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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탈주범 변인호를 찾아라

“서울지검 모 부장과 최근에도 만났다”

‘주간동아’서 녹음 테이프 단독 입수…“부산 모 군부대에 머물러”

“서울지검 모 부장과 최근에도 만났다”

“서울지검 모 부장과 최근에도 만났다”
변인호(43). 97년 11월 건국 이래 최대규모인 3700억원대(당시 검찰발표) 금융사기 혐의로 구속, 98년 8월 징역 15년형 선고, 98년 12월 의문의 구속집행 정지결정을 받아 한양대병원으로 이송, 99년 1월13일 한양대병원에서 도주, 99년 3월 도주자 신분으로 수출원자재 대금 2억2000만원 사기사건에 가담, 2000년 6월 64억원대의 금융사기행각 다시 발각, 그의 도주를 도와준 혐의로 현직 변호사와 교도관 구속, 8월 현재 도주 19개월째.

한국에서 이보다 더 희한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기꾼’이 있을까. 서울지검 한 검사는 그를 두고 “‘박노항’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안 잡히고 있는 2대 거물 범죄자”라고 말했다. 변인호는 수사관들로부터 “완벽에 가까운 도피행각이 ‘신창원’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그가 도주 후 최초로 외부에 자신의 흔적을 노출시켰다.

‘주간동아’는 최근 변인호의 육성이 담긴 20분짜리 녹음테이프(상자기사 참조)와 김우동 경사가 작성한 녹취서를 단독 입수했다. 도주 1년이 돼가는 2000년 1월3일 오전 8시40분께 그가 김우동씨(당시 변인호를 추적하던 경찰·경사)와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다. 김씨는 1000만원을 받고 변인호에게 검찰의 추적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지금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이 테이프는 김씨가 녹음한 것이다.

변인호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해외로 탈주했다는 검찰 발표와 달리 그가 버젓이 국내에 남아 활동하고 있으며 정계와 검찰 내에 그의 도피를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가능성 등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주간동아’는 그의 발언을 사안별로 정리해 가능한 부분까지 확인 취재했다.

“나 부산 군부대에 있어”-변인호는 전화통화에서 “저희가 한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다시 나갈까 하는데”라며 ‘국내 체류’를 암시한다. 뒤이어 변은 자신이 부산에 있다고 직접 털어놓는다. 그는 “오늘은 다른 친구가 부산에 오기로 했으니까”라면서 “제가 그 친구 만나야 되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대 안에 있기 때문에 출입이 한 사람 정도밖에 안 돼요”라고 덧붙였다.



변인호는 ‘부대 밖에서 만나자’는 김씨의 제의에 대해 “부대 내에서 나갈 필요가 없지요”라며 거절한다. 전화통화에 따르면 그는 부대의 ‘지프차’까지 타고 다녔다. 변인호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부대에 “비행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변인호가 99년 6월26일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에 검거를 못하고 있다”고 언론에 발표해왔다.

그러나 변인호는 올 1월 초 부산 군부대에 머물러 있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다. 그가 설명하는 도피처는 일반인들의 의표를 찌르는 곳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안정된 생활을 해온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가 적어도 상당 기간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는 가정이 나올 수 있다.

검찰 주변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기자에게 “변인호가 올 봄에도 대구 지역번호가 나오는 전화번호로 주변인물 이모씨를 호출해 통화했다. 검찰도 이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안다. 그는 확실히 국내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내용을 부인했다. 하지만 변인호의 통화 녹취록을 볼 때 변인호가 부산이나 국내 다른 지역에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검찰 커넥션 있다--변인호가 한양대병원에서 탈주한 이후 언론은 여러 차례 변인호의 비호세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변인호는 김우동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에도 제가 서울지검 모 부장을 만났어요”라며 그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이모씨(녹음 테이프에는 실명이 나와 있으나 본인의 입장을 고려해 실명은 밝히지 않음-편집자) 건도 다 풀었다”는 말을 던진다.

서울지검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이모씨는 변인호가 과거 경영했던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그와 내연 관계를 맺었던 여성이다. 그녀와 변씨 사이엔 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 건을 풀었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한 검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씨는 검찰에 사기혐의로 수배돼 있었는데 검찰은 ‘참고인 중지’를 통해 그녀의 수배를 해제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인호는 이런 검찰의 조치를 자신의 ‘로비’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변씨는 또한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서울지검 담당 부서 지휘검사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도망자 신분인 변인호가 검찰 내부의 인물과 만나거나 자신과 주변 인물을 위해 로비를 펼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변인호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나 변씨 스스로 검찰 내부에 자신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그의 발언을 둘러싸고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40억, 50억원 현금 보유하고 있다-“제가 뭐 한, 제가 국내에서 찾은 금액이 한 40, 50개 되니까….” 변인호가 여기서 말하는 40, 50개는 40억, 50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서울지검은 그의 재산규모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을까. 서울지검 한 검사는 “변인호가 3700억원의 사기를 친 것은 사실이지만 검거되는 바람에 실제로 그가 챙긴 재산은 피해금액에는 크게 못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인호를 추적하고 있는 서울지검 한 수사관은 좀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잦은 사기행각을 통해 대략 100억원대의 가용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은행에 물려 있는 돈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변인호는 김우동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보유 현금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통프리텔 주식, 옛날에 담보로 잡혔다”고 운을 뗀다. 그리고 “그거를 제가 거의 10만주를 찾았습니다. 10만주면 150억입니다. 그런데 은행부채가 한 70억 정도 돼가지고…”라고 설명했다. 변인호는 ‘탈옥수’의 신분임에도 10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을 굴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제 완전히 살았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마음대로-통화내용에 따르면 변인호는 국내에 체류하면서 수시로 외국을 들락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배자 신분임에도 출입국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은 것이다.

김우동씨는 변인호를 ‘권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변인호의 가명 ‘권영찬’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울지검에 따르면 변인호는 ‘권영찬’ 명의의 여권을 포함해 최소한 4개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다. 변인호는 전화통화에서 자신을 ‘미국 군인’ 신분이라고 주장한다. 김씨가 정말이냐고 묻자 변은 “예… 나갈 때도 그쪽 안 거치고 갈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출입국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는 수일 뒤 다시 출국할 계획까지 세워뒀다. 검찰은 변인호가 중국 선양(瀋陽), 상하이(上海) 등에서 활동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 사칭`-`변인호의 말에 따르면 검찰도 공식발표와는 달리 ‘변인호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어떻게 검찰에 흘러들어갔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슬쩍 ‘청와대 친구’ 얘기를 꺼낸다. “진짜 내가 국내에 있다는 건 청와대에 있는 그 친구밖에 모르거든요.” 김씨가 “청와대 누구요?”라고 묻자 변은 실명을 거명한다. “박쭛쭛이. 1급 국장으로 있는 애가 있어요. 지금도 근무하고 있고요. 그 친구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데 정보가 어디서 나갔냐 이거지.”

‘변인호가 아는 애’로 거명된 당사자측은 물론 “변인호의 변 자도 모른다”며 펄쩍 뛰었다. 변인호는 97년 금융기관을 상대로 대형 사기행각을 벌일 때도 자신을 ‘전직 외무장관 집안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백그라운드’는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윤용호 변호사는 “청와대 등 권력기관을 사칭하는 것은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통화 시점은 김우동씨가 변인호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지 3개월이 지난 뒤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 김씨와 변은 여러 차례 통화를 해왔다고 한다. 말하자면 두 사람간엔 어느 정도의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인호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녹취서에는 녹음일시가 2000년 1월8일경으로 돼 있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날은 2000년 1월3일이었다. 김씨는 대화내용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1월3일자 자신의 다이어리 수첩에 메모해두었다.

검찰은 8월4일 “변인호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담당 실무자가 말하는 사정은 조금 달랐다. “변인호건과 관련해선 6월 초 변호사, 교도관, 변인호 누나 변옥현의 구속을 끝으로 검찰 내부에 인사도 있었고… 직원 몇 명이 추적해 왔는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습니다.”

변인호는 ‘걸어서’ ‘탈옥’했고 지금도 ‘크게 한탕’ 하고 있다. 수천억원의 ‘선량한’ 예금과 기업의 주식이 그의 손에서 놀아났다. ‘돈’과 ‘백’을 가지고 있다는 이 탈옥수는 자신의 ‘육성’을 통해 “이제 완전히 살았다”고 말한다. 건국 이래 최대 사기범은 절대 잡힐 것 같지 않은 ‘화려한 도주’를 즐기고 있다.









주간동아 2000.08.17 247호 (p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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