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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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까지 추적 범죄자들 꼼짝마!

미국 공인 탐정 브루스 강…굵직한 해외 도피 사건 ‘해결사’

  • 입력2005-05-27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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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끝까지 추적 범죄자들 꼼짝마!
    ▽강효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군복무를 마치고 부모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갔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여자를 잊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나와 결혼 후 미국에 정착했다.

    20대 혈기방장한 시절을 미주 한인신문 기자로 보냈고, 지금은 ‘인터서치’라는 공인탐정소를 운영중이다.

    최근 자서전 ‘탐정은 벤처보다 낫다’(동아일보사)를 펴냈다.



    미국 공인탐정 브루스 강(43·본명 강효흔)의 이름이 한국에 알려진 계기는 10년 전 ‘대성그룹 50억원 대출사기 사건’이었다. 당시 대성그룹 해외사업부 염모 과장이 사장의 이름을 도용해 은행으로부터 50억원을 대출받아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이었다.

    대성그룹으로부터 염씨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강씨는, 그로부터 장장 9개월간 범인과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인다. 마침내 범인의 은신처를 발견했으나 영장이 나오지 않아 체포가 불가능했다. 당시 한국 검찰은 “영장은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데, 해외 거주자에게는 영장을 집행할 수 없지 않느냐. 이제껏 발부된 역사가 없다”며 영장발부를 거절했다. 그러나 오랜 설득 끝에 91년 3월8일 염씨와 공범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해외 거주자에 대한 구속영장으로 기록된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미간 최초의 범인 체포 공조로 염씨가 체포됐고 91년 3월22일 미국 이민국 수사관이 한국 호송관에게 염씨를 인도하면서 ‘대성그룹 50억원 대출사기 사건’은 마무리된다.

    이로써 최초의 ‘한미간 범인 인도’라는 전례를 남김과 동시에, 국회에서 해외 도주기간을 공소시효에서 제외하는 법이 제정(97년 1월1일 발효)되도록 했다. 그리고 브루스 강은 탐정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애송이 탐정으로서는 분에 겨울 만큼 화려한 데뷔였다.

    “제가 군대에서 첩보요원으로 근무했어요. 적진을 감시하며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일이었는데 대상만 다를 뿐 현재 하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죠. 81년 미국으로 이민와서 한인신문사에서 일할 때는 줄곧 사회부 기자였습니다. 영어로 사회부 기자를 ‘Investigative Reporter’라 부르는데, 탐정이나 수사관을 부를 때도 ‘Investigator’ 혹은 ‘Detective’라 합니다. 미국에서는 사회부 기자가 범죄집단의 범행을 파헤치다 피살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처럼 명칭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경찰, 탐정, 기자는 목적만 다를 뿐 하는 일의 맥락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잠시 변호사 친구와 함께 ‘컬렉션 에이전시’라는 수금전문회사를 운영했다. 스킵 트레이서라는 채무자 전문 추적 업무를 하면서 금융 관련 법, 은행, 신용카드와 우편 등 금융 계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때의 노하우가 대성그룹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큰 사건 하나로 일약 국제적인 스타가 되긴 했지만 진짜 탐정이 되기까지는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우선 탐정학교에서 기본교육을 받은 후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그 전에 3년(6000시간)의 수사경력을 쌓아야 했다.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시험을 통과한 게 95년 6월.

    정식 탐정이 된 뒤 ‘진주한일병원 사건’ ‘롯데그룹 사건’ 등 재계 정계 금융계 종교계를 비롯해 거액의 계꾼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해외 도피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특히 98년 한 방송국과 함께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부도덕한 기업인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 일도 있었다. 미국 갑부들의 별장이 집중된 부촌에서도 한국에서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한 재벌들의 별장이 단연 호화스러웠다. 어느 재벌 현지처의 집도 이에 못지않았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국회에서는 ‘해외재산도피방지법’이 상정됐고 사회적으로는 재벌기업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 검찰청 등으로부터 각종 사건에 대해 협조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현재 경찰청이 발표한 해외도피범은 600여명. 이들 대부분이 경제사범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인 300여명이 미국에 은신중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터폴에 공식수배된 도피자 숫자일 뿐, 실제 미국으로 도피한 경제사범은 거의 3000명에 육박한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그는 경제사범 대부분이 미국으로 도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법망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공소시효가 7년밖에 되지 않아 그 기간 해외에 잘 피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해외도피시 공소시효가 중지되는 새 법이 발표되긴 했지만 97년 이전에 빠져나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요. 일단 피의자가 해외로 도주해버리면 한국 채권자들은 대부분 포기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신분이나 비리가 노출될까봐 채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문제입니다. 탐정은 경찰과 달리 전적으로 의뢰자의 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요.”

    미국에서 탐정들은 범죄활동뿐만 아니라 도난 당한 물건을 찾거나 민사재판 증거수집 및 증인 찾기, 재판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 수집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또 최근 들어 탐정업무가 더욱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다. 강씨처럼 경제사범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사이버범죄 전문, 사고재현 전문(과학자 엔지니어 출신 탐정들로 교통사고나 상해사고 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현하는 업무를 한다), 의료사고 전문탐정도 등장했다.

    2년 전부터 강씨는 한국에 공인탐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큰 범죄사건은 제쳐두고라도 공권력의 손길이 미처 못가는 일에 탐정이 투입된다면 사건 해결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내용이 담긴 ‘탐정법’이 곧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탐정 같지 않다고 해요. 첫인상은 그냥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하죠. 그 점이 오히려 이 직업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탐정은 경찰과 달리 구속력이 없고 용의자를 신문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인터뷰하는 것처럼 해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신의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죠. 평범하면서도 사람 좋아 보이는 제 인상이 그럴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이 탐정업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탐정의 필수요건은 추리력과 직관이라고 말한다. 흔히 직관은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추리력 역시 책상 위의 지식이 아닌 현장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탐정의 기본자질은 도덕성에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추리력과 직관은 기본, 도덕성 갖춰야 명탐정

    “어느 날 젊은 여성이 찾아와 생부를 찾아달라고 하더군요. 돈은 나중에 갚겠다는 거예요. 이 일을 하다보면 공짜로 요청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그런데 한참 지난 뒤 드디어 돈을 모았다며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내게 전하는 겁니다. 의뢰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그녀의 아버지를 찾긴 했는데 이미 한달 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며칠밤 잠을 설치며 후회했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부녀의 상봉을 영영 막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 후 강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그리운 사람을 찾아주는 무료 이벤트를 시작했다. 이 우연한 사건으로 그는 탐정이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일하는 직업임을 깨달았다.

    의뢰인과 같이 울고 웃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짜 탐정이 된다는 것을. 공인탐정 강효혼을 좀더 탐구하고 싶은 사람은 그의 홈페이지(www.koreandetective.com)를 방문해 보시라.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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