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2016.02.03

사회

강남 학원가, 수강생 안전은 뒷전

수백 명 한꺼번에 콩나물시루 강의실, 이동하기도 힘든 복도…소방장비, 탈출 장비는 태부족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이규원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입력2016-02-02 10: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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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층건물을 가로지르는 칼바람이 출근하는 이들의 살을 파고드는 서울 강남역의 아침. 매년 1, 2월이면 직장인들과 그 추위를 함께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각종 시험 준비로 강남 학원가를 전전하는 취업준비생들. 이 학원가는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거대상권의 일부로 자리 잡아 ‘강남 학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매년 방학이 되면 서울 각 지역은 물론, 지방에서까지 수강생들이 몰려든다. 근방 카페와 베이커리, 분식집들은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수강생 간 자리 맡기 경쟁이 일상이 됐을 정도다.
    학원 내부로 들어가면 이런 과밀현상은 더욱 심해져 그야말로 ‘북새통’ ‘콩나물시루’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 펼쳐진다. 대학 중형 강의실 남짓한 공간에 200여 명 학생이 빽빽이 들어앉는 것은 기본.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강의 시작 전 비상구 계단을 따라 줄을 서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다. 쉬는 시간이면 건물을 나가고 들어오는 수강생들과 화장실을 가거나 정수기를 이용하려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하기 위해 학원 측에서 고용한 ‘조교’가 동원되기도 한다.



    북새통, 비상시엔 ‘대형사고 위험’

    과연 이들 콩나물시루 취업 준비 학원들은 얼마나 안전할까. 이곳들은 모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 ‘다중이용업소’로 규정된다. 다중이용업소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영업 중에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생명·신체·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영업소’를 말한다. ‘주간동아’가 유명브랜드 학원 4개사 건물 6개를 임의로 조사한 결과, 시행령에 따른 안전시설을 규정에 맞게 제대로 갖춘 학원은 한 군데도 없었다.
    강남역 일대에서만 약 7개 이상의 건물을 운영하는 A학원의 경우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 A학원의 건물 가운데 3개 건물을 살펴본 결과 비상구 위치와 피난 동선, 소방시설 위치 등을 표시한 피난안내도 등이 법 시행령상 명시된 곳 어디에도 비치돼 있지 않았다. 시행령은 관련 안전장비를 ‘영업장 주 출입구 부분의 손님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에 비치해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A학원 관계자는 “강의실 내부에는 피난안내도가 있다. 주 출입구 경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관할 소방서로부터 완비증명서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곳의 안전 점검을 담당하는 서초소방서 측은 주간동아의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또 A학원이 입주한 한 상가건물은 강의실당 200여 명의 인원이 들어가는 강의실이 4개, 10명 내외 학생이 이용하는 소규모 세미나실이 5개로 구획돼 있어 최대 800~90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하는 건물임에도 옥외로 향하는 비상계단에는 음료자판기와 철제캐비닛, 화장지 박스 등이 놓여 있었다. 같은 상가 건물 1층에는 식당, 카페 등이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비상계단의 적재물에 대해 A학원 담당자는 “(적재물은) 학원이 아니라 건물주가 놓은 것이다. 학원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치우겠다고 말할 수 없지만, 건물주에게 요청해 치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람이 특히 많이 몰리는 다중이용업소의 비상계단 등을 막거나 적재물을 쌓아놓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며, 이 때문에 비상시 대피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다른 학원들의 경우는 이보다 양호했지만, 안전점수에 만점을 주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았다. B학원과 C학원, D학원의 경우 각각 하나씩 시행령의 기준에 미달하는 부분이 발견됐다. D학원의 경우 피난설비와 소화설비 등이 모두 관련 기준에 부합하거나 그에 준하는 정도로 양호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피난안내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B학원과 C학원 두 곳 모두 빌딩의 고층 일부를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완강기, 구조대 등 비상시 탈출용 피난기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해당 사실에 대한 해명을 담당자에게 요청했으나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만 했을 뿐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방학을 이용해 위 학원들 가운데 한 곳에서 수강 중인 취업준비생 박모(26) 씨는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수용돼 있어 건물 내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평소에도 사람들이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만약 화재라도 나면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불안감을 표시했다.



    “기준 엄격 적용, 추가 대비 있어야”

    학원을 벗어난다고 학원 수강생의 안전이 보장될까. 강남 학원가 인근에 위치한 카페와 식당, 패스드푸드점 등 학원 안팎을 오가는 취업준비생들이 자주 찾는 식품접객업소 9곳을 살펴본 결과, 시행령에서 제시한 안전시설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곳은 3곳에 불과했다. 규정을 어긴 사례로는 소화설비가 이용자가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경우, 피난안내도 위치가 부적절한 경우, 피난 동선·소방시설 위치 등 표시해야 할 사항이 누락된 경우, 비상구가 자물쇠 등으로 잠겨 있거나 비상구 통로에 적재물을 쌓아놓은 경우 등이 있었다.
    이 같은 안전시설 점검의 주체는 크게 관할 소방서와 안전관리업체 둘로 나뉜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관할 소방서에서 하는 시설점검은 표본 점검일 뿐이고 주기적 안전점검은 (안전)관리업체들이 담당하는 등 점검체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소방서가 (완비증명서를) 한 번 발급하면 업주가 특별히 변경 사항 등을 보고하지 않는 이상 증명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서 소방서가 시행하는 안전점검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안전점검을 나가기 7일 전 업체 측에 고지를 해야 하는 법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실 불시에 점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하성 교수는 “안전관리업체와 이용업소 간 관계에서 사실상 이용업소가 ‘갑’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안전관리업체를 업주가 선정하게 돼 있고, 업주는 안전관리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업체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공 교수는 “다중이용업소에 시행령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많은 학생이 모여 공부하는 학원 같은 경우 강의 시작 전 짧게나마 재난이나 화재 발생 시 대처법을 안내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등 추가적인 대비가 있어야 한다. 대형 강의실의 경우 영상시설이 이미 구비돼 있고 영상을 상영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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