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2016.06.08

경제

사생결단 면세점 2라운드

신규 면세점 4곳 출점 예고, 기업 윤리 저버린 대기업…정부의 오락가락 졸속 행정도 문제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6-03 17: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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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9일 관세청이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사업권)를 연말까지 4곳에 추가로 내주기로 하면서 업계의 과당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사업권을 따낸 5개 신규 면세점(HDC신라, 신세계, 갤러리아면세점63, 두타, SM)의 합세로 이미 출혈경쟁이 시작됐다고 보는 이가 많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여행사 모객 수수료와 업체별 할인행사를 들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누가 먼저 손익분기점을 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보다 매출액이 중요한 시점이다. 모객에 혈안이 된 나머지, 신규 면세점 출점 후 여행사 수수료가 25~30% 올랐다. 향후 4곳이 추가로 문을 열면 이 비중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뜨거운 경합이 예상되는 지역은 외국인 관광객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서울 명동 일대다. 2014년 기준 외국인 927만 명이 방문한 명동에는 면세점계의 ‘절대강자’인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이 직선으로 43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또한 롯데면세점 소공점에서 지하철로 3개 정거장 떨어진 동대문 두산타워에는 두타면세점이 입점해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15분이면 도착 가능한 거리다.

    여기에 장충동에 위치한 신라면세점 서울점과 종로구 인사동에 새로 들어선 하나투어 SM면세점,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동화면세점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광역상권으로 묶을 수 있는 면세점이 6개에 이른다. 그 밖에도 갤러리아면세점63은 여의도 63스퀘어에, HDC신라면세점은 용산 현대아이파크몰에 입점해 있고 강남권에는 기존 면세점인 롯데 코엑스점이 운영 중이다.

    신규 면세점이 대부분 해외 명품 브랜드 유치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경쟁력 부재 요인으로 꼽힌다. 명품은 고부가가치 상품인 데다 경기를 타지 않고 꾸준히 매출을 견인하는 효자상품으로, 면세점 처지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품목이다. 특히 명품 구매에 적극적인 유커(중국인 관광객)와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명품 브랜드 유치가 절실하다.





    경영 능력 생각 않고 신규 출점에만 욕심

    하지만 4월 HDC신라면세점이 루이뷔통 유치에 성공한 것 빼고 나머지 업체들은 여전히 ‘명품 없는 면세점’이란 수모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지영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산 화장품이나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려고 신규 면세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입 명품 브랜드로 모객이 가능해야만 다른 제품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파이가 한정돼 있는 만큼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 업체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한국 대신 일본을 택하는 중국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관광산업에 언제 빨간불이 켜질지 모를 일이다. 5월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관광객 유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일본은 1974만 명을 유치해 약 11조 원의 관광수지 흑자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1323만 명에 그쳐 약 6조 원의 적자를 냈다. 또한 우리나라의 중국 관광객 의존도는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 계획이 발표되자 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한바탕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기존 사업자는 물론이고 신규 사업자도 대거 참여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심사에서 탈락한 롯데면세점(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을 비롯해 현대백화점그룹과 신세계, 두산, 이랜드, 한화 등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은 재심사에서 탈락한 후 막대한 투자 손실에 수천 명의 해고 사태까지 빚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두 업체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그렇다면 남은 한 장의 티켓은 현대백화점그룹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코엑스점은 과당경쟁을 하는 강북과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고, 리모델링 후 면세점으로 전용할 영업 면적도 충분하다”고 평했다.

    문제는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이 사업권 쟁탈전에 다시 뛰어들 수 있게 한 관세청의 결정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지난해 신세계면세점과 두타면세점은 정부의 면세점 사업권 추가 허용 정책에 반대하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새로 사업권을 발부하기로 결정하자 자신들도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태도를 바꿔 빈축을 사고 있다.

    5월 18일 성영목 신세계면세점 사장은 매장 오픈 기자간담회에서 “(사업권 경쟁에)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20일 이천우 두타면세점 부사장도 “시내가 됐든 공항이 됐든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은 안 되고 나는 된다’는 식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 눈치 보며 관세법 수정

    지난해부터 온갖 논란을 불러온 면세점 사업권은 결국 정부의 오락가락한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2013년 관세법 개정에 따라 지난해 1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권을 발부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았을 뿐 아니라, 명확한 근거도 없이 특허기간을 무작정 5년으로 줄여 온갖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올해 3월 말 관세청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보세판매장(면세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특허권 심사도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자동갱신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했다. 이는 곧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에 면세점 사업권을 늘린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결국 대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정책 수정이란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관세청 관계자는 “앞으로 관광객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 관광 인프라를 미리 구축해놓자는 취지일 뿐 특정 업체에게 특혜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말 선정 작업이 이뤄지더라도 실제 영업이 개시되기까지는 약 2년(공고기간 4개월, 심사기간 2개월, 면세점 공사기간 포함)의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그동안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특허수수료율(대기업 기준 매출액의 0.05%)도 매출액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14년 시내 면세점 총매출액 5조4000억 원에 대한 정부의 수수료는 27억 원에 불과했다. 이번에 바뀐 관세법에 따르면 신규 진입한 면세점 등의 부담을 고려해 매출구간 2000억 원 이하에는 0.1%, 2000억~1조 원에는 0.5%, 1조 원 초과분에는 1.0% 수수료가 적용된다. 따라서 그동안 서울 시내 면세점 매출의 80% 가까이를 차지해온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2015년 7월 기준 면세점 총매출액 5조1000억 원 가운데 롯데면세점 50.1%, 신라면세점 29.5%) 측에는 1%대 특허수수료가 청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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