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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노 로고’

브랜드 파워 추악함을 벗기마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브랜드 파워 추악함을 벗기마

브랜드 파워 추악함을 벗기마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의 눈길이 가장 먼저 머무는 곳은? 정답은 셔츠의 왼쪽 가슴 위. 거기에는 랄프로렌의 폴로 마크와 라코스테의 악어, 캘빈클라인, 에스프리, 나이키 혹은 아디다스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로고는 옷의 가격표처럼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주머니 사정을 말해 준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셔츠 안쪽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던 로고가 70년대 후반부터 과감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일종의 과시용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적극적인 패션 액세서리로 바뀌었다. 2cm의 작은 크기였던 로고는 점점 커져 가슴을 뒤덮을 정도다. 이제 사람들은 브랜드명이 쓰여 있는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아예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기를 자청했다.

‘브랜드 파워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단 ‘노 로고’(No Logo)는 화려한 브랜드 이미지 뒤에 숨겨진 다국적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먼저 브랜드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그리고 교묘하게 침투해 있는지 보여준다. 브랜드는 하나의 상품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방식이자 태도이며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IBM은 컴퓨터가 아닌 비즈니스 솔루션을 판매하며, 스와치는 시계가 아닌 시간 개념을 판매한다.

이처럼 진화를 거듭한 브랜드들은 이제 주저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문화·교육 기관들을 후원하고 적당한 찬사와 세금 혜택을 받는 수준의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하지만, 나중에는 아예 기업이 이벤트의 주최자가 된다. 문화를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곧 문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나 스노보드를 즐기는 인디(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들이 특정 운동화와 계약을 맺고, 길거리 하키는 맥주 광고에 이용된다. 심지어 패스트푸드와 운동용품, 컴퓨터 업체들은 학교 예산 부족을 메워준다는 명목으로 교실을 점령한다. 또 브랜드들은 제휴라는 이름으로 대학의 교과과정과 연구까지 간섭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기부한 기업의 구미에 맞는 프로젝트만 진행하고 이익에 반하는 연구결과는 발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성공한 마케팅 전략의 교과서다. 매출액 부문 세계 1위의 기업에 등극한 월마트, 쇼핑센터 안으로 밀고 들어간 스타벅스의 점포전략, 조던과 나이키의 결합 등 새로운 마케팅 기법과 그 효과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반기업운동’의 행동주의자인 저자가 여기서 물러날 리 없다. 저자는 네 가지 영역에서 브랜드 파워의 실체를 파헤친다. 먼저 ‘노 스페이스’(No Space)에서는 마케팅에 포위된 문화와 교육의 문제를 다뤘고 ‘노 초이스’(No Choice)에서는 합병과 프랜차이즈, 시너지, 기업 검열에 의해 문화적 선택의 폭이 어떻게 줄어들고 있는지 보여준다. 예컨대 디즈니가 ABC를 인수해 영화와 만화를 방송하고, 타임워너가 터너방송을 인수해 CNN을 통해 잡지와 영화를 교차 판촉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여기에 신문, 잡지 등 미디어까지 합병되면 신문은 관련 기업의 영화나 시트콤에 대한 비평기사는 쓰기 어려워지고, ABC사는 디즈니의 불안정한 고용 실태나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기사로 다룰 수 없다.

‘노 잡스’(No Jobs)의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전략이 가져온 비극을 설명한다. 어차피 이미지로 먹고사는 브랜드는 자국 내 생산 공장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나이키는 베트남의 공장에서, 바비인형의 작은 옷은 수마트라의 아동 노동자들 손에서 생산되고 있다. 마닐라 외곽 지역에서 IBM CD롬 드라이브를 조립하는 17세 소녀는 “우린 컴퓨터를 만들지만 사용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식민시대가 청산되었음에도 여전히 제3세계는 서구 세계의 안락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고발했다. 불행은 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임시 사무직부터 소매점 점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에 항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기업운동’에 참여할 것을 선동한다. 건물과 버스를 둘러싼 광고, 학교와 농구장에 침투한 광고, 인터넷을 뒤덮은 광고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다는 것. 또 셸사가 1950년대부터 오고니족의 땅 니제르 삼각주에서 300억 달러 상당의 석유를 채취하면서 그 일대를 오염시킨 부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기업운동가들은 1995~96년을 ‘노동 착취 공장의 해’와 ‘브랜드 공격의 해’로 선포하고 해당 기업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는 전략을 펼쳤다. 설명에 의하면 브랜드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기업이 입는 타격도 커진다. 이쯤 해서 저자가 책머리에 쓴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만, 하부에서는 이미 불타오르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 로고/ 나오미 클라인 지음/ 정현경, 김효명 옮김/ 중앙M&B 펴냄/ 560쪽/ 2만2000원





주간동아 330호 (p88~88)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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