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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정점’ 다 왔나 멀었나

“하반기 하강 국면” “상승 행진 계속” 논쟁 가열…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낙관론 발목

‘경기 정점’ 다 왔나 멀었나

‘경기 정점’ 다 왔나 멀었나
이미 경기는 정점을 지나고 있다. 하반기에는 하강 국면이 본격화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아직도 경기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경기 정점은 올해를 넘겨봐야 안다.’

최근 정부는 물론 민간 경제연구소들 사이에서 논쟁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경기 정점 논쟁은 이런 대립구도 아래 전개되고 있다. 경기가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기업의 재고 증가 등을 내세우며 거의 모든 업종에서 지난 1·4분기, 2·4분기 중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나 중앙은행 쪽에서는 과거 우리 경제의 평균 순환 주기 등을 내세우면서 정점은 아직도 멀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철환 한은 총재까지 나서 “경기 정점은 아직 멀었다”고 경기 정점 논쟁을 진화하고 있다.

경기 정점이란 몇 년 단위로 상승과 하강 국면을 반복하는 경기의 순환을 ‘사후적으로’ 분석한 뒤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기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거나 ‘경기가 언제쯤 바닥을 칠 것 같다’는 분석은 엄밀하게 말하면 난센스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정점이나 바닥은 한마디로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 정점 논쟁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1·4분기에 이미 경기가 정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KDI는 물론 경제전망 분석을 내놓으면서 여러 가지 전제를 달았다. 애초 논쟁의 진원지였던 KDI측의 입장도 찬찬히 따지고 보면 ‘경기 정점 통과’라고 단정짓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애초 KDI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금융과 기업 부문의 부실이 조속히 제거되지 않을 경우 안정적 거시경제 운영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경기상승 국면 단축과 경기변동 폭 확대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경기상승 국면이 단축될 수 있다’는 언급이 우리 경기가 이미 정점을 통과한 것으로 발전된 것이다.

과거 우리 경제의 경기 순환 곡선을 보면 평균 34개월을 주기로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8년 8월 경기가 바닥을 쳤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까지는 23개월이 경과한 것에 불과하다(17쪽 오른쪽 그래프 참조). 통계적으로만 따지자면 아직도 경기가 정점에 도달하려면 1년 가까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KDI는 기업과 금융의 부실 처리 등 몇 가지 전제를 달아 이 순환 주기의 단축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KDI 김윤기 주임연구원은 “무엇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촉구했던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통계청은 이미 6월 중 산업활동 동향을 발표하면서 실물 경제지표의 상승 속도는 둔화되고 있으나 상승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번 동향 발표에 따르면 6월 중 생산은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7.9% 증가하였고 수출 출하는 27.8%, 소비를 나타내는 도소매 판매는 11.1%, 설비투자는 26.1% 증가하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1.9%로 상승하는 등 실물경제 각 부문은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은 현재의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종합지수 순환 변동치가 전월에 비해 소폭인 0.4포인트 상승해 경기가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향후 경기를 나타내는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가 10개월째 하락하고 있어 앞으로 경기는 등락세를 보이며 조정기를 거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지표경기와는 적지 않게 차이가 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경련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7월 BSI는 6월에 비해 12포인트 떨어진 91.4를 기록해 기업들이 하반기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냈다. BSI가 100 미만을 기록하면 기업인들이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조사된 7월 BSI는 지난 98년 1월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인들이 하반기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요인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금융권 구조조정 미흡에 따른 자금시장 사정 악화와 원유가 상승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상승 움직임이다. 경제 지표의 상승 행진이 당분간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눈앞에서 돈가뭄 현상에 시달려야 하는 기업 경영자들에게 이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외환 위기로 인해 전례 없는 침체를 경험했던 우리 경제는 매끄러운 파동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하강을 거쳐 재상승하는 소순환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오일 쇼크와 같은 공급 측면의 충격을 경험한 경제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설명(왼쪽 그래프 참조).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선임연구원은 “오일 쇼크나 외환 위기처럼 외부 충격을 겪고 난 이후에는 ‘M’자형 경기 상승 곡선을 보이는 만큼 현재의 경기둔화 과정을 본격 하강 국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작성된 JP모건의 한국경제 보고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있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down but not out)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직까지 이러한 낙관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태에서 가장 불길한 시나리오는 2차 금융구조조정 부진에 따른 금융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추가 경기 상승세의 발목을 붙잡고 현실화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M’자형 순환에서 두번째 단계의 탄력을 내리누르게 되는 경우. JP모건 임석정 서울사무소장은 “금융구조조정은 이제 지주회사니 은행합병이니 하는 내용보다도 얼마나 빨리 진행할 수 있느냐는 속도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외적 변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세계 수출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하드랜딩의 과정을 거친다면 아무리 국내 경기가 재상승 여력을 갖고 있어도 대외적 충격 하나만으로 다시 급격한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전망을 담당하는 경제학자들은 통상 향후 3개월 정도라면 모를까 2분기 이상을 내다보고 경제 전망치를 내놓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특정한 통계자료에만 의존할 경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그만큼 경기 전망은 신중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경기 정점 논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기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논쟁을 위한 논쟁, 이론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하반기에도 계속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시사해 주는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간동아 2000.08.17 247호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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