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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잇따른 신작

치열한 작가정신 사람 냄새 폴폴

치열한 작가정신 사람 냄새 폴폴

치열한 작가정신 사람 냄새 폴폴
6월 후반부터 이윤기씨(52)의 신작이 잇따라 나오자 출판담당 기자들이 난색을 표했다. “선생님, 이렇게 한꺼번에 책을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어느 책부터 소개해야 할지 난처해진 기자들의 항의 아닌 항의가 이어지자 이윤기씨는 이렇게 응수했다.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부지런히 써야지, 그래봤자 1만부인걸.”

이윤기씨는 스스로 ‘1만부 작가’라 했다. 아무리 많이 팔려도 1만부를 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신 그에게는 든든한 마니아 독자들이 있다. 그것이 번역서일지라도 이윤기라는 이름이 보증수표인 듯 책을 드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한꺼번에 쏟아진 책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두물머리’는 소설집이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제목 그대로 그의 전문 분야인 신화 해설서다. 그리고 갓 출간된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는 삶의 철학이 녹아 있는 산문집이다.

9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여러 문예지에 써온 중단편 13편을 묶은 그의 세번째 소설집 ‘두물머리’에는 사람냄새가 물씬하다. 젊은 작가들이 내면세계를 내세워 자기 멋에 취해 있다면, 50줄을 넘어선 저자는 범부들의 일상에서 고단한 세상살이를 발견한다. 여기에 맛깔스러운 어휘와 운율감 넘치는 구어체가 읽기에 속도감을 붙여준다.

‘주홍글씨’에서 한참 남편 자랑을 늘어놓던 아내가 마침내 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뒤 “당신도 결국은 수컷이었다, 그지?” 하며 허탈하게 되묻는 모습은, 머리 쥐어뜯고 울부짖는 여인보다 더 실감난다. ‘주홍글씨’가 배신당한 중년여성의 넋두리를 거침없이 쏟아낸 소설이라면, ‘두물머리’는 이미 죽은 큰아들을 기다리는 팔순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감추는 작은아들의 알면서도 모르는 듯 속깊은 대화가 잔잔한 감동을 이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윤기씨의 진수는 ‘신화’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12년 전 나온 ‘뮈토스’(고려원)의 완전 개정판쯤 된다. 작가는 “솔직히 ‘뮈토스’ 때는 신화를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었다고 고백했다. 어쨌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가 신화의 미궁을 자유자재로 들고나가게 됐음을 보여준다. 그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이야기문을 연다.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와 다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실타래를 건네주는 아리아드네. 신화의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저자는 20년 동안 자신의 실타래를 만들었고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이씨는 “필자의 해석은 필자의 실타래지 독자를 위한 실타래가 아니다”고 못박는다. 독자 자신의 상상력으로 신화의 의미를 풀어보라고 숙제를 낸 것이다. 그가 제시한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는 신발로 시작된다. 신화나 전설에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스 신화에는 이아손 ‘모노산달로스 신화’가 나온다. 여기서 모노산달로스란 ‘외짝 신발’이란 뜻이다. 꿈속에서 노파로 분장한 헤라 여신을 업어 시내를 건네주다가 가죽신 한짝을 잃어버린 이아손이 동네 아이들이 부르는 ‘모노산달로스가 왕이 된다네’ 노래말대로 왕이 된다는 이야기다. 역시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도 아테나이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라는 징표로 칼과 가죽신을 받는다. 놀랍지 않은가?(이것은 저자의 표현이다). 저자의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노산달로스와 우리의 짚신, 유리구두, 꽃신은 또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답은 책에 있다.

이 책은 거의 한쪽 걸러 나오는 컬러도판이 특징이다. 그동안 문체에 매달렸다면 이제는 이미지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겠다는 저자의 뜻이 담겨 있다.

끝으로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는 꼭 읽어두기 바란다.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재료가 산문집이다. 소설에서 제3자적 관점을 유지하던 작가라도 수필에서는 거리낌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다소 생경한 제목은 이렇게 풀이된다. “이 시대는 화려한 꽃을 피워야만 꽃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잎도 싱싱하고 곱다면 꽃 이상으로 쳐주는 시대다.” 경상도 사람이지만 전라도 정서를 좋아해 고향 친구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손가락질당하고, 번역가인 데다 미국에 오래 머물러 친미주의자로 매도당하는 자칭 ‘회색분자’의 삶이 29편의 글에서 풀풀 묻어나온다. 이윤기 마니아들에게는 빨리 세 권을 읽어두라고 권한다. 올 가을에는 장편 ‘그리운 흔적’이 출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물머리/ 민음사 펴냄/ 296쪽/ 7500원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동아일보사 펴냄/ 271쪽/ 7500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웅진닷컴 펴냄/ 352쪽/ 1만2000원



주간동아 2000.07.27 244호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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