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의 바버숍 ‘헤아’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넥타이들.
넥타이는 양보다 질
넥타이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특별한 넥타이 몇 개쯤 가지는 게 좋다. 수십, 수백 개의 넥타이가 있다 해도 한 번에 여러 개를 맬 수도 없거니와 하나씩 순차적으로 매지도 않는다. 즉 양보다는 질이다. 넥타이 스타일도 유행을 타지만, 그보다는 슈트와의 조화나 얼굴과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넥타이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꽤 잘 보이는 위치에 있기에 스타일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넥타이들은 한결같이 이탈리아 브랜드이면서 대각선 스트라이프 무늬다. 중요한 자리에는 꼭 이런 넥타이를 골라 맨다. 특히 아내가 10년 전쯤 이탈리아에서 사준 제냐의 하늘색과 부드러운 빨간색, 흰색의 조화가 매력적인 넥타이는 중요한 자리에 가장 자주 매고 나간, 일종의 부적 같은 넥타이다. 물론 이 넥타이를 맬 때는 화이트셔츠에 그레이슈트를 입어야 한다. 옷장을 보니 유독 이탈리아 브랜드 넥타이가 많다. 대각선 스트라이프 넥타이도 유독 많다. 상당수는 직접 샀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늘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넥타이 선물을 한다. 평소 내 취향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패션이나 와인처럼 취향이 중요한 물건에서 받을 사람의 스타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선물하는 것은 반갑지 않을 뿐 아니라 당혹스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어떤 기업은 아예 대량으로 구매해놓고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에게 하나씩 나눠주기도 한다. 이건 선물의 기본을 어긴 경우다. 선물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개인화다. 하여간 이런 선물을 받으면 겉으론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론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스럽다.
선물을 주는 데도 센스가 필요하다. 상대의 취향을 모른다면 취향과 연관된 선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거라도 상대의 취향이 아니면 골칫덩이가 되기 쉽기에.
얼마 전 핑크색이 살짝 들어간 넥타이를 선물 받았다. 표지디자인에 핑크가 들어간 내 책이 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그걸 감안한 센스 있는 선물이었다. 물론 핑크빛 도는 넥타이를 소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아주 멋진 화이트셔츠가 필요하다. 소화하기 힘든 컬러나 디자인의 넥타이일수록 세련된 화이트셔츠가 제격이다. 셔츠와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하는 사람도 꽤 많다. 화려한 셔츠나 블랙셔츠, 짙은 블루셔츠를 입고 알록달록 요란한 무늬의 넥타이를 매는 건 정말 촌스럽다. 놀랍게도 그런 차림이 멋스럽다고 착각하는 남자가 의외로 많다.
셔츠와 넥타이 매치가 어렵다면 화이트셔츠가 답이다. 화이트셔츠에는 웬만한 넥타이가 적당히 어울린다. 슈트를 입을 때 안에 입는 화이트셔츠가 슈트의 매력을 배가하고, 재킷을 벗었을 때도 셔츠가 중요하다. 특히 셔츠는 넥타이를 돋보이게 하기에 중요하다.
누구나 화이트셔츠를 갖고 있지만, 멋지고 세련된 화이트셔츠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맞는 좋은 셔츠를 만났다면 가급적 여러 벌 사두는 것이 좋다. 화이트셔츠는 일종의 소모품이다. 오래 두고 입기엔 한계가 있다. 낡고 해진 멋이 필요한 옷도 있지만 슈트와 입는 화이트셔츠는 깨끗하고 적당히 새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좋다.
일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패션 아이템 중 하나가 화이트셔츠지만 여기에 돈을 투자할 이유는 많다. 좋은 화이트셔츠는 소재가 중요하다. 디자인도 좋고 브랜드도 좋은데 가격이 낮으려면 소재에서 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이트셔츠에서는 무엇보다 소재가 중요하다. 브랜드를 양보하더라도 소재가 먼저다. 내 몸에 바로 걸치기 때문이다. 또 소재가 좋아야 슈트를 입고 벗을 때 한결같은 멋이 유지된다. 디자인은 기본적인 게 좋다. 너무 얇은 소재는 살이 비쳐 화이트셔츠만의 매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너무 뻣뻣하거나 구김이 많아도 살짝 아쉽다. 물론 세탁도 중요하다.
남자의 화이트셔츠는 요즘 한창 이슈인 놈코어 패션 트렌드에 입각해서도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질 패션 아이템이다. 가장 기본이고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제 스타일도 경쟁력인 시대
슈트의 매력을 배가하는 화이트셔츠. 웬만한 넥타이와도 잘 어울린다.
이젠 스타일도 경쟁력이자 그 사람의 안목이다. 좋은 안목이 있다는 건 멋지게 꾸밀 줄만 아는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자기 이미지도 잘 안다는 의미다. 이런 사람이 남에게 배려심도 많고, 젠틀하다. 지극히 주관적 비약이자 단정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본 꽤 많은 사람의 경우에선 대략 맞았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스타일이자 패션이야말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니까. 신기하게도 요즘은 스타일 좋은 사람이 일도 좀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술 마시면 넥타이를 머리띠처럼 매고 노래방을 휘젓는 남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때는 그게 술 취한 아저씨의 대표적 이미지였다. 또 넥타이 매는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한번 매놓은 넥타이를 풀지 않고 목걸이처럼 계속 걸어뒀다 쓰는 이도 봤다. 심지어 넥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고무줄 달린 넥타이도 등장했다. 여기저기 얼룩진 넥타이도 눈에 띈다. 설마 이것을 검소함이라고 변명할 생각인가. 싸면서도 스타일 좋은 제품은 얼마든지 있다. 패션과 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이젠 경쟁력이라는 걸 남자들은 알아야 한다. 특히 40, 50대 남자는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뱃살을 커버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아저씨 티 나는 스타일을 벗어야 몸도 마음도 젊어지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고 누구나 입는 넥타이와 화이트셔츠에서 사치를 부려보자. 고가 명품을 사란 말이 아니다. 자기 스타일에 맞게 좀 더 따져보고 사자는 거다. 멋쟁이는 늘 기본에 강하다. 때론 보타이나 스카프, 행커치프, 부토니에르도 시도해보자. 작은 헝겊 조각 하나가 우리의 이미지를 좀 더 발랄하고 경쾌하게 만들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