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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영어실력, 서울대생보다 한 수 위

의정부교도소, 영어교육 큰 성과… 수료생 텝스 평균점 655점 ‘모두 영어도사’

  •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재소자 영어실력, 서울대생보다 한 수 위

재소자 영어실력, 서울대생보다 한 수 위
오전 8시, 사람들이 시청각 교육실로 하나 둘씩 모여든다. 오늘은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보는 날. 모두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어느새 영어자막 없이 대사만 듣는 사람도 있다. 4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영어회화 시간. 미국인 교사, 같은 반 동료들과 여러 시사문제에 대해 영어로 얘기를 주고받는다. 저녁은 자율학습 시간이다. 몇 명은 아침에 본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고 몇 명은 두셋씩 모여 영어로 대화한다. 그러다 보면 벌써 새벽 1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의 하루를 이야기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영어 캠프에 들어간 학생들? 어학원에서 집중 코스를 수강하는 수강생들? 아니다. 이들은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이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지난해 8월 이 교도소의 영어교육 수료자 30명이 영어능력 평가시험인 텝스(TEPS)에 응시했다. 그런데 이들의 평균 점수는 655점. 서울대 신입생 평균점수인 595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최고 성적은 881점에 이르렀다. 만점은 990점이다. 수료생 송모씨(25)는 총신대 영어학과에, 강모씨(29)는 가천 길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이는 99년 6월 김정길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이후 달라진 재소자 교육 덕분에 나타난 결과다. 세계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재소자들에게 영어 및 일어 교육을 실시하고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컴퓨터 교육을 강화한 것. 컴퓨터의 경우 모든 재소자들이 다 배워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하지만 영어는 전국 교정기관 수용자 중에서 소정의 필기-면접 시험을 통과한 30명만이 그 대상자가 됐다. 따라서 교육생의 학력은 대학 재학 또는 졸업생이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높은 편이다.

재소자 영어실력, 서울대생보다 한 수 위
이렇게 이뤄진 1기 교육은 99년 10월부터 1년 과정으로 진행됐다. 의정부교도소에 모여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 재소자들. 이들의 죄목은 강도, 사기, 폭력 등으로 다양(?)했지만 영어에 대한 열정만은 똑같았다. 듣기, 읽기, 회화, 어휘, 문법으로 구성된 기본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은 ‘기본’이고 10명씩 한 감방을 쓰며 함께 복습하기도 했다. 하루에 10시간여를 영어공부에만 투자한 것. 새벽 2시까지 영어책을 붙잡고 있는 재소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교도소 관계자조차 “독서실보다도 더 뜨거운 공부 열기가 느껴져 밤에 이들 방을 지나갈 때는 발소리를 죽여야 했다”고 말할 정도.

현재는 2기 교육생 30명이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선배들에게 질 수 없다는 다부진 각오로 더 열심히 공부한다. 교육생 이모씨(32)는 “어차피 사회와 격리된 상황이죠. 과거는 어쨌든 간에 이 소중한 시간을 미래를 위해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같은 교육생 김모씨(23)도 “통-번역에 관심이 많아요. 출소 후 전문 통역-번역인이 되고 싶습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경영학을 전공했던 한 교육생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 MBA 과정을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모의 텝스 평균 성적은 600∼700점 정도. 이들 중 몇 명의 모의 토익 성적은 900점에 이른다.



일본어 교육도 영어와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30명의 교육생들이 출소 후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재소자들의 높은 성적은 의지와 끈기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만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재소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외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30여년 동안 재소자 교육에 힘써온 강귀근 의정부교도소장(56)의 말이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38~38)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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