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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이명박도 조국도 돈에 허기진 에리식톤 콤플렉스 환자”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저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명박도 조국도 돈에 허기진 에리식톤 콤플렉스 환자”

[김도균]

[김도균]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가. 20~60대 남녀 50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 사람이 50.63%로 조사됐다. 그중 집을 가진 사람이 51.85%, 차를 가진 사람이 59.15%였다. 연봉 6000만 원 이상은 11.35%, 1억 원 이상은 1.81%나 됐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는 대학가 익명게시판마다 ‘우리 가족은 20억짜리 집 한 채밖에 없는 하우스푸어’라는 식의 ‘가난 간증’이 넘쳐난다면서 가난이 스펙이 되는 세상이라고 전했다. 

올해 국내 번역 출간된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읽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누리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그것도 한복판에 위치한다. 소득 수준이나 기대수명 면에서 세계 대다수 사람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는 소리다. 국내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나라라고 자부한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왜 대다수 한국인은 여전히 자신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걸까. 

어쩌면 그것에 대한 답은 11월 초 출간된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에리식톤(Erysichthon·에리시크톤)은 표기가 좀 다르지만, 이승우의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에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엄청난 부자였지만 신수(神樹)를 베어내는 독신(瀆神)의 죄를 범해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벗어날 수 없는 저주를 받아 전 재산과 딸까지 팔아치우며 먹어대다 결국 자신의 몸까지 먹어치우고 이빨만 남았다는 신화적 존재 말이다.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에선 신에 대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 그리고 그를 넘어서서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반면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선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힌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으로 포착된다. 그 핵심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자본주의 정신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국가에 의해 주조되고,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재벌에 의해 구현되고, 조용기로 대표되는 개신교에 의해 성화된 에리식톤 콤플렉스다.’ 

한국 주류사회가 발끈할 만한 내용이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박정희 전 대통령, ‘현대의 기적’을 일군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복음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교회의 성장을 대표하는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를 한 세트로 묶어 공격한다고 반발할 법도 하다. 



하지만 저자를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진보적 지식인과는 결이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사회학자 김덕영(사진). 독일 사회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막스 베버와 게오르크 지멜 연구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빌리타치온(대학교수 자격)까지 획득했지만 국내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독일 카셀대에서 강의하며 지금까지 31권의 저술을 펴낸 이론사회학자다. 

지멜 전집을 거쳐 베버 전집까지 번역하고 있는 그의 번역서 목록에는 베버의 그 유명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들어 있다.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바로 그 저술의 영향 아래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을 탐색한 결과물이다. 12월 1일 한국에 잠시 들어온 김 교수를 만나 한국적 근대를 주조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그 영웅담의 주술에 취해 ‘허기사회’가 돼버린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명박  =  박정희  +  정주영  +  조용기

“이명박도 조국도 돈에 허기진 에리식톤 콤플렉스 환자”
“많은 분이 오해하는데 베버는 자본주의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여러 형태의 자본주의가 존재했는데,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형성된 서구 근대 산업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춘 게 ‘프로테스탄티즘의…’입니다. 거기엔 후대에 등장하는 독일과 일본 자본주의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독일은 루터교의 나라였기에 칼뱅사상에 입각한 청교도 국가에 비해 산업자본주의 발전 속도가 늦다는 문제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독일과 일본은 물론, 한국 자본주의 역시 그 정신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입각한 영국, 네덜란드의 자본주의와 다른 정신 지평 위에서 전개됐다고 보는 게 당연합니다.” 

베버는 근대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적 형태 또는 체계로 자유노동·기업·시장·화폐와 유가증권·복식부기·과학기술 발전을 꼽았다. 마르크스 용어로 말하면 하부구조다. 그러면서 그 발전 동력이 된 정신(상부구조)이 칼뱅의 예정설에서 비롯한 종교적 윤리에서 잉태된 금욕주의와 합리주의임을 갈파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미뤄 짐작하기 위해 소명으로서 직업에 충실하고 그로 인해 얻은 이윤을 소비나 향락에 쓰지 않고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신의 영광을 드높이자는 것이 종교적 윤리다. 여기서 신과 홀로 대면한다는 내적 고독감이 싹트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려다 보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와 세속적 금욕주의, 그리고 합목적적 사유 방식이 발전한다. 그 결과 이윤 추구의 정당화, 낭비와 쾌락의 억제, 부의 합리적 재투자가 이뤄져 자본주의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체제로서 자본주의와 정신으로서 자본주의의 결합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역사적 · 문화적 배경에서는 또 다른 자본주의 정신이 작동하게 됩니다.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서구 산업자본주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시민에 의해 추동됐다는 점입니다. 반면 한국 자본주의는 그 체계가 일본 식민지배 아래서 외부로부터 이식됐으며, 광복 후에도 역시 민간보다 국가에 의해 주조됐습니다. 당연히 한국 자본주의 정신은 서구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베버의 연구를 토대로 한국 사회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관찰한 김 교수의 결론은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과 물질에 대한 허기로 추동되는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 정신이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억제하거나 합리적 조정에 있다는 베버의 통찰과 대척점에 위치한다. 이런 역설이 어떻게 성립 가능할까. 그 이해를 위해선 먼저 ‘환원근대’라는 개념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모든 걸 돈으로 환원하는 환원근대

[김도균]

[김도균]

김 교수는 2014년 펴낸 책 ‘환원근대 : 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에서 한국적 근대성의 특징으로 ‘환원근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서구의 근대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방면에서 합리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국가에 의한 자본주의 이식이 본격화한 박정희 정부 시대 이후 경제에서 합리화가 다른 모든 분야의 합리화를 압도했다. 경제 외적인 것이 경제를 위한 동원과 통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경제가 곧 근대고, 경제성장이 곧 경제’라는 테제가 한국인 뇌리에 각인되면서 모든 근대화가 경제성장으로 환원되는 환원근대의 성격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환원근대의 주인공은 서구 산업자본주의의 주역이던 시민이 아니라 국가와 재벌입니다.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국가와 재벌이 동맹을 맺어 한국 경제를 견인한 것이 한국 경제성장 신화의 중추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그 신화의 주인공이 시대 변곡점마다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되풀이해 소환된다는 점에서 이중적 차원의 환원근대이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그 동맹이 체결된 기점을 1961년 6월 27일로 특정한다. 5·16 쿠데타 이후 이병철 삼성회장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한 날이다. 이 회장은 여기서 군사혁명의 근본 원인이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에 있기 때문에 빈곤 타파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기업가를 파트너 삼아 경제성장에 일로매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만이 불법적 정권 탈취를 합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박정희의 신념과 스파크를 일으켰고, 군부정권의 혁명담론은 경제우선의 근대화(환원근대)담론으로 전환된다. 

이 담론은 2막으로 구성된다. 1막을 채우는 것이 ‘빈곤담론’이다.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보릿고개의 체험을 반만년 한국사로 확장해 한민족의 역사가 온통 헐벗고 가난했던 것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2막에서 파탄에 처한 민족경제를 구원할 시대적 사명으로 삼은 ‘성장담론’으로 극적인 전환을 끌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담론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라는 점이다. 빈곤담론의 주체가 민족이라면 성장담론의 주체는 국가, 그리고 그와 동맹을 맺은 재벌로 환치된다. 

“한국 자본주의 정신은 이러한 빈곤-성장담론을 토대로 구축됐습니다. 지독한 가난을 내세우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국가가 주조하고 재벌이 앞장선 경제성장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는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국민적 서사로 발전했고 ‘한강의 기적’을 낳는 동력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한 한국 대형교회들은 이런 빈곤-성장담론을 간증 형식으로 발전시키면서 신화로 성화해줬습니다. 그로 인해 국민 개개인의 의식에 깊이 각인되는 주술 효과가 발생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국가가 됐음에도 여전히 가난 타령이 넘쳐나게 된 겁니다.”


‘N만 달러 시대’의 이명박과 조국

빈곤-성장담론으로 구성된 환원근대의 극복이 이뤄질 뻔한 적이 있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개혁의 이름으로 경제 외 영역에서 합리화가 추진된 김영삼 정부 때다. 하지만 1993년 후반 개혁 드라이브가 퇴조하고 1994년 세계화담론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다시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다’는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휘말리고 말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박정희 시대의 조국 근대화가 에리식톤 콤플렉스 1기라면, 김영삼 시대의 세계화는 그 2기라 할 수 있습니다. 2기의 징환을 대표하는 용어가 ‘N만 달러 시대’입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한국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표현이 등장한 이후 노무현 정부에선 ‘2만 달러 시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4만 달러 시대’가 국정 목표가 되면서 다시 경제성장이 다른 모든 근대화담론을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특히 진보 정부라 자임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부 명칭을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꾸고 경제성장을 위해 공직사회와 노사관계의 변혁을 부르짖은 점은 성장지상주의의 주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국민소득이 얼마고, 경제성장률이 얼마인지를 아는 독일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그걸 외우고 다니죠.” 

한국에서 이런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완벽한 구현체로 김 교수가 주목한 인물이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2007년 12월 역대 최대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할 당시 그의 선거 홍보 동영상을 기억하는가. 허름한 시장통 국밥집에서 욕쟁이 할머니의 타박을 들으며 국밥을 먹는 그의 모습 아래로 ‘이명박은 여전히 배고픕니다!’라는 자막이 깔렸던 동영상. 

“이명박은 박정희(국가), 정주영(재벌), 조용기(개신교)가 융합된 인격체로서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철저히 체화하고 내면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이 되고 50대에 서울시장이 된 뒤엔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던 독실한 기독교인. 뭐 하나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이던 그는 왜 끊임없는 허기에 시달리다 끝내 110억 원대 뇌물을 수수하고 34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 수감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 몰락을 조롱하기보다 그런 그를 영웅시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의 집단심리를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환원근대의 주술에서 풀려나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김 교수의 레이더에 포착된 또 다른 대표적인 에리식톤 콤플렉스 환자가 있다. 바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공직자 신고 액수 기준으로 60억 원대 자산가에 최고 권위의 대학교수인 그는 도대체 뭐가 그리 아쉬워 여윳돈을 사모펀드로 돌려야 했을까요? 또 장관을 그만두고, 민정수석비서관을 그만두자마자 왜 바로 교수 복직신청을 해 한 푼의 월급도 놓치지 않으려 했을까요? 그런 부잣집의 따님은 또 뭐가 그리 아쉬워 꼬박꼬박 장학금을 챙긴 걸까요? 양심적 지식인을 자처하던 조 전 장관 역시 에리식톤 콤플렉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여지없이 보여줬습니다.”






주간동아 2019.12.06 1217호 (p58~6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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