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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특검제’ 논쟁

정쟁서 벗어나려면 제도 보완이 바람직…한풀이 ‘여론 재판’은 곤란

다시 불붙은 ‘특검제’ 논쟁

다시 불붙은 ‘특검제’ 논쟁
옷로비 특검’과 ‘파업유도 특검’에 이어 ‘한빛 특검’이 출현할 것인가.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 및 한빛은행 불법 대출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에 나섬으로써 ‘특별검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이번처럼 정부-여당 고위층이 연루된 사건은 특별검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민련도 특검제 도입에 호의적 입장이어서 겉보기엔 특검제 관련 법률의 국회통과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시민단체들도 특별검사제의 상설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특검제는 알맹이 없는 여론잔치”라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검제는 애초 검찰이 객관적으로 수사하기 어려운 권력형 비리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지난해 두 번 시행하면서 그 취지가 상당히 왜곡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검제 무용론’도 특검제 시행에서 드러난 여러 시행착오와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안정한 특검제가 앞으로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불쑥불쑥 거론돼 불필요한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다시 여론의 시험대에 오른 특검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국민의 의혹을 속 시원히 풀어주며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제대로 된 특검제를 해 볼 수 있을까.



여권의 한 관계자는 “옷 로비 특검과 파업유도 특검이 실제로 남긴 결과물이 뭐냐”고 반문했다. 옷 로비 특검의 수사결과가 대검에서 정면으로 뒤집혔고, 파업유도 특검에서도 사건의 핵심인 파업유도 주역이 검찰수사와 다르게 나온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양 특검이 부분적으로 작은 성과를 거뒀는지는 몰라도 결국 모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 보면 해프닝 같은 일’로 수사기간 내내 온 나라의 민심이 들끓었고 정부에 대한 대내외적 불신이 커지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특검제가 ‘한풀이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특검이 물증을 밝혀내지 못해도 특검의 수사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의혹’을 기정사실화 해버린다. 그래서 특검수사의 최종결과에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용두사미’식이 돼도 별 상관 안 한다. 국민들은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의혹의 당사자들이 곤욕을 치르는 장면에 더 주목한다. ‘그 정도면 벌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특검수사가 일종의 ‘여론재판’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특검제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했다고 볼 수 있는 ‘특별검사’는 특검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옷 로비 의혹사건 특별검사였던 최병모 변호사는 당시 ‘최특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언론의 집중적 포커스를 받았던 인물. 최변호사는 옷로비 특검이 ‘여론재판이었다’는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당시 특검법상 특별검사는 대통령에게만 수사내용을 보고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자들에게 ‘누가 소환된다’, ‘어디를 압수수색하겠다’는 식으로 알려줬다. 그것이 언론의 방해를 덜 받으며 수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수사기간 내내 내가 입 닫고 있으면 국민적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시작된 특검수사가 의혹을 더 키울 우려가 있었다. 특검수사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특별검사에게 ‘함구’하도록 한 특검법 조항이 오히려 독소조항이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특검제의 한계는 ‘여론을 의식한 수사태도’가 아니라 제도적 불완전성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10일 만에 특검팀 인선을 끝내라는 조항, 관련자들의 위증부분을 처벌할 수 없도록 한 부분, 특별검사와 수사관에게 부여된 전반적으로 모호한 권한과 위상이 수사를 크게 제약했고 결과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 변호사는 “특검제 무용론에 동의할 수 없으며 검찰이 중립적으로 수사하기 어렵다고 보이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선 특검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검제는 법 앞에 권력자도 똑같이 취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국민 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 특검제 때문에 공권력이 약화하지는 않는다는 논리다.

지난 9월6일 경실련은 참여연대, 한국YMCA와 공동으로 ‘특검제를 아예 상설화하자’는 내용의 부패방지법 제정 청원을 다시 냈다. 이 청원안은 권력형 비리사건 발생시 사실상 국회 본회의 의결로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경실련 고계현 국장은 “한국 고위공직사회에서 부정부패는 여전히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제 상설화의 이익이 그에 따르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8월20일 나온 99년 인권보고서에서 “우리 사회에서 인권분야 개혁은 미흡한 수준”이라면서 “특검제 도입은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출비리의혹사건은 특검제를 도입해야 할 만한 사안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점은 이번 ‘특검제 논란’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특별검사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수사대상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변협의 한 변호사는 “특정 사건이 특검제의 수사대상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이 제도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느냐 상설화시키느냐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단지 권력형비리 의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검제를 남발했을 경우 특검제가 검찰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불필요한 정쟁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출비리의혹사건의 관련자인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 이운영씨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서울지검 주변 분위기는 이 사건이 특검제 대상으론 ‘아직 좀 약하다’는 쪽이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옷 로비, 파업유도 특검 때와 이번 사건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당시에는 법무부장관, 대검공안부장 등 검찰 고위층이 바로 사건의 핵심관련자였다. 옷을 구입한 장소와 날짜, 옷을 판 사람 등 검증할 만한 ‘팩트’와 ‘단서’도 많았다. 그때는 ‘검찰이 검찰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수사하나’, ‘특검이 나서면 뭔가 밝혀질 부분이 있다’는 데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특검 수사대상으로서의 ‘구성요건’이 탄탄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 대출비리의혹사건의 경우 아직까지 장관과 지점장의 상반된 ‘진술’만 존재할 뿐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에서 특검제 도입 여부는 박지원 전 장관의 전화통화의혹 등 이번 사건의 핵심부분들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 결과가 얼마나 충실하게 나오는지에 달려 있다는 게 정치권, 법조계, 시민단체의 공통적 시각이다. 결국 검찰의 신뢰회복이 관건인 셈이다. 최병모 변호사는 “특검제가 검찰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출발해선 안 되며 적절한 사안에 대한 일부 검찰권의 이양 차원에서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0.10.05 253호 (p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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