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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디지털 키드

나도 ‘쌈장’ 될래!

게임 한 우물 파는 마니아들… “원하면 유학 보내겠다” 부모 지원도 늘어

나도 ‘쌈장’ 될래!

나도 ‘쌈장’ 될래!
경상북도에서도 한적한 시골에 속하는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읍내 한쪽에 있는 PC방 ‘인터넷 속으로’의 주인인 금경수씨(33)는 매일 오후 4시면 이곳을 찾는 청도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매니저님’ 으로 통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가방을 메고 이 PC방을 찾아 이 ‘매니저님’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초등학교 3~6학년이 대부분인 이 ‘디지털 키드’들은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대물 낚시광 같은 인기 게임에서 몇 시간 동안 헤어날 줄을 모른다.

“나이스 워킹!”

“근데 저거 폭탄 아이가.”

“니 안피하고 뭐하노 자슥아!”



“하이고, 아까바라.”

레인보우 게임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쉴새없이 떠드는 동안 PC방 한쪽에서는 전략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20여명이 넘는 초등학생들이 모여 앉아 이 동네에서 소문난 게임 고수 최태진씨의 레인보우 강의를 듣고 있다. ‘코너별 대치 요령은 어떻고, 어떤 목표물은 고정되어 있지만 어떤 목표물은 움직이는 타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명중시킬 수 있고…’ 이런 식이다. 강의 중간중간마다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청도 파이팅’을 외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또랑또랑하다. 이 PC방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청도 어린이들은 중장기적으로는 ‘프로 구단’을 창설하기 위해 ‘멤피스벨’이라는 구단명까지 지어놓고 맹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씨는 아이들에게 애향심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개인 아이디(ID)에 청도를 상징하는 ‘chd’라는 영문자를 넣도록 하고 있는가 하면 저녁 8시만 되면 자신의 차를 몰고 산골 구석구석에 있는 아이들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렇게 ‘훈련시킨’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을 오가며 전국 규모의 게임 대회에 참가해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웬만한 게임대회 관계자들 중 대회가 열릴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시골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금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길러낸 디지털 키드의 일부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전문대 게임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금경수씨는 “읍내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군수님 얼굴은 몰라봐도 내 얼굴은 알아보고 ‘매니저님’이라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수줍어했다.

금씨처럼 디지털 키드들이 펼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이제 게임이나 컴퓨터만을 끼고 살아도 경제적 풍요와 명예를 보장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세계 1위를 차지하며 CF계의 스타로 떠오른 ‘쌈장’ 이기석 신화 이후 디지털 키드를 꿈꾸며 이 분야에 뛰어드는 예비 인력들도 만만치 않다. 게임프로그램 개발 전문교육기관인 LG소프트스쿨에 지난해 입학한 공항고 2학년 최필규군(19·휴학중)은 93년 이 소프트스쿨이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입학한 고교생이다. 현재까지 LG소프트스쿨에서 배출해낸 게임전문가는 모두 400여명이지만 이들은 모두 게임 프로그래밍 전문가를 준비하는 성인이었다.

최군의 부모는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던 아들에게 학교 수업의 절반만을 듣게 하고 게임 스쿨로 등을 떠밀었다. 최군의 부모는 아들을 이 소프트스쿨에 보내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최군 부모에게 아예 자퇴를 권유했다. 게다가 최군은 대졸 실업자나 미취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과정에서 수강생들에게 주어지는 정부 지원금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550만원에 이르는 수강료 중 300여만원을 감면받는데 비하면 고교생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최군 부모는 현재 최군을 위해 대학교 1년 등록금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최군 부모의 소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최군의 어머니는 “적당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본인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를 키워주자는 데에 부모가 합의했다. 본인의 자질이 보인다면 일본이나 캐나다로 게임 유학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40, 50대가 넘는 기성 세대들 사이에서도 이제 자녀들의 컴퓨터 집착증을 걱정하기보다는 키워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은행 서울 도곡동지점장인 변길현씨의 아들 동호군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8년 말 군에 입대한 이유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동호군은 이미 고교 재학시절 게임개발업체에 취직하면서 병역 특례 요원으로 인정돼 군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했다. 동호군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보니까 몸이 허약해지는 것 같아’ 입대를 결심했다고 한다. 변씨는 이미 70년대부터 새로운 컴퓨터 모델이 나올 때마다 아들의 PC를 바꿔주며 동호군을 컴퓨터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이처럼 부모들이 자녀들의 게임집착증을 말리기보다는 이를 키워주려고 하면서 디지털 키드들은 이를 자양분삼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천역 부근에 있는 PC방에서 일하는 조재성씨가 전하는 최근 디지털 키드들의 게임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PC방에 매일같이 근무하는 우리들보다도 새로 나온 게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중고등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대부분 외국 게임잡지 같은 것들을 보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우선 자기가 이를 익힌 다음에 PC방을 통해서 퍼뜨리는 거예요.”

인터넷 게임순위 사이트인 배틀탑(www.battletop.com) 관계자는 “프로리그가 출범한 뒤 배틀탑 사이트를 프로 무대 진출을 위한 아마추어 리그로 전환하자 불과 15일만에 8만명의 회원이 늘어났다” 고 밝혔다. 현재 이 사이트의 회원은 무려 30만명에 이르고 있다.

스파르타식 게임훈련… “6일 동안 잠 안잤다”

청도초등학교 6학년인 안현철군(13)은 아예 게임에 푹 빠져든 뒤 게임프로그래머로 직업을 바꾼 경우. 안군은 “남이 만들어놓은 게임만 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이 저렇게 재미난 게임을 만들었을까 고민하게 됐고 아예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장래희망을 물으면 ‘축구 선수’ 나 ‘경찰’이라고 대답하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전혀 생각이 다르다. 부모도 이제 더 이상 자녀들이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리지 않는 분위기다.

훈련방식도 혹독한 스파르타 식이다.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다른 스포츠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뿐. 전국 규모의 게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박식황군(14)은 “대회 참석을 앞두고서는 꼬박 6일간 한잠도 안자고 게임연습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먹는 것과 자는 것보다 게임을 더욱 즐기는 디지털 키드의 출현은 이렇게 청소년들의 생활 패턴이나 이들이 선호하는 직업군마저 급속히 바꿔놓고 있다. 게다가 이들 청소년은 이를 밑천으로 이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펼쳐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펼쳐보일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주간동아 228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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