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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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출발, 싱거운 절정

  • 이상용/ 영화평론가 dictee@empal.com

    입력2003-06-19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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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싹한 출발, 싱거운 절정
    김지운 감독의 신작 ‘장화, 홍련’은 작자 미상의 고대소설인 장화홍련전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하지만 사건의 전개는 ‘디 아더스’나 ‘식스 센스’와 같은 최근의 할리우드 공포영화를 닮았다. 종반부에서 펼쳐지는 극의 반전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장화홍련전를 따라 두 딸과 계모가 한 지붕 아래에서 겪는 섬뜩한 감정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원초적인 것이어서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미와 수현 자매와 계모 사이의 팽팽한 대립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심리극이 된다. 여기에다 서로가 말하기 꺼리는 과거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증폭하면서 낡은 옛 가옥은 점차 ‘유령의 집’으로 변모해간다. 고전 공포극들이 즐겨 다루듯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섬뜩함을 다양한 시선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장화, 홍련’에서 정작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은 어쩐지 싱겁다. 시골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고전 장화홍련전에서처럼 원한에 사로잡힌 원귀의 처절한 복수극도 아니고, 반전을 통해 상대성을 인식하게 만들거나(디 아더스), 다른 감각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식스 센스)도 아니다.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이 잊혀지지 않아. 그게 유령처럼 평생 붙어 다녀”라는 말처럼 잊혀지지 않은 기억에 대한 공포가 전부다. 가옥을 꾸민 화려한 세트와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여러 번 깜짝 놀라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화를 보는 잠시 동안의 일이다. 극장문을 나서면 에어컨의 싸늘한 냉기가 가시고 영화 또한 잊혀지고 만다.

    이러한 반전은 정신병동에 갇힌 수미의 표정과 닮아 있다. 김지운 감독은 한껏 궁금증과 긴장감으로 극을 부풀려놓은 다음 정신병동에 갇힌 무표정한 수미를 통해 흐릿하게 과거의 사건들을 설명한 후 침묵을 선택한다. 그토록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극을 끌고 가놓고 수미의 환상 내지 자작극이었다는 암시로 끝을 맺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은 ‘장화, 홍련’을 계모와 자매 사이의 비극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관람한 이들에게는 너무나 친절한 설명이 되어버리고 ‘장화, 홍련’에 깔린 다양한 상징성들을 읽어내려는 관객들에게는 무책임한 설명이 되어버린다. 초반부에 관객의 시선을 잡아둔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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