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죽음이 있다. 건물이 붕괴돼 사람들이 깔려 죽고, 어떤 이는 어찌할 수 없는 가난 앞에서 가족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TV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던 일반인 출연자가 자살한 일도 있다. 대본 없이 만들어지는 ‘리얼리티 쇼’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가난한 저개발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근대적 죽음’,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해체된 ‘포스트모던’한 사회의 불행이 2014년 한국의 비극적 풍경 위에 뒤섞인다.
죽음은 늘 살아남은 자에게 슬픔과 의무를 지운다. 살아남은 자는 각자 몫대로 슬퍼하고, 죽음을 해석한다.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슬픔보다 ‘무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죽음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산 자에겐 치유, 곧 ‘씻김’일 터다.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또한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쫓는 산 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죽음에 맺힌 원을 씻어내고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세 모녀에게 찾아온 급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숙(김희애 분)은 남편 없이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넉넉지 못한 삶이지만, 가끔 연애도 하면서 주책없을 만큼 씩씩하게 살아왔다. 맏딸 만지(고아성 분)는 ‘쿨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똑 부러지는 소녀다. 여중생 천지(김향기 분)는 착하고 살가운 막내딸이다. 그런데 천지가 급작스레 죽는다. 엄마에게 MP3를 사달라고 했던 막내딸, 아침에 반듯하게 입고 가겠다며 교복을 다리던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도 없다.
남편을 잃고 9년 만에 막내딸마저 보낸 엄마는 오기에 가까운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맏딸이 “오버 좀 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더 많이 웃고 더 씩씩하려고 노력한다. 만지가 보여주는 건 무표정의 슬픔이다. 그것은 10대 소녀가 자꾸 바깥으로 새나올 것 같은 눈물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자, 슬픔 그 자체가 딱딱한 껍질처럼 굳어져 이룬 완강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죽음으로 한 소녀가 말하려 했던 건 뭘까. 영화는 만지가 동생 죽음에 얽힌 진실과 동생이 남긴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천지가 생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만지는 천지가 감당해냈을 고통에 친구뿐 아니라 엄마, 언니까지 모두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죽은 동생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와 언니, 친구들에게 남긴 메시지를 하나씩 찾아간다. 그것을 통해 산 자는 비로소 상실의 슬픔과 죽은 이에 대한 죄책감을 온전히 감당해내며 스스로 자기 상처를 보듬는다.
비단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뿐이랴.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산 자에게 말을 걸고 신호를 보낸다.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죽은 이의 원과 한을 풀어줄 뿐 아니라, 산 자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
죽음은 늘 살아남은 자에게 슬픔과 의무를 지운다. 살아남은 자는 각자 몫대로 슬퍼하고, 죽음을 해석한다.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슬픔보다 ‘무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죽음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산 자에겐 치유, 곧 ‘씻김’일 터다.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또한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쫓는 산 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죽음에 맺힌 원을 씻어내고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세 모녀에게 찾아온 급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숙(김희애 분)은 남편 없이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넉넉지 못한 삶이지만, 가끔 연애도 하면서 주책없을 만큼 씩씩하게 살아왔다. 맏딸 만지(고아성 분)는 ‘쿨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똑 부러지는 소녀다. 여중생 천지(김향기 분)는 착하고 살가운 막내딸이다. 그런데 천지가 급작스레 죽는다. 엄마에게 MP3를 사달라고 했던 막내딸, 아침에 반듯하게 입고 가겠다며 교복을 다리던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도 없다.
남편을 잃고 9년 만에 막내딸마저 보낸 엄마는 오기에 가까운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맏딸이 “오버 좀 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더 많이 웃고 더 씩씩하려고 노력한다. 만지가 보여주는 건 무표정의 슬픔이다. 그것은 10대 소녀가 자꾸 바깥으로 새나올 것 같은 눈물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자, 슬픔 그 자체가 딱딱한 껍질처럼 굳어져 이룬 완강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죽음으로 한 소녀가 말하려 했던 건 뭘까. 영화는 만지가 동생 죽음에 얽힌 진실과 동생이 남긴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천지가 생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만지는 천지가 감당해냈을 고통에 친구뿐 아니라 엄마, 언니까지 모두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죽은 동생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와 언니, 친구들에게 남긴 메시지를 하나씩 찾아간다. 그것을 통해 산 자는 비로소 상실의 슬픔과 죽은 이에 대한 죄책감을 온전히 감당해내며 스스로 자기 상처를 보듬는다.
비단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뿐이랴.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산 자에게 말을 걸고 신호를 보낸다.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죽은 이의 원과 한을 풀어줄 뿐 아니라, 산 자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