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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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있다 대타 출전 ‘역전포’

  •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 kisports@hanmail.net

    입력2004-10-04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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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상에 있다 대타 출전 ‘역전포’
    프로야구 홈런 레이스가 볼 만하다. 8월19일 현재 이승엽(삼성)이 34개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고 송지만(한화)과 심정수(현대)가 31개로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4위인 페르난데스(SK)는 28개.

    야구에서 홈런은 노려 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평범한 타자가 홈런타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타고난 선수들인 경우가 많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김봉연 이만수 김성한, 그리고 중반에는 장종훈이 홈런왕으로 득세했다. 몇 년 새 이승엽 선수가 외국선수인 타이론 우즈(두산)의 견제를 받으며 세 차례나 홈런왕에 올랐다. 이승엽은 지난 99년 54개의 홈런을 터뜨려 아시아 신기록(64년 왕정치의 55개)에 한 개 차로 육박했다. 당시 한 팀에 있던 김기태(현 SK)는 “이승엽은 인간이 아니다. 괴물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드팬들은 박현식을 한국 야구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박현식은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을 맡았지만 불과 13경기(3승10패) 만에 중도 퇴진하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그러다 83년 9월 다시 삼미팀을 맡아 8승11패1무의 기록을 세운 다음 현장에서 물러났다.

    박현식은 프로가 생기기 전 생애 100개의 홈런을 쳤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친 홈런공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데 그 100호 홈런공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는 홈런공이 바로 ‘병상의 홈런공’이다.



    박현식은 1959년 당시 한전과 최강을 다투던 농협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입원한 지 4일째 되던 날 오후, 우연히 농협과 한전의 경기를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됐다. 경기는 5회·농협이 0대 1로 끌려가고 있었다. ‘농협의 방망이’가 한전 투수에게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박현식은 갑자기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서울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서 박현식을 본 고 김영조 감독은 깜짝 놀랐다.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선수가 더그아웃에 나타나다니…. 김감독은 박현식이 “중계방송을 듣다가 하도 갑갑해서 달려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팀이 0대 1로 계속 한 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1루에 주자를 두고 박현식을 투입했다. 박현식은 상대투수의 초구를 크게 헛스윙하더니, 2구째 공을 그대로 받아 쳐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렸다. 더그아웃에 있던 농협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돌아 오는 ‘철인’을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히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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