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7

2000.08.17

“피 묻은 다이아몬드 이제 그만”

아프리카 국가들, 불법 채광 통해 전쟁 자금줄 활용…유엔, 조사위 구성해 제재 착수

  • 입력2005-09-14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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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묻은 다이아몬드 이제 그만”
    최근 프랑스 주재 유엔대사는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에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하자원의 불법적인 채광을 조사할 조사위원회를 시급히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 조사위원회는 5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6개월 안에 콩고민주공화국의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생산과 유통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 검토하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그 실상을 보고하게 할 목적으로 제안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1998년 8월부터 로렌-데지레 카빌라 대통령 체제에 대한 반란이 시작돼 오늘날까지 적어도 주변 6개국 군대가 뒤섞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첫주에만도 르완다와 우간다 출신 군인 간의 전투로 민간인 6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했다. 피비린내 나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을 이끌어가는 막대한 전쟁 경비의 원천은 바로 불법적으로 채광한 다이아몬드. 전쟁의 원인이자 수단인 다이아몬드 불법 채광에 대해 유엔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은 전세계 다이아몬드 생산국 가운데 두번째를 차지하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1위에서 5위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다. 또 전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15위를 차지하는 국가들 중 9개가 정치체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빈국들이다.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해 앙골라와 시에라리온 등 내전이 진행 중인 세 나라에서 모두 다이아몬드가 전쟁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대통령이나 정부군의 장성들, 반군 지도자들이 모두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권자이거나 채광회사들의 대주주들로, 다이아몬드를 통해 쌓은 부를 군사무기 구입이나 외국인 용병 고용에 사용하고 있다. 라이베리아 국경지대에는 현대적인 무기체계를 갖추려는 반군 게릴라들을 위한 거대한 무기 암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나 불가리아처럼 가난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흘러나온 각종 무기가 아프리카의 정규군과 게릴라를 가리지 않고 수요자들에게 값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 무기구입 비용은 모두 다이아몬드에서 나온 것이다.

    짐바브웨 대통령 로베르 무가베는 최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카빌라 로부터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군대를 파견해준 대가로 콩고민주공화국 내 두 개의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권을 넘겨받기도 했다. 반군과 반군을 지원하는 주변국 군대들도 콩고민주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지대인 동부와 북서부 지역을 장악해 근거지로 삼고 있으며,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 차원을 넘어서 내전에 참여한 6개국 군대끼리 서로 광산지대를 더 차지하려는 전투도 전개되곤 한다. 지난 6월 초 전투를 벌였던 르완다와 우간다 군인들은 모두 콩고 반군을 지원하는 병력이었다.



    앙골라에서 수십년 전부터 중앙권력에 대항하고 있는 ‘유니타’(Unita)라는 게릴라 운동집단은 다이아몬드의 불법 생산, 판매를 통해 수만명의 게릴라들을 정규군 못지않게 무장시켰다. 시에라리온의 반군 포데이 샌코(Foday Sankoh) 역시 다이아몬드 불법 채광을 통해 획득한 부로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

    전세계 다이아몬드 유통의 65%를 통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드 비어(De Beer) 회사의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앙골라의 다이아몬드 생산총액 6억1800만 달러 중 1억5000만 달러, 콩고민주공화국의 총생산액 3억9600만 달러 중 3500만 달러, 그리고 시에라리온의 총생산액 7000만 달러 전부가 내전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법적 다이아몬드 채광이 계속되는 이유는 다이아몬드 수요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은 전세계 다이아몬드 수요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제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이들 국가 부유층에 의한 다이아몬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불법 채광된 다이아몬드가 합법적인 것처럼 위장돼 시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전세계 3대 다이아몬드 가공-유통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벨기에 엔터베르펜,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다이아몬드 관련 업체와 행정당국은 다이아몬드 원석의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불법적인 채광으로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원산지에서 주변국가들을 거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스위스나 남미국가들을 경유하면서 원산지 세탁을 한 뒤에야 이들 유통지로 보내지고 있다. 벨기에 엔터베르펜의 행정당국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5, 6개 국가를 거치며 수십 페이지나 되는 각종 증명서를 검토하면서 다이아몬드의 원산지를 밝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의 다이아몬드를 추방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쳤던 부도덕한 백인정권 아래서 더러운 다이아몬드까지 취급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 비어 회사는, 넬슨 만델라 흑인 정권 출범 후 다이아몬드 원석의 유통경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앙골라에서 출발한 다이아몬드 원석 구매를 동결하는가 하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 있던 지사를 폐쇄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존 원산지 증명서의 내용을 강화한 원산지 보증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피 묻은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수많은 식민지에서 지하자원을 약탈했고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이후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부도덕한 정권을 용인해 왔던 프랑스나 영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전략상 아프리카 다수 국가들에서 내전을 유발했던 미국 등이 새로운 세기의 초입에서 이제는 추악한 전쟁의 자금줄을 막기 위해 분주해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이런 노력들이 작은 열매라도 맺는다면 5명 중 한 명꼴로 전쟁의 와중에 살고 있다는 아프리카 대륙에도 머지않아 총성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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