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은 꽤 오랜 기간 대중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서울 한복판 남산 위에 자리해 접근성은 비교적 좋으나 흥미가 떨어지는 공연이 대부분이라 일부러 찾아가 관람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국립극장의 풍경이 달라졌다. 전속 단원들이 제작한 작품들로 1년간 무대를 채우는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 이후 관객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따분한 장르로 치부되던 전통예술을 보기 위해 가족 단위 관객과 20, 30대 젊은 관객까지 몰려들었다.
이후 국립극장은 파격적인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핀란드 연출가에게 우리 춤 안무를 맡기고, 미국 출신의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에게 창극을 맡기는 등 계속 변모해갔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예술계의 우려 섞인 시선은 개관 이후 첫 매진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깨끗이 사라졌다. 성과는 또 있었다. 국립극장의 창작 작품들이 해외에 입소문 나면서 러브콜이 들어온 것. 올가을 열리는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에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와해된 국립극장, 곳곳서 희망 보여
변화의 중심에는 안호상 국립극장장(사진)이 있다. 그는 부임 3년 만에 국립극장을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극장으로 만들었다. 성과를 인정받아 안 극장장의 임기는 2017년 연말까지 2년 연장됐다. 1월 5일 안 극장장을 만나 혁신을 시도한 배경과 작품들을 성공시킨 비결을 들었다.
▼ 국립극장장 임기 동안 다양한 성과를 냈다. 부임 당시 국립극장의 상황은 어땠나.
“암담했다. 인기 있던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이 재단법인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내부 저항이 심했다. 외부에서는 남게 된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작품 생산성은 떨어지고 월급만 받아가는 조직으로 봤다. 당시 공연 프로그램이라고는 외부 제작 뮤지컬이나 해외단체 초청 대관 공연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럴 만했다. 심지어 예산 부족으로 싼값에 가져올 수 있는 작품들 위주여서 주목받지 못했다. 단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 국립극장에 재기 가능성이 있다고 봤나.
“곳곳에 희망의 징후가 보였다. 일단 내부적으로 조직이 와해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국립극장은 전속 단체라는 양날의 칼이 있다. 전속 단체가 제 기능을 못하면 짐이 될 수 있지만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 흐름에서도 가능성이 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낮아졌다. 이들은 과감하게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고, 문화를 왕성하게 소비했다.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 같았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전통문화가 주목받는 것에서도 희망이 보였다. 분명히 국립극장도 활력을 되찾을 거라 예상했다.”
▼ 지금은 안착했지만 1년 단위로 소속 단체의 작품을 올리는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 당시에는 생소하다는 평이 많았다.
“‘레퍼토리 시즌제‘의 속뜻은 대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죽어도 우리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부적으로 창극, 무용으로는 관객을 모을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밀어붙였다. 세계 어떤 나라도 국립극장에서 대관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고유한 자국 문화를 절대 내팽개치지 않는다. 우리도 국립단체니까 우리가 제작한 걸 해야 한다 생각했고, 성공할 권리도 우리에게 있다고 봤다.”
▼ 미국 연출가가 맡은 창극 ‘춘향’, 핀란드 안무가가 그려낸 무용 ‘회오리’ 등 신선한 조합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어떤 배경에서 시도한 건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한국 예술이 이질적인 요소와 만나면 우리 고유의 본질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런 점에서 저항도 따랐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본질은 다른 문화적 속성과 조화를 이룰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작품도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해석돼 1년에 2000개의 형태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그 덕에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우리 창극이나 한국 무용도 더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
해외 초청, 창단 이후 최초
▼ 변화를 시도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레퍼토리 시즌제’가 순항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작품이 창극 ‘장화홍련’이다. 창극은 판소리 5대가(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를 제외하면 작품이 없어 창작이 필요한데, 국립창극단에서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창극 ‘장화홍련’을 만들었다. 기존에 없던 작품인 데다 출연진이 한복이 아닌 현대 일상복을 입고 공연하는 등 생소한 요소가 많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발로 뛰며 홍보한 덕분인지 결국 매진이 됐다. 그때 성공의 짜릿함이 있었다. 국립극장이 가야 할 길을 예고해주는 작품이었다.”
▼ 국립극장의 해외 진출이 화제다.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개막 무대에 오르고‘묵향’은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다.
“국립무용단이 올해로 53년인데, 그동안 한 번도 세계 예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해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이 안무를 맡은 ‘회오리’가 잘됐다. 해외 평론가 몇 사람이 좋게 평가하자 유럽 쪽에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들도 신선한 작품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작품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국립극장 개관 이후 처음으로 공연료 3만 유로와 저작권료, 체류비를 받는 수출 작품이다. ‘묵향’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쪽 무용을 관장하는 에이전트의 눈에 들어 순회공연을 하게 됐고, 마찬가지로 2회 공연료 5만 유로와 체류비를 받고 간다.”
▼ 예술 행정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각을 넓히라고 조언하고 싶다. 예술가는 고유의 창조력을 발산하는 사람이고, 행정가는 이들을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다. 좋은 예술가가 많은데 자기중심적 잣대로 보면 그들의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을 갖춰야 한다. 대학 전공에 연연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능력도 갖추길 바란다.”
이후 국립극장은 파격적인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핀란드 연출가에게 우리 춤 안무를 맡기고, 미국 출신의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에게 창극을 맡기는 등 계속 변모해갔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예술계의 우려 섞인 시선은 개관 이후 첫 매진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깨끗이 사라졌다. 성과는 또 있었다. 국립극장의 창작 작품들이 해외에 입소문 나면서 러브콜이 들어온 것. 올가을 열리는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에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와해된 국립극장, 곳곳서 희망 보여
변화의 중심에는 안호상 국립극장장(사진)이 있다. 그는 부임 3년 만에 국립극장을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극장으로 만들었다. 성과를 인정받아 안 극장장의 임기는 2017년 연말까지 2년 연장됐다. 1월 5일 안 극장장을 만나 혁신을 시도한 배경과 작품들을 성공시킨 비결을 들었다.
▼ 국립극장장 임기 동안 다양한 성과를 냈다. 부임 당시 국립극장의 상황은 어땠나.
“암담했다. 인기 있던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이 재단법인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내부 저항이 심했다. 외부에서는 남게 된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작품 생산성은 떨어지고 월급만 받아가는 조직으로 봤다. 당시 공연 프로그램이라고는 외부 제작 뮤지컬이나 해외단체 초청 대관 공연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럴 만했다. 심지어 예산 부족으로 싼값에 가져올 수 있는 작품들 위주여서 주목받지 못했다. 단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 국립극장에 재기 가능성이 있다고 봤나.
“곳곳에 희망의 징후가 보였다. 일단 내부적으로 조직이 와해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국립극장은 전속 단체라는 양날의 칼이 있다. 전속 단체가 제 기능을 못하면 짐이 될 수 있지만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 흐름에서도 가능성이 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낮아졌다. 이들은 과감하게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고, 문화를 왕성하게 소비했다.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 같았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전통문화가 주목받는 것에서도 희망이 보였다. 분명히 국립극장도 활력을 되찾을 거라 예상했다.”
▼ 지금은 안착했지만 1년 단위로 소속 단체의 작품을 올리는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 당시에는 생소하다는 평이 많았다.
“‘레퍼토리 시즌제‘의 속뜻은 대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죽어도 우리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부적으로 창극, 무용으로는 관객을 모을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밀어붙였다. 세계 어떤 나라도 국립극장에서 대관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고유한 자국 문화를 절대 내팽개치지 않는다. 우리도 국립단체니까 우리가 제작한 걸 해야 한다 생각했고, 성공할 권리도 우리에게 있다고 봤다.”
2012년 새로운 시도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국립창극단의 ‘장화홍련’.
“사람들은 한국 예술이 이질적인 요소와 만나면 우리 고유의 본질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런 점에서 저항도 따랐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본질은 다른 문화적 속성과 조화를 이룰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작품도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해석돼 1년에 2000개의 형태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그 덕에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우리 창극이나 한국 무용도 더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
해외 초청, 창단 이후 최초
▼ 변화를 시도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레퍼토리 시즌제’가 순항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작품이 창극 ‘장화홍련’이다. 창극은 판소리 5대가(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를 제외하면 작품이 없어 창작이 필요한데, 국립창극단에서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창극 ‘장화홍련’을 만들었다. 기존에 없던 작품인 데다 출연진이 한복이 아닌 현대 일상복을 입고 공연하는 등 생소한 요소가 많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발로 뛰며 홍보한 덕분인지 결국 매진이 됐다. 그때 성공의 짜릿함이 있었다. 국립극장이 가야 할 길을 예고해주는 작품이었다.”
▼ 국립극장의 해외 진출이 화제다.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개막 무대에 오르고‘묵향’은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다.
“국립무용단이 올해로 53년인데, 그동안 한 번도 세계 예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해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이 안무를 맡은 ‘회오리’가 잘됐다. 해외 평론가 몇 사람이 좋게 평가하자 유럽 쪽에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들도 신선한 작품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작품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국립극장 개관 이후 처음으로 공연료 3만 유로와 저작권료, 체류비를 받는 수출 작품이다. ‘묵향’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쪽 무용을 관장하는 에이전트의 눈에 들어 순회공연을 하게 됐고, 마찬가지로 2회 공연료 5만 유로와 체류비를 받고 간다.”
▼ 예술 행정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각을 넓히라고 조언하고 싶다. 예술가는 고유의 창조력을 발산하는 사람이고, 행정가는 이들을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다. 좋은 예술가가 많은데 자기중심적 잣대로 보면 그들의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을 갖춰야 한다. 대학 전공에 연연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능력도 갖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