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면서도 번역가로 더 유명한 김석희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40년 타향살이를 접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 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일상사를 알리는 ‘애월(涯月) 통신’을 띄웠다. 이 통신에서 그는 귀향하기로 결심한 이유, 고향 집을 새로 지은 이야기, 제주에서 만나는 고향 사람 이야기를 비롯해 집안 제사에 얽힌 내력, 함께 사는 개, 이곳저곳에서 강의한 경험 같은 일상뿐 아니라 들불축제, 노꼬메 숲길, 고등어회, 고사리육개장, 문어 작살 낚시, 영등굿 등 제주의 음식이나 풍습을 따뜻한 글로 전했다.
2년간의 통신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웅진지식하우스)란 책으로 탄생했다. 완결되는 번역을 하고, 뻑뻑한 글을 주로 썼던 저자는 ‘애월 통신’을 쓰면서 어깨에서 힘 빼는 훈련을 한 셈이라고 밝혔다. 자연과 벗 삼은 생활이 그런 깨달음을 준 것이라고.
역사학자 김기협은 아흔 살의 어머님이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튜브피딩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자, 장례 절차까지 준비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상태가 차차 좋아져 일반 병동과 요양원으로 옮겼고 찾아온 손님과 찻잔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수준까지 회복됐다. 아들은 쓰러진 어머님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용태를 알려주려고 시병일기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했다.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은 그렇게 3년여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김석희의 통신은 귀향을 꿈꾸게 만들었고, 김기협의 일기는 홀로되신 어머님을 모시는 일의 의미를 수없이 일깨웠다. ‘힘 빼고’ 쓴 글이 안겨주는 감동은 참으로 대단했다.
내친김에 편지로 된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은 시를 쓰는 의사 마종기와 음악을 하는 공학박사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이 나이와 공간을 초월해 주고받은 편지를 묶었다. ‘다, 그림이다’(이봄)는 동양화를 좋아하는 미술평론가 손철주와 서양화를 좋아하는 서양미술사학자 이주은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10가지 조건(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등)을 주제로 그림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마음산책)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유학 간 딸을 뒷바라지하러 미국에 가 있는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었다. 이런 책은 소소한 인간관계에서 묻어나는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겨 잠시 ‘중세의 촌락’으로 돌아가 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왜 편지로 만들어내는 ‘지식’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지식이란 원래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탐구하는 자만이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커넥티드 인텔리전스(Connected intelligence)’ 시대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만 하면 그 움직임에 맞춰 작곡해주는 소프트웨어에 적응하는 것처럼, 이제 인간에게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이용해 자신의 지식과 타인의 지식을 즉각 결합한 뒤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 됐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정보 또한 순식간에 수신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접속을 통해 글로벌 비전과 지각과 감수성을 실시간으로 갖출 수 있는 글로벌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글로벌화할수록 개인의 정체성은 철저히 파괴된다. 이제 지구상에서 로컬(local)적인 것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가 유일하다. 그러니 편지에서 진정한 ‘로컬다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2년간의 통신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웅진지식하우스)란 책으로 탄생했다. 완결되는 번역을 하고, 뻑뻑한 글을 주로 썼던 저자는 ‘애월 통신’을 쓰면서 어깨에서 힘 빼는 훈련을 한 셈이라고 밝혔다. 자연과 벗 삼은 생활이 그런 깨달음을 준 것이라고.
역사학자 김기협은 아흔 살의 어머님이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튜브피딩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자, 장례 절차까지 준비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상태가 차차 좋아져 일반 병동과 요양원으로 옮겼고 찾아온 손님과 찻잔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수준까지 회복됐다. 아들은 쓰러진 어머님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용태를 알려주려고 시병일기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했다.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은 그렇게 3년여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김석희의 통신은 귀향을 꿈꾸게 만들었고, 김기협의 일기는 홀로되신 어머님을 모시는 일의 의미를 수없이 일깨웠다. ‘힘 빼고’ 쓴 글이 안겨주는 감동은 참으로 대단했다.
내친김에 편지로 된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은 시를 쓰는 의사 마종기와 음악을 하는 공학박사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이 나이와 공간을 초월해 주고받은 편지를 묶었다. ‘다, 그림이다’(이봄)는 동양화를 좋아하는 미술평론가 손철주와 서양화를 좋아하는 서양미술사학자 이주은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10가지 조건(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등)을 주제로 그림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마음산책)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유학 간 딸을 뒷바라지하러 미국에 가 있는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었다. 이런 책은 소소한 인간관계에서 묻어나는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겨 잠시 ‘중세의 촌락’으로 돌아가 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왜 편지로 만들어내는 ‘지식’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지식이란 원래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탐구하는 자만이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커넥티드 인텔리전스(Connected intelligence)’ 시대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기만 하면 그 움직임에 맞춰 작곡해주는 소프트웨어에 적응하는 것처럼, 이제 인간에게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이용해 자신의 지식과 타인의 지식을 즉각 결합한 뒤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 됐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정보 또한 순식간에 수신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접속을 통해 글로벌 비전과 지각과 감수성을 실시간으로 갖출 수 있는 글로벌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글로벌화할수록 개인의 정체성은 철저히 파괴된다. 이제 지구상에서 로컬(local)적인 것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가 유일하다. 그러니 편지에서 진정한 ‘로컬다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