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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광구 원유 중국이 훔쳐간다?

原油 채굴중인 동지나海 저류층과 이어졌을 가능성 … 해저 파이프 라인도 건설

  •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

제7광구 원유 중국이 훔쳐간다?

제7광구 원유 중국이 훔쳐간다?
소유권이 우리에게 있는 대륙붕에서 중국이 원유를 캐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실제로 중국은 우리가 50%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제7광구 바로 옆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고 있다. 제주도 남쪽 동지나해에는 ‘제주분지’로 불리는 거대한 퇴적지역이 있는데, 이곳에는 석유가 매장된 저류층(貯流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7광구 바로 옆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고 있다면, 원유를 담고 있는 이 저류층은 중국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광구에서부터 7광구 사이에 걸쳐 있을 수도 있다. 7광구 쪽에서 유정(油井)을 뚫는다면 우리도 석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중국이 석유를 다 뽑아 올린다면, 우리는 눈뜬 채로 석유를 도둑맞는 셈이 된다.

동지나해의 석유 주권 문제를 검토하기에 앞서 제7광구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지도에서처럼 제7광구는 제주분지에 설정된 광구로, 총 면적이 남한 면적(9만9000km2)에 육박하는 8만2000km2에 이르고 있다. 제주분지는 제주도 남쪽 동지나해에 펼쳐진 거대한 대륙붕인데, 제주도와 중국 대륙에 맞닿아 있다. 반면 일본은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沖繩) 제도 부근에 그 깊이가 8000m에 이른다는 유명한 ‘오키나와 해구(海溝)’가 있어, 제주분지와 분리된다.

1958년 제정된 국제대륙붕 조약은 ‘대륙붕의 소유권은 그 대륙붕이 시작된 나라에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과 중국은 제주분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일본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1974년 한국은 서해와 남해의 대륙붕에 대해 해저광구를 설정하면서,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한-중간의 정중앙선 동쪽의 대륙붕을 우리 광구로 설정했다.

우리가 오키나와 근처까지 뻗어 있는 제주분지에 대해 해저광구를 설정하려고 하자, 일본이 강력히 발발하고 나섰다. 이때 일본이 펼친 주장은 국제대륙붕 조약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중간선을 넘어 일본 쪽에 가까운 수역은 한국의 대륙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협상에 들어간 양국은 한-일 중간선 동쪽의 제주분지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광권을 갖는 ‘한일 공동 광구’로 설정했다. 우리가 50% 지분을 갖고 있는 이러한 공동 광구를, 우리는 제 7광구로 부르게 되었다.



이 시기 한국과 일본은 7광구를 가장 유력한 석유 매장 지역으로 꼽았다. 오일 쇼크를 심하게 겪었던 터라, 한국에서는 7광구에서 석유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차원에서 ‘제7광구’란 노래까지 만들어 유행시켰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임을 받아 탐사에 나선 석유회사들은 7광구에서 석유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한국과 일본은 자본주의 국가다. 때문에 2, 3년 탐사했는데도 경제성 있는 저류층이 발견되지 않으면 탐사를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공산당이 관심을 가지면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탐사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7광구를 한-일 공동광구로 설정하던 1974년부터 중국은 지질광산부 산하 상하이(上海) 해양지질조사국을 시켜 7광구 동쪽의 제주분지에 대한 탐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9년 후인 83년 ‘평호’(平湖)로 명명한 해저유전에서 경제성 있는 원유와 가스정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후 중국은 탐사 지역을 확대해 ‘보운정(寶雲亭) 유전’, ‘춘효(春曉) 유전’, ‘소흥(紹興) 유전’을 또 찾아냈다. 해저유전에서 뽑아 올린 원유는 대개 유조선을 이용해 육지로 수송한다. 그러나 해저유전에서 나오는 석유가 워낙 많으면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육지로 가져간다. 상하이 해양지질조사국이 보운정유전 등을 찾아내는 사이 중국은 영파(寧波)에 있는 중국 해군의 동해함대 함정과 병력을 동원해 평호유전에서 상하이를 잇는 장대한 해저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중국 동해함대가 해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던 때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기감이 높았던 시기였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동지나해에 모여든 중국 동해함대 함정들을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려고 훈련하기 위해 모인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중국 동해함대는 훈련을 하지 않고 해저에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춘효유전에서 온주(溫州)를 잇는 새로운 해저 파이프라인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그때서야 일본이 중국의 석유 탐사를 눈치채고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계 해양질서는 58년 제정된 국제대륙붕 조약이 아니라 82년 제정된 UN 해양법 협약에 의해 조율되기 시작했다. UN 해양법 협약은 대륙붕보다는 거리를 중시하는 국제법으로, 이 협약은 연안에서부터 200해리까지의 바다는 연안국이 독점적으로 경제적 권리를 갖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설정한다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이때 바다 폭이 좁아 양 연안국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할 수 없으면, 양 연안국은 중간선을 그어 중간선까지의 바다와 해저의 광물자원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갖도록 했다.

UN 해양법 협약이 발효되자 일본은 중국 탐사선이 일-중 중간선 동쪽 바다에서 석유 탐사를 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국 대륙과 대만 가까이에 있는 ‘센카쿠(尖閣) 제도’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에 들어갔다. 센카쿠 제도는 무인도라 배타적 경제수역을 획정하는 기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국제 해양 질서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므로, 일본은 그들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분명히 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이 섬을 ‘조어도’(釣魚島)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해 온 중국과 대만은 물론이고 홍콩마저도 심각히 반발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일본과 영유권 다툼이 있는 독도 문제에 비추어, 일본과 중국이 무인도에 대한 영유권 다툼을 한다고 안일하게 보았다. 그 내면에 석유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은 고노(河野) 외상을 중국에 보내, 춘효 유전을 탐사하는 중국 배가 일-중 중간선을 넘어왔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중국이 제7광구에 걸쳐 있는 저류층에서 석유를 빼가는지도 모르니, 중국의 석유 채굴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너무 바빴다. 또 한일 어업협정과 한중 어업협정을 맺으면서 언론과 어민들로부터 매우 감정적인 질타를 받은 바 있어 ‘그 문제를 건드리면 언론으로부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비판만 받게 된다. 문제를 일으키기 싫다’며 조용히 거절했다고 한다.

국제해양법 학자들은 “중국이 제7광구에 걸쳐 있는 저류층에서 석유를 채굴하는 것이 확인될 경우, 한국과 일본은 이 저류층에 대한 공동 개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이들은 “이때 한국과 일본은 중국이 이 광구를 탐사하는 데 들인 돈의 절반을 보상해주는 대신 그때까지 중국이 채굴한 석유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받는다. 그리고 이후 석유 개발에 대해서는 똑같이 나눠 갖는다”고 정리해 주고 있다(한국과 일본은 25%씩 가져갈 수 있다).

91년 일어난 걸프전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걸쳐 있는 저류층을 양국이 공동 개발하지 못한 데서 일어났다. 이라크가 “쿠웨이트가 우리의 석유를 훔쳐간다”며 쿠웨이트를 침략함으로써 일어난 것이 걸프전이었다.

우리는 제7광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최근 중국은 7광구 바로 곁에서 ‘롱칭’으로 명명된 새로운 유전을 발견했다. 우리는 제7광구에 대한 재탐사를 시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남북문제에 집착하는 현 정부에 이 문제를 풀어나가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18~19)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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