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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통제력 상실, OPEC의 위기

55년 만에 초저유가 시대…산유국의 생존게임 시작됐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통제력 상실, OPEC의 위기

통제력 상실, OPEC의 위기
국제유가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시장 통제력 상실로 급락하고 있다. 초저유가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제유가는 그동안 배럴당 40~50달러대를 유지하다 2015년 12월 들어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40달러대를 깨고 30달러대로 떨어진 상태다. 국제유가 하락의 근본적인 이유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원유시장의 과잉공급은 하루 200만 배럴로 추정된다. 공급이 많은 이유는 OPEC 회원국들이 하루 최대 생산량으로 합의한 3000만 배럴보다 150만 배럴을 더 생산하는 데다 러시아, 미국 등 비(非)OPEC 국가들도 생산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하던 OPEC이 생산량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다. OPEC은 12월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 각료회의에서 원유 생산량 감축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정면충돌했다. 결국 OPEC 회원국들은 이례적으로 산유량 목표치를 명시하지 않은 채 산유량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결정만 내렸다. 사실상 산유량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것은 회원국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겠다는 뜻이다.

다른 속내, 다른 계산

OPEC은 1960년 9월 산유국들이 국제유가를 조정해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만든 기구다. 회원국은 현재 중동 6개국(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이란, 이라크)과 아프리카 4개국(나이지리아, 리비아, 알제리, 앙골라), 남미 2개국(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등 13개국. 이들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분열된 상태다. 자기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졌다.
사우디는 미국 셰일오일에 원유시장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OPEC이 똘똘 뭉쳐 현재의 산유량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우디에 동조하는 국가들은 재정 상태가 비교적 좋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이다. 반면 재정 상태가 나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다른 회원국들은 산유량을 줄여 유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지파와 감산파 간 갈등 및 대립이 증폭되면서 카르텔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카르텔 붕괴는 OPEC의 시장 통제력 상실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란이 OPEC의 내분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란은 OPEC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원유를 무조건 증산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이란은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산유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OPEC의 공식 산유량 목표치가 없는 만큼 경제제재 이전 수준으로 산유량이 회복될 때까지 원유를 증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1570억 배럴로 세계 4위. 그동안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 탓에 유전을 제대로 개발할 수 없었지만, 7월 서방과 핵협상 타결로 2016년 초 경제제재 해제를 앞두고 있다. 이란은 서방 자본을 대규모로 유치해 5년 후에는 원유 생산 능력을 현재의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2012년만 해도 이 나라의 원유 생산 능력은 하루 370만 배럴이었는데, 경제제재가 발효된 직후 270만 배럴로 줄었다. 서방 각국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 5년 후인 2020년까지 이란의 원유 생산 능력은 하루 5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OPEC의 내분을 은근히 부추긴다. 사우디에 버금가는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는 현재 하루 105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전체 수출의 68%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경제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이란, 베네수엘라, 이라크, 앙골라,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등을 선동해 사우디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사우디와 시장점유율을 놓고 중국 등 아시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국제유가 하락에도 느긋한 모습이다. 어니스트 모니스 미국 에너지장관은 “미국은 셰일오일을 극적으로 줄이지 않았으며 앞으로 생산량을 하루 900만 배럴까지 점차 늘릴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모니스 장관의 이런 발언에도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은 유가 폭락을 견디지 못하고 대거 감산에 들어간 상태다. 시추공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셰일오일은 생산 비용이 배럴당 50~60달러이다 보니 최근 같은 저유가 흐름에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저유가에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모니스 장관이 셰일오일 생산량 확대를 공언한 의도는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저유가 덕분에 러시아, 이란 등 반미국가들을 견제할 정치적 이득도 얻고 있다. 실제로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의 경우 우파성향의 야당 연합이 16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해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야당 연합의 승리는 골수 좌파이자 반미주의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셰일오일을 놓고 미국과 사우디가 벌이는 ‘치킨게임’의 불똥이 반미국가들에게로 튀고 있는 셈이다.       

저유가가 만드는 글로벌 경제위기?

경제적 측면에서 저유가는 산유국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 등 산유국들은 모두 2015년 재정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가 하락하면 자연히 물가도 낮아지고 경제 활력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유가가 각국의 생산과 소비 수요를 줄이고 이 때문에 원유 수요가 줄어 유가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현실화한다면 글로벌 경제위기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금리인상도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반론도 있다.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는 “유가가 향후 경제전망의 예측지표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1982~83년, 1985~86년, 1992~93년, 1997~98년 등 국제유가가 반 토막이 났을 때 세계경제는 전례 없이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국제유가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망이 맞는다면 각국은 초저유가 시대라는 정글에서 생존 게임을 피할 수 없다. 




주간동아 2015.12.23 1018호 (p58~59)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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