업정책은 증산위주였다. 그 결과로 생태계는 급격히 파괴되었다. 과도한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토지는 물론이고 강, 바다까지 오염되었다. 토양의 산성화가 심화되어 일부지역에서는 pH 2.9까지 떨어진 사례도 보고되었다. 과도한 농약의 사용으로 병원체의 내성이 강해져서 농약의 성분도 점점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체에 쌓이는 화학 약품의 영향으로 기형아 출산율이 높아지고, 모유에서 농약잔류성분이 검출되고 있다. 실로 무시무시한 악순환이다.

이 악마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망가진 환경의 부작용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무서운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광우병의 원인은 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고기와 뼈가 든 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영국 정부는 비교적 빨리 이 사실을 인지하고 몇십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3명의 영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은 뒤 발병하는 크로이츠펠트 야코브 병에 걸려 사망했다. 이 병은 최대 30년까지 잠복하기 때문에 희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광우병의 망령은 끈질기게 부활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처럼 망가진 환경과 병든 인류의 몸을 고치고 복구하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아니,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고서도 복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유기농법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에서 기존 농법보다 뒤떨어져 개개 농산물의 가격은 올라간다. 하지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은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때문에 환경 복구 비용은 들지 않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기농법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밖에도 유기농법은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기농장에서는 기존의 농장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의 야생생물이 자란다. 환경학적 시각에서 보면 개구리, 메뚜기, 새들처럼 눈에 보이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미생물의 보존도 중요한 문제다.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듯이 토양에서 자라는 각종 미생물이나 벌레를 이용하여 불치병을 치료할 약을 만들 수도 있다.

유기농법은 빠른 속도로 확산돼 왔다. 이젠 많은 식품매장에서 유기농산물을 살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유기농산물을 구매할 수도 있다. 환경농업관련단체의 수가 수십 개에 이를 정도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의 유기농법 비율은 선진국의 3∼5%에 불과하다. 겨우 1%를 밑돌고 있는 유기농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수천년 전부터 행해오던 고전적인 농사법인 유기농법이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이 꼭 인류에게 이로운 결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좀더 빠른 생육과 큰 열매를 얻기 위해 시작된 화학비료와 농약이 어느새 인류와 지구 환경을 위협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또 소비자는 유기농산물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막연한 믿음만으로 유기농산물의 판로를 확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는 이즈음, 유기농법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66~67)

< 이식/ 이학박사·과학 칼럼니스트 honeysik@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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