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2000.01.27

‘시민’은 없고 ‘운동’만 있다

엘리트 위주 활동·중앙집중 구조로 하부조직 취약… 보통사람과 눈높이 맞춰야

  • 입력2006-06-21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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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은 없고 ‘운동’만 있다
    총선을 석달 가량 앞둔 시점에서 시민단체들이 정치인 낙선운동의 포문을 열자 이해당사자인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낙선운동 대상자로 분류된 정치인들은 이게 웬 날벼락이냐 싶을 것이고, 다행히 화살을 피한 정치인들은 시민단체의 저격에 목표물이 될까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설혹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선거법 위반에 걸려 일단 후퇴한다 할지라도 인터넷시대에 시민의 집합적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의사전달의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이번 총선에는 이래저래 시민단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1987년 이후 한국에서는 ‘국가의 시민사회화’가 그런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 여기에는 시민운동이 공헌한 바가 크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노동자-학생-종교인-지식인이 민주화의 주역이었다면, 1987년 이후 민주화 이행기에 그 역할은 시민단체로 이전되었다. 이른바 비정부단체(NGO) 혹은 비정치단체(NPO)로 불리는 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결빙상태에 있던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민주화를 향한 열망에 불을 지핀 것이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크면 클수록 시민운동은 급성장하고, 국가와 권력집단이 독점한 폐쇄회로를 빠르게 개방시킨다. 한국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유럽에서는 기존의 정치제도와 정당제도가 새롭게 부상하는 삶의 질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던 1980년대 초반 이래 비정부단체의 역할과 위상이 꾸준히 확대됐다. 그 정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 역시 새로운 쟁점을 개발하고 사회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시민단체의 몫은 꾸준히 증대했다. 한국에도 이른바 NGO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시민운동은 ‘삶의 질’의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에 주목한다. 환경 여성 평화 소비자주권 인권 불평등 국가분쟁 건강과보건 인본주의적이념 등의 문제가 그것인데, 이런 쟁점들은 계급 경계와 국가간 이해갈등을 초월하여 초국가적-범인류적 가치를 함축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지구상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민운동을 ‘신사회운동’으로 규정하여 주로 계급적 관심에 기초했던 구사회 운동과 구별하는 것이다. 새로운 아젠다를 중심으로 추진된다고 하여 신사회운동을 ‘쟁점의 정치’로 부르고, 어떤 뚜렷한 조직체 없이 매스컴과 의사소통 기제를 활용하여 여론을 환기시키거나 시민의식의 전환을 꾀한다고 하여 ‘신정치’(New politics)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운동은 자발성과 전문성에 기초한다. 아무리 발전된 민주주의라 해도 시민들의 자유는 정치권이 제시하는 제한된 영역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NGO의 시대’에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적 동원의 대상이 기를 거부하고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선택의 여지를 넓혀가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짧은 역사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그 배경에는 노동운동과 저항운동이 놓여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저항의 전선에서 싸웠던 많은 운동가들이 새로운 쟁점을 찾아 신사회 운동의 영역을 개척한 결과일 것이다.

    시민단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시민단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지양해야 할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엘리트 위주의 활동과 중앙 집중적 조직구조, 사회적 명사(名士)에의 의존성은 시민운동의 영향력과 설득력을 높이는 데에는 상대적 이점이 있으나 시민사회의 저변으로 파고들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이는 조직의 중앙집권적 구조와도 직결되는 것으로서 지역의 하위조직이 대단히 허약한 상태다. 우리의 시민운동이 매스컴을 활용한 사회적 쟁점화에는 성공하는 반면,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발성, 전문성, 지속성을 겸비한 시민운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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