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영화 ‘더 랍스터’의 한 장면.
무겁고 슬픈 도입부의 배경음악은 베토벤 ‘현악4중주 1번’ 2악장이다. 느린 아다지오의 2악장은 ‘더 랍스터’의 전체 감성을 결정짓는다. 이 곡은 베토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 시퀀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미오는 가족묘에 누워 있는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마신다. 다시 깨어난 줄리엣도 죽어 있는 연인을 보고 단도로 자살한다. 바로 이 부분이 무덤 시퀀스다. 어린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이 청년 베토벤 음악의 모티프였다. 말하자면 베토벤 현악4중주는 죽음을 위무하는 진혼곡인 셈이다. 베토벤의 이 곡은 ‘더 랍스터’의 전체 감성, 그리고 이야기까지 결정짓는 구실을 한다. ‘더 랍스터’의 데이비드도 ‘슬픈’ 로미오처럼 연인의 운명을 뒤따를 것이다.

1945년 소련에서 창립된 보로딘 4중주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단이 연주하는 자신의 ‘현악4중주 8번’ 4악장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데이비드는 결국 숲에서 만난 연인(레이철 바이스 분)과 함께 이곳도 탈출한다. 달리 말하면 이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다시 화면에선 베토벤 현악4중주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연인의 죽음을 위무하던 그 곡 말이다. 문명도, 자연도 사랑의 불모지가 돼버렸다면, 이제 세상에 남은 건 죽음뿐이다. ‘더 랍스터’의 마지막엔 그런 막막한 감정이 오래 남는다. 실내악들은 죽음의 심연에 빠진 허무한 마음을 천천히 위무하는 것 같다.
주간동아 1013호 (p8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