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주제로 한 JTBC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의 한 장면(왼쪽)과 고정 패널 곽정은 연애칼럼니스트.
그리고 2014년, 요즘 사랑받는 연애 예능프로그램은 어떤 모습일까. 종합편성채널 JTBC ‘마녀사냥’은 오늘날 유행하는 연애 예능프로그램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후발주자인 케이블채널 tvN의 ‘로맨스가 더 필요해’도 화제 속에 방송 중이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시청자의 사연을 소개하는 토크쇼 형식을 띠는 게 특징이다.
‘마녀사냥’의 김지윤 작가는 “오늘날 시청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연예인의 연애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시청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민을 공유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마녀사냥’ MC 신동엽 역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 나가 일반인 인터뷰를 해보면 가치판단이 필요 없는 단순한 질문에도 대답하기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요즘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한다”고 말했다. 이런 풍토 속에서 시청자가 자신의 연애담을 방송을 통해 공유하는 현상까지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마녀사냥’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 사연이 쏟아진다고 한다.
시청자 연애담과 고민 공유
여기에는 MC들의 힘이 크다. 김 작가는 “MC를 섭외할 때 ‘내가 연애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나아가 인생 상담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은 누구일까’를 염두에 뒀다”며 “현재 진행자인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유세윤 등에 대한 호감이 시청자 참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 역시 이 같은 공식에 충실했다. 메인 MC 박지윤은 JTBC ‘썰전’을 통해 ‘욕망 아줌마’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얻은 예능인이다. 다소 밉상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호감도와 인지도가 높은 전현무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수요를 파악한 두 프로그램은 시청자 사연에 꽤 섬세한 조언을 덧붙인다. 자신의 경험담에 비춰 진정성 있는 충고를 들려주기도 하고, 즉석에서 전화연결을 하거나 이원 생중계를 통해 시청자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두 프로그램의 또 다른 공통점은 곽정은 연애칼럼니스트(‘마녀사냥’)와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장(‘로맨스가 더 필요해’) 등 연애 전문가가 출연해 신뢰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연예인 MC와 패널 사이에 앉아 잡담 식으로 흘러가는 토크에서 진지한 조언을 던진다. 김 작가는 “연애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신뢰도를 가진 전문가의 존재는 필요하다. 연애 분야의 다양한 데이터를 소개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오랜 기간 연애에 대해 연구해온 곽정은 칼럼니스트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연애 패턴에 대해서도 정확히 짚어낸다”고 밝혔다. 이들 전문가는 이성 사이에서 결코 하면 안 되는 실수에 대해서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이 두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긴 하지만, 모든 연애 예능프로그램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과거 유행하던 소개팅 포맷을 가져왔던 MBC 파일럿 프로그램 ‘연애고시’는 식상하다는 평가 속에 정규편성이 좌절됐다. 장수 프로그램인 ‘우리 결혼했어요’도 정기적으로 출연진을 바꾸지만 번번이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연애 예능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대중은 확실히 변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를 타인의 연애담을 보는 것보다 ‘나의 연애담’을 매개로 유명인과 소통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된 것이다.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연애 상담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 연애, 즉 타인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는 분석이다. 연애 방식을 가르쳐주는 학원이나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장은 그 원인으로 가정 위기를 꼽았다. 그는 “사람은 가정을 통해 타인과의 사랑과 친밀감을 경험한다. 가정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 연애를 하더라도 건강한 방식으로 하기 어렵다”며 “높은 이혼율 등 가정 위기 탓에 유독 요즘 사람이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소장은 “과거에도 분명 사람들은 연애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흐르고 여권이 신장된 덕에 이제는 남녀 모두 연애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tvN 예능프로그램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 출연하는 연애전문가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장(왼쪽)과 이 프로그램 출연진.
이런 현실을 의식한 것인지, ‘마녀사냥’이나 ‘로맨스가 더 필요해’ 모두 자극적인 코드를 앞세우지 않고 건강한 소통방식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다. 방영 초반 ‘19금 예능’으로 유명했던 ‘마녀사냥’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녀사냥’ MC 신동엽은 이 부분에서 일종의 책임 의식마저 갖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청소년 성상담을 한 적도 있다. 성적인 소재의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고 했다. ‘마녀사냥’은 이런 신동엽을 내세워 연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동시에, 모두가 쉬쉬 했던 이야기를 불쾌하지 않게 다룰 수 있었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 역시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 없이 경제적 조건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오늘날 결혼 풍토를 지적하는 등 역시 건강한 연애를 지향한다.
오늘날 연애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는 그만큼 건강하게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곁들인 19금 소재나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는 양념일 뿐이다. TV 속 언니 오빠가 들려주는 연애 조언은 건강해서 더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