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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디지털 키드

컴生컴死…“인터넷은 모국어”

컴퓨터 끼고 성장기 보내는 최초의 세대… “아날로그 현실과 디지털 이상 사이 고민”

컴生컴死…“인터넷은 모국어”

컴生컴死…“인터넷은 모국어”
3월23일 오전 6시 서울 미즈메디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유예숙씨(31)는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본 것은 어머니 얼굴이 아니라 ‘산요VPC-SX500’ 디지털 카메라. 간호사는 20초 동안 동화상촬영과 음성녹음이 되는 이 카메라로 아이를 찍었다. 다음날 병원측은 아이의 분만 직후 모습과 첫 울음소리를 담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 주었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하루만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가진 ‘네티즌’이 된 것이다.

‘디지털 키드’(Digital Kids)는 이렇게 탄생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와 만나 컴퓨터와 함께 웃고 울며 산다.

그렇다면 디지털 키드는 어떤 유형의 인간들인가. 그들의 문화적 특징은 무엇인가. 서울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신지용교수는 “인터넷과 인간정신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디지털 키드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는 것.

‘요람에서 무덤까지’ 컴퓨터와 함께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진홍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디지털키드를 “문자습득이 안된 상태에서부터 컴퓨터에 노출된 세대”로 정의내린다. 디지털 키드의 나이는 대략 4세에서 13세까지. 놀이, 커뮤니케이션, 학습, 문제 해결 등 생활 중심에 컴퓨터가 놓여 모국어처럼 ‘본능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디지털 키드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끌어안고 성장기를 관통하는 최초의 세대다. 이들은 지금껏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실험의 한 가운데에 있다. 엄밀히 말해 디지털 키드는 나중에 네트워크 세대로 ‘편입’된 세대인 N세대와도 구별된다.



디지털 키드와 기성세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린이 컴퓨터 교육기관인 서울 ‘컴키드’의 강사 조민영씨는 그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컴퓨터를 ‘머리’로 ‘공부’합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합니다. ‘모국어’이기 때문에.”

올해 네살 난 지수연양. 안양과학대 지모 교수(40)의 딸인 이 아이는 두살 때부터 컴퓨터로 기어올라가 자판을 꼭꼭 눌러보는 ‘취미’가 있었다. 지금은 엄마가 컴퓨터게임을 하면 끼여들어 함께 한다. CD롬 교육프로그램으로 된 ‘색칠놀이’ ‘어린이동물놀이’ 같은 것을 혼자서 척척 한다. 수연이는 컴퓨터를 켠 뒤 D드라이브로 가서 프로그램을 구동시키는 능력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이다.

컴키드에 다니고 있는 다섯살짜리 여아 이미형은 윈도98과 인터넷익스플로러 브라우저에서 그림 불러오기, 복사, 편집, 이메일 주고받기를 한다. 이곳에 함께 다니는 여덟살짜리 김원재군은 인터넷자료검색, 엑셀, 파워포인트 과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가 있다는 ‘포켓몬스터 인터넷게임’을 즐긴다.

머그게임 리니지, 스타크래프트, 홈페이지, MP3, 휴대폰, PC방, 웹진, 인터넷방송, 인터넷만화, 채팅, 포르노그라피, PUMP, 부킹… 10대를 휩쓸고 있는 인터넷 문화의 물결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까지도 밀려오고 있다. 울산 태화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 지승민군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다. 영어는 전혀 못하지만 영어로 된 매뉴얼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이 때문인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승민이는 벌써 안경을 쓰고 있다.

‘노원, 창일, 전농, 강남, 성산, 아현, 한강…’ 서울시립보라매청소년수련관에 홈페이지가 등록된 중학 생들의 소속 학교는 90개에 이른다. ‘ 주제:인기만화 포켓몬스터 소개, 주제선정 이유:이 만화 에 대한 홈페이지가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내가 한 번 도전해 본다. 목적:포켓몬 151마리 소개와 동영상 보기 등. 페이지 소개:인트로페이지는 포켓몬이 5초 동안 마구마구 나온다. 메인 페이지는 극장처럼 화면으로 보조버튼을 보게 한다.’ 서울 영남중 3학년 이진영군이 컴퓨터교육기관인 하자센터에 낸 홈페이지 계획서다. 이군에겐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

3월23일 하자센터에서 웹진 teens-biz 창간을 앞두고 밤 11시까지 모니터에 무엇인가를 입력하고 있는 광문고 2학년 신호철군을 만나 보았다. ‘ …’ 웹진 한 페이지의 상단제목, 배경과 글씨 색, 그림 이미지 구성을 위해 신군이 입력한 명령어들이다. “25일까지 홈페이지 하나를 함께 마감시켜야 해요.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는 웹진에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분야 콘텐츠를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넷상엔 꼴통, 날라리, 야자, 엔스타 등 신군이 만드는 것과 같은 10대 웹진이 셀 수도 없을 만큼 포진해 있다.

서울 S여중 3학년 이은희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문자메시지의 여왕’으로 통한다. 이양은 “설명서 없이도 휴대폰의 버튼들을 막 눌러보다 그 기능을 스스로 체득해 외워버린다”고 말했다.

97년 국내 K검색엔진의 최다 검색어는 ‘오현경, 야설, sex, 포르노…’ 순이었다. 2000년 1월 라이코스 코리아의 최다 검색어순은 ‘MP3, 포켓몬스터, 뮤직비디오, 야설, 스타크래프트, 채팅…’이었다. 서울 광문고 2학년 김모군은 “10대 사이에서 포르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디지털키드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포르노는 너무 쉽게 볼 수 있어서 애들이 이젠 재미없어해요. 희소성이 없어지면 금방 주도적 위치를 잃어버리죠. 대신 실제 이성친구와 대화도 하고 만날 수도 있는 ‘인터넷 부킹’이 훨씬 인기예요.”

디지털 키드와 인터넷의 접점은 어디인가. 학부모 정보감시단 이은경간사는 “10대의 왕성한 ‘호기 심’이 재미있고 무한하며 쉼 없이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무대’를 만났다”고 말한다.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무언가 멋진 일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또 저쪽에서 새로운 모퉁이가 나를 유혹한다.”(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주한씨의 홈페이지).” 탈학교모임 김한울군(17)은 ‘속도’라고 표현한다. 디지털 키드들이 인터넷을 할 땐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기진열대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앞에 놓이는’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 속도감과 맞춤성, 감각코드가 디지털 키드의 ‘회로’다.

디지털 키드는 변화를 갈구하는 10대의 폭발적 욕구 분출인지도 모른다. 외국인들에겐 그같은 힘이 놀랍기만 하다.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스타크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PC방이 1만5000여개나 생겨 35억달러의 새로운 소비시장이 형성됐다. 이 두 가지가 초고속통신망산업, 포털서비스, 인터넷중개산업 등 한국의 인터넷산업전반이 줄줄이 발전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아시안 월스트리트 2월28일자)’. 경매사이트인 옥션의 오혁사장은 “10대는 인터넷을 뒤져 같은 제품을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을 귀신처럼 알아낸다. 디지털 키드들은 소비자 민주주의의 첨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지털 키드가 인터넷을 통해 ‘유토피아’를 찾았을까. 2월 서울여성민우회가 수도권 중-고생 6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9.1%가 ‘친구보다 인터넷이 좋다’고 답했다. 인터넷을 생각보다 오래 한다(80%), 인터넷 때문에 다른 일에 소홀하다(52.1%), 가족-친지와 어울리기보다는 인터넷을 하겠다(30.3%), 인터넷 때문에 잠을 설친다(34.8%)는 답도 나왔다. “친구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그냥 적으면 될 것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저장한 뒤 프린트해 잘라서 수첩에 붙이고 다닙니다 (서울 S고 1년 김모군이 한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글).” 학교에서의 교우관계는 10대들 사이에서 인터넷바람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97년에 비해 3.1배 나빠졌다(서울시교육청 설문조사). 서울 K고의 한 생활지도담당 교사(40)는 “PC방에서 밤을 새우고 학교 수업시간에는 잠자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달 중 인터넷 안하는 날은 하루 이틀밖에 안됩니다. 채팅 안하거나 게임 건너뛰면 계속 그쪽으로 신경이 쓰입니다. 인터넷에 너무 빠져 있는 것 같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성적과 대학만 따지는 학교가 지긋지긋하기 때문입니다(하자센터에서 만난 서울 D고 2학년 이모군).” 이군은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난리인데 학교는 왜 컴퓨터를 못 가르칠까. 애들이 더 똑똑하고 두려움이 없으니까. 학교를 뿌리째 뽑아서 새로 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이 대목에서 10대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입시교육’과 만난다. 인터넷이 현실의 도피처가 될 때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모두 위기가 찾아온다는 징조다.

인터넷 안하면 하루종일 찜찜

PC방 출입시간규제 등의 방법으로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지나치게 오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법규도 한 가지 해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결은 ‘오프라인’의 개혁에서 찾을 것을 주문한다.

연세대 청년문화센터 엄기호연구원은 디지털 키드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게임과 채팅에 몰두하고 금지된 곳을 들락거리는 부류, 이 단계에서 진일보해 가상공간에서 친구를 만들고 자기 집을 건설하며 생산적 활동을 하는 부류다. 첫 번째 부류를 ‘텔레비전 세대’의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두 번째 부류에 대해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도록 지원하라고 엄연구원은 권한다.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유창재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디지털 키드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갈 역동적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속 공간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 주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상입니다. 디지털 키드에 대한 이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색한 공존의 문제를 푸는 데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N세대는 죽었습니다”

서울 동성高 조성도군… 웹진운영 카피라이터 활동 “24시간이 짧아요”


서울 동성고 2학년 조성도군. 인터넷에서 그는 ‘펭도’라는 또다른 이름을 쓴다. 펭도는 자신의 별명 펭귄과 이름 끝 글자를 합쳐 만든 거라고 한다. 펭도는 ‘한글 is fun’이라는 외국인을 위한 영문 한글교육 사이트를 만들었다. 조군은 외국에 다녀온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을 통해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펭도는 ‘channel 10’이라는 웹진을 운영하고 있다. 웹카피라이터 활동도 했다는 그에게 자신의 웹진을 광고하는 카피를 지어보라고 했다. 즉석에서 답이 나왔다. “N세대는 죽었다. channel 10세대다.” 펭도는 넷상에 자신의 팬클럽을 갖고 있다. 그가 3월24일 ‘컴퓨터 속 또다른 나’라는 주제의 글을 보내왔다.

‘오프라인 학교 집 학원 딜리트 내 모든 걸 바침 그래서 컴퓨터는 켜짐 펼쳐지는 세상으로 날아올라가 보자꾸나 인터넷 공동체 이해 못하는 생물체 내버려두고 ICQ(www.icq.com) 띄워놓고 이멜 check! 하자마자 줄줄이 올라오는 뉴스레터셰어웨어들로 새로워지는 펭도 데스크탑. 그리고 난 따따따 채널텐 컴 따다닥 치고 나서 어제 올린 내 글에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애들 글 읽고 나서 낙서장에 낙서 막 써 계속해서 야후 네이버에서 추천사이트 열어보고 즐길 만하면 들러보고 예쁘다면 즐겨찾기에 보태놓고 thinkquest(www.thinkquest.org) 같은 콘테스트는 또 없는지 기웃거려도 보고 넘쳐나는 정보 하나라도 놓쳐선 안되지 그래서 찾아가지 느려터진 종이신문들보다 훨씬 빠른 소식들 다양한 그래프 실시간 투표 사이버의 법칙을 지킨다면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지 이제 완전히 펼쳐진 날개 eye4u(www.eye4u.com) 플래시 무비 클릭 가슴속이 탁 트여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갖가지 움직임 톡톡거리는 소리 배고픈 색깔에다 멋진 스크린세이버들 아아 행복해 거기 나와 있는 대로 이미지를 움직여 내 생각을 덧붙여 이름을 붙여 펭도꺼 이제 마지막 마우스가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콘들과 함께 즐기는 dynamic html 세상 bratta(www.bratta.com) 여기서 찾은 독특한 스크립트로 꾸미는 멋진 펭도 웹페이지 지겨운 일상의 연속 반복되는 생활 속에 그만 돌아 버린 내 머리 이제 나는 인터넷으로 해방.’




주간동아 228호 (p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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